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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까지 언론인, 오늘부터는 정치 지망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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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 정치참여 죄는 아니지만… 폴리널리스트 정언유착 따가운 시선


선거의 계절이 다가왔다. 4월 11일 19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예비 후보자 등록이 이어지고 있다. 언론인 출신도 예외는 아니다. 현역 언론인인 경우 공직선거법 제53조에 따라 선거일 전 90일인 1월 12일까지 현직에서 물러나야 한다. 전·현직 언론인의 총선 출마 움직임에 대한 평가는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정언유착’을 둘러싼 의혹의 시선 때문이다.

미디어오늘이 10일 현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19대 총선 예비후보로 등록한 이들을 분석한 결과, 언론인(현역 국회의원 제외) 출신 인사들은 50명으로 조사됐다. 예비 후보 등록 기간은 아직 남아 있기에 언론인 출신 인사들의 숫자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과거 언론인은 정치권의 중요한 수혈 대상이었다. 권력에 대한 비판과 견제의 역할을 수행해온 언론인은 자체로 참신성과 개혁성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군사 독재정권 시절 때로는 목숨을 걸면서까지 ‘바른말’을 하고자 했던 지사형 언론인에 대한 대중의 기억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언론인이 대접받는 시대가 아니다. 오히려 기자 출신이라고 하면 여론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고개를 숙여야 하는 사회 분위기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언론생태계’가 파괴되고 있기 때문이다. ‘권언유착’은 노골화되고 언론 본연의 비판과 견제는 무뎌지고 있다. 그나마 목소리를 높이는 언론인은 해직과 징계 대상이 되고, 한직으로 밀리는 실정이다.

전.현직 언론인 출신 19대 총선 예비등록 현황. (1월10일 현재, 현역 의원 제외)
전.현직 언론인 출신 19대 총선 예비등록 현황. (1월10일 현재, 현역 의원 제외)

권력의 ‘언론장악’을 가능케 하는 것은 언론 내부의 협력세력이다. 언론사 상층부를 이루는 선배 언론인들의 협조와 후배 언론인들의 침묵과 무기력이 만들어낸 합작품인 셈이다. 언론인들의 정치 입문 행렬에 여론의 시선이 곱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언론계 경력 30년이 넘는 한 국회 출입 기자는 “언론인은 많은 정보를 갖고 있고 다양한 인맥도 있어서 정치권에 수혈되는 주요 직업군 중 하나였다”면서 “기자들이 예전에는 사명감으로 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밥벌이 수단으로 임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엄밀히 말하면 언론인 출신이라고 정치참여를 봉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헌법에 보장된 직업선택의 자유 측면에서도 그렇다. 그러나 언론인이라는 직업의 특성 역시 무시하기는 어렵다. ‘폴리널리스트’ 논란이 불거지는 이유는 일부 현직 언론인들이 본분을 망각한 채 직위와 역할을 자신의 정치입문 용도로 활용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띄우는 보도를 하다가 해당 정치세력의 일원으로 합류하는 게 이런 경우이다.

언론사의 견제 장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현실적으로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현재로서는 공직선거법에 규정된 조항이 그나마 강제력을 갖고 있다. 제53조(공무원등의 입후보) 조항이다.

선거일 전 90일까지 그 직을 그만두어야 출마가 가능한 직업군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언론인’도 포함돼 있다. 여기에는 일반인들이 흔히 아는 신문사, 방송사, 인터넷신문사 소속 언론인들이 포함된다. 다시 말해 선거에 나서려는 언론인은 선거일 90일 전까지 무조건 그만둬야 하며 이를 어길 경우 출마 자체가 불법이라는 얘기다.

노종면 전 YTN 노조위원장은 “현직 언론인이 정치권에 발을 담그기 전에 기본적인 윤리, 선거 상당기간 전에 현직을 떠나야 하는 문제를 얼마나 지키고 있는지 의문이다. 법에 규정된 90일 전이 아니라 6개월(180일) 전에는 현직에서 떠나야 한다고 본다”면서 “이 정권 들어 폴리널리스트 폐해가 많이 드러났다는 점도 언론인 정치참여를 둘러싼 윤리와 기준을 고민하게 하는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선거의 계절이 돌아왔다. 오는 4월11일 제19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전·현직 언론인들의 예비후보 등록이 잇따르고 있다. '정언유착'을 둘러싼 의혹 때문인지 이들의 총선 출마 움직임에 국민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은게 현실이다.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선거의 계절이 돌아왔다. 오는 4월11일 제19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전·현직 언론인들의 예비후보 등록이 잇따르고 있다. '정언유착'을 둘러싼 의혹 때문인지 이들의 총선 출마 움직임에 국민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은게 현실이다.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실제로 이명박 정권에서 고위직을 맡았던 언론계 출신 인사들은 특히 논란의 대상이다. 여론의 손가락질을 자초한 부패사건과 의혹사건에 언론계 출신 인사들의 이름이 오르내렸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출신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중앙일보 출신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 동아일보 출신 이동관 전 대통령 언론특보 등은 언론 장악 논란의 입방아에 올랐던 핵심적인 인물이다.

게다가 최근 논란의 대상인 서울시장 선거방해 사건은 조선일보 출신 최구식 전 한나라당 홍보기획본부장이 연루의혹을 받고 있고, 방송통신위원회를 둘러싼 부패 의혹에는 동아일보 출신 최시중 방통위원장이 입방아에 오르는 실정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9일 성명에서 “김학인 한국방송예술진흥원 이사장이 EBS이사 선임로비를 위해 방통위원장 최시중씨의 최측근인 정용욱 전 방통위 정책보좌관을 통해 방통위 최고위층에 수억대의 뇌물을 건넨 정황이 검찰에 포착돼 수사 중”이라며 “최시중씨는 더 이상 노욕에 휩싸여 방통위와 소속 공무원들을 욕되게 하지 말고 지금 당장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이명박 정부 권력 주변부에 있던 이들이 부패논란의 몸통으로 거론되면서 가뜩이나 냉랭한 언론인 출신 정치인들에 대한 시선을 더욱 얼어붙게 했다. 언론인을 향한 냉랭한 시선은 어느 날 갑자기 바뀔 리가 없다.

여론의 감동을 이끌 만큼 헌신적이고 모범적인 모습을 보일 때 언론인 출신 정치인을 향한 여론의 차가운 시선은 조금씩 풀리게 될 것이다. 언론인이 될 때 다짐했던 초심을 지켜나가는 게 해법의 시작이다.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라는 사명, 역사발전의 밀알이 되겠다는 뜻을 실질적으로 실천해 나가야 한다는 얘기다.

언론인의 정치참여 자체를 부정적인 시선으로 볼 필요는 없다는 주장도 있다. 남의 얘기를 듣는 직업인 언론인의 특성을 잘 활용하면 민심을 경청하는 정치인이 될 수도 있다. 또 다양한 출입처에서 경험했던 사회의 현실과 정부 기관 곳곳의 문제점들을 취재 경험을 통해 체득했다는 점도 정치인으로서 자산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언론인 출신 정치인들은 믿을 수 있다는 인식을 여론에 심어주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점이다. 특히 일부 양심불량 폴리널리스트는 언론계 현직을 정치 입문을 위해 활용하면서 ‘정언유착’의 폐해를 낳고 있다는 지적이다. 언론인 출신 선배 정치인들은 그 점에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한국경제 정치부장을 지낸 김영근 전 국회 공보관은 “정치를 하겠다고 마음을 정하는 순간 바로 사퇴하고 언론계를 떠나야 한다. 기자 사표도 안 낸 상태에서 양다리를 걸치고 자신의 인맥과 보도 기능 등을 정계 입문에 활용하는 행위는 언론계에 해악으로 다가올 수 있다. 정치 입문을 꿈꾸는 언론계 후배들이 명심해야 할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미디어오늘] 2012-01-11 류정민 기자 (미디어오늘 = 평화뉴스 제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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