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세계' 재현 몰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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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 장기 기획 <고택은 살아 있다>... 소재 제한적, 시각 진부


요즘 일간신문 지면은 굳이 발행지역이나 지면을 가리지 않더라도 ‘인문학’을 강조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마다 자기네 행정의 영역을 ‘인문학’으로 확대하거나 포장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칠곡군이 입안한 ‘인문학 도시 조성사업’ 프로젝트가 정부의 올해 창조지역사업으로 선정돼 지원금을 받게 된 것을 다룬 <인문학 도시 조성 칠곡, 날개 달았다>는 제목으로 도시기반조성에서부터 평생학습, 마을인문학에 이르기까지 가히 인문학 파라다이스가 도시행정의 비전인 듯 전달하고 있는 것은 그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매일신문, 4월 30일 9면, 경북).

<매일신문> 2012년 4월 30일자 9면(대구/경북)
<매일신문> 2012년 4월 30일자 9면(대구/경북)

기대 모은 기획의 변

매일신문이 2011년 12월 31일자부터 시작한 <고택은 살아있다> 장기 기획 연재는 인문학 또는 인문학적인 사고에서 우리 전통문화를 숨 가쁘지 않게 차근차근 살펴 계승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를 강조할 것으로 예상됐다. 경북지방에 몰려있다시피 한 고가에 착안해 <고택>이란 열쇠말로 접근하려 한 것은 기획의도 면에서 많은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연재가 거듭되면서 <고택…>의 기획의도랄까 취지는 빛이 바래고 있다. 신문판매용 기획이 아닌가 하는 인상마저 주고 있는 것이다.

<매일신문> 2012년 1월 1일자(2011년 12월 31일 발행) 36면(종합)
<매일신문> 2012년 1월 1일자(2011년 12월 31일 발행) 36면(종합)

현재까지 매일신문이 다뤄온 <고택…> 대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전통문화-현대 접목" 강조

 
매일신문은 <고택…> 연재 기획의도를 ‘고택과 함께한 인물․역사․문화․풍속, 주변 생태환경 등을 입체적으로 조명’하겠다고 밝혔다.(2011. 12. 30. 1면. <새해에도 알찬 기획으로 독자 여러분 찾아갑니다> ) 이 신문은 총론 격인 1회 연재에서는 기획, 연재의 배경으로 ‘경북지역의 고택이 전통문화와 음식, 풍속을 되살리고 현대와 접목시킨 대표적 체험관광의 공간으로 각광체험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는 사실을 강조했다. 특히 ‘문화와 역사를 이야기’하는 연재가 될 것이라고 밝힌 것은 <고택…> 기획 연재의 기본 방향으로 각인되었다. 디지털 만능시대에도 아날로그의 미덕은 있다는 점이 이 연재의 이념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만하면 기획의도나 기본 이념면에서 신선하다고 평할 수 있었다. 적어도 본격 연재가 시작되기 전에는 그랬다. 

고건축물 얽힌 이야기 '스토리텔링'

<고택…> 연재의 이념이랄까 방향은 몇 몇 연재 기사에서 잘 살렸다. 그 살레로 연재 16회 <영천 별빛미술마을 고택들>은 고택이 미술과 만나 화려하게 부활한 이야기를 스토리텔링 화법으로 돋을새김 했다. 영천시 화산면 가상리, 화산1`2리, 화남면 귀호리 일대에 조성된 ‘영천 별빛미술마을’ 이야기는 재(齋), 헌(軒), 정(亭), 각(閣)이란 이름으로 눈길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곳곳에 널린 고건축물을 창건자의 인물배경, 건축요소, 미술관으로 변신한 새 모습, 고택과 고택을 둘러싼 환경이 연출하는 흥취를 살려냈고 그래서 가보고 싶은 곳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가게 했다.

<매일신문> 2012년 4월 18일자 17면(문화)
<매일신문> 2012년 4월 18일자 17면(문화)

그러나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좀 더 많은 <고택…>은 인물 배경이나 내용이 천편일률로 영웅 만들기에 급급했는가 하면 건축과 관련한 대목에서는 과대포장을 넘어 거의 조작배기에 가까운 기술을 서슴지 않았다. 그 한 사례는 다음과 같다. 

'과대포장' 넘쳐


<“군자 아닌 사람 없는 마을”…조선초 건축양식 600여년 그대로>의 한 대목이다. 

▷후조당(중요민속자료 제227호)
광산 김씨 예안파 종택에 딸린 별당으로 선조 때 후조당 김부필이 처음 건립했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ㄱ'자형 건물로 왼쪽에 6칸 대청을 두었다. 현판은 조선 최고의 학자 퇴계 이황의 필적이다. 대청 동쪽에는 2칸의 온돌방을 두었고, 튀어나온 마루 1칸과 온돌방 1칸이 더 있다. 이런 구조는 이 지방에서는 흔치 않은 형식이며 고려말 조선초의 양식으로 건축사의 소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잡석기둥 위에 각주를 세워 만든 겹처마 팔작지붕집이다. 지금은 불천위 향사를 지낼 때 사용하고 있다.

<매일신문> 2012년 5월 16일자 17면(문화)
<매일신문> 2012년 5월 16일자 17면(문화)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 광산 김씨 마을을 다룬 이 연재는 후조당(중요민속자료 제227호)에 대해 ‘이런 구조는 이 지방에서는 흔치 않은 형식이며 고려말 조선초의 양식으로 건축사의 소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고 강조하고 있다. 16세기 후반, 17세기 초반인 선조 때 건축한 이 고건축물이 어떻게 ‘조선초 건축양식 600여년 그대로’인지를 전하려면 ‘고려 말 조선 초’와 이 고건축물이 건립된 당시는  200년가량 시대적 격차가 났는데도 건축양식이 계승될 수 있었던(건축양식이 계승됐다면) 배경이나 관련 정보를 다루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후조당이란 고건축물이 <조선초 건축양식 600여년 그대로>란 제목대로라면 어떻게 ‘중요민속자료 제227호’ 정도에 머무르고 있을까 궁금하다.

이 마을은 전국적으로 유형의 고건축물, 전통시대 문헌기록물이 풍부하기로 유명한 명소임에는 틀림없다. 그렇더라도 과대포장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전통시대 호령했던 인물 부각

또 한 가지는 이 장기 기획 연재물이 진짜로 의도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연재 당초의 취지대로 디지털만능 시대에 아날로그적인 것도 가치가 있고, 특히 고건축물이 많은 경북지역은 정신적, 문화적으로 고갈되기 쉬운 디지털만능 시대에 정신적 문화적 유토피아 내지 활력소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시간과 인물들의 활동이 점철된 역사와 문화를 통해 드러내야 할 것 아닐까. 그런데 몇몇 연재를 제외하면 당시 백성 위에서 호령했던 인물 부각에 빠짐없이 많은 지면을 할애해 열을 올리고 있다. 전통시대의 지배양태, 계급의식을 고취하려는 것이 이 장기 기획 연재 의도가 아닐 텐데도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과연 있을까?

소재 '뺑뺑이 돌리기'…차별성 없어

소재 선택도 진부하다. 표에서 정리한 대로 지금까지 다룬 대상은 거의 빠짐없이 양반 사대부 가문에 집중하고 있다. 그 결과 <고택…>에서 다룬 고건축물, 인물 등은 단편적이거나 기획 연재거나 간에 이미 지역신문을 통해서만도 여러 차례 소개돼 웬만큼 관심 있는 독자라면 손금 보듯 꿸 정도다. 이전에 다룬 기획 연재와 무엇이 다른가? 그럴수록 다루는 시각에서 차별성이 두드러져야 하는데 현장에 접근하는 태도-시각은 변하지 않고 있다. 신선함이 묻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문과 가문, 문중과 문중의 경쟁의식을 혹여 부추기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 정도다. 만일 그렇다면 <고택…>은 신문 판매가 디지털 매체 시대를 맞아 한계점에 다다르자 전통적인 방식으로 활로를 타개하려는 수단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하게 된다.

너무 변해버린 고향이야기, 향수 자극 '옛말'

<고택…>이 있는 대부분 지역은 지방의 지방이자 농촌이다. 도시화가 진행된 지 오래여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나 향수를 자극하는 연재물이 농촌을 떠나온 지 오래 된 독자들로 하여금 ‘고향 그리워’ 하도록 만들기에는 모든 것이 너무 많이 변했다. 그것이 실정이다. 고향(농촌)을 떠나온 독자들은 문화적으로는 디지털 시대의 건조함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고, 사회적․경제적으로는 양극화로 혹심한 고달픔 속에 살고 있다. 이런 독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독자들이 처한 현실을 기획과 연재를 통해 소통시킬 수 있는 것이 돼야 하지 않을까. 다양함․창의성을 향해 다가가려고  <고택…>이 기울인 노력은 무엇이었나?

'그들만의 세계'를 반복 재현하는 데 몰두하는 <고택…>. 독자들은 의문부호를 던지고 있다.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평화뉴스 - 미디어 창 185]
여은경 / 대구경북민주언론시민협의회 사무처장. 전 대구일보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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