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역사 인식이 위험한 진짜 이유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두현 / "친일과 독재를 근대화ㆍ산업화 역사로 바꾸는 핵심이 5.16 정당화"


 연일 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올 여름 무더위가 더욱 짜증나는 것은 아마 올 연말 대선의 가장 유력한 후보 중 한명인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이하 박근혜 의원)의 위험한 역사인식 때문이 아닐까? 박근혜 의원은 얼마전 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토론회에서 "5·16은 불가피한 최선의 바른 선택"이라고 말했다. 또한 지난 3월 부산을 방문하면서 "산업화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피해를 입은 분들에 대해 죄송하고 사과한다"는 요지의 발언을 한 적이 있다. 박근혜 의원은 이미 지난 2007년 한나라당 경선과정에서 "5․16은 구국의 혁명"이라는 발언을 한 적이 있으니 그의 이런 역사인식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경향신문> 2012년 7월 17일자 1면
<경향신문> 2012년 7월 17일자 1면

하지만 그의 정치적 위상이 그 때와는 다르다. 비록 그는 지난 4년 대통령이 아니었지만 MB와 더불어 국정을 운영한 동반자이다. 또한 지난 4․11 총선에서 패배할 것이라던 여당을 과반의석의 일당으로 만들어낸 덕에 실질적인 여당의 최고권력자 반열에 올랐다. 그가 새누리당 대통령 경선에서 떨어지리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게다가 최근 안철수 바람이 불기전까지 그는 대통령 후보 여론조사에서 부동의 1위였고 아직도 올 연말 대선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 중의 한명임이 분명하다. 우리는 지난 4년간 대통령 1명이 우리의 정치, 경제적 삶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목도했다. 박근혜 의원의 역사인식이 검증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본의 아닌 피해와 부수적 피해

군사용어에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라는 말이 있다. 전투행위시 불가피하게 따르는 민간인 피해를 가르키는 말이다. 주로 미국이 제 3세계를 침공할 때 엄청난 물량의 무차별 폭격으로 인한 전쟁의 참상과 본질을 희석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 ‘부수적’이라는 말이 고약한 이유는 '군사적 목적을 위한 행동에 따르는 의도되지 않은' 결과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전쟁 과정에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민간인 피해가 불가피하다는 뜻도 있지만, '고의는 아니다'라는 무책임함이 도사리고 있다.

박근혜의원이 ‘산업화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피해를 입은 분들에게 죄송하고 사과한다’는 표현의 위험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5․16 이후 국가 주도의 산업화 과정에서 발생한 노동자들에 대한 폭력과 탄압은 물론이고 이 과정에서 불안정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자행한 인권탄압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는 인식이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재산 등 천부적 권리를 지키는 것을 가장 우선적 가치로 삼는다. 박정희 시절 산업화라는 미명하에 개인의 자유와 인권은 철저히 무시되었다. 사실은 박정희에게 권력의 유지를 위해 ‘산업화’라는 명분이 필요했고 그 과정에서 개인의 인권이 무시되는 것은 부수적 피해에 불과했던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5․16’이 불가피했다는 주장이 얼마나 허구적인가?

'식민지 근대화론'과 유사한 5․16 정당화 논리

 그의 역사인식은 일제의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식민지 근대화론'과 맞닿아 있다. 일제가 식민지 지배를 위해 근대적 생산체제를 도입했고, 이것이 해방 뒤 괄목할 경제성장을 이루는 토대가 됐다는 것이다. 식민지배가 조선의 경제적 발전의 토대가 되었기에 정당화 될 수 있다면 당연히 박정희의 독재도 결과적으로 경제발전에 기여했기에 정당화 될 수 있다는 것이다. 5․16이 정당화되면 일제의 식민지배도 당연히 정당화될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박근혜 대선 캠프에 식민지 근대화론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해온 서울대 박효종 교수 등이 합류하고 있는 것이 우연이 아닌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역사를 항일독립운동의 역사와 독재극복의 역사에서  ‘일제 강점기 때 근대적 경제의 도입 → 이승만의 자유민주주의 체제 구축 → 박정희의 경제개발’로 이어지는 역사로 바꾸고 싶은 것이다. 그래야 개인의 영달을 위해 민족을 배신한 친일의 과거도, 해방후 살아남기 위해 반공투사로 돌변했든 변신의 과거도, 독재권력에 영합했던 오욕의 과거도 다 정당화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정희 미화는 민주헌정의 부정

박근혜의원은 과거 자신의 일기에 이렇게 썼다.
“배신하는 사람의 벌은 다른 것보다 자기 마음안에 무너뜨려서는 안 되는 성을 스스로 허물어뜨렸다는 점 그래서 한번 배신을 함으로써 배신을 하지 않으려는 저항감이 점점 약해진다는 점 그럼으로써 두번째 세번째 배신이 수월해 진다는 바로 그 사실이다.”

민족을 배신하고 군동료를 배신했던 아버지 박정희의 심리를 이보다 더 정확하게 묘사한 글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5․16을 정당화할 수 없는 이유 역시 이 글에 잘 담겨 있다. 결과와 목적을 위해 절차적 과정을 무시하거나 부당한 수단을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좋은 권력을 만들기 위해 민주적 절차인 선거를 무시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선거를 통해 다소 불만족스러운 권력이 탄생하더라도 우리가 그 권력을 존중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독일 등 유럽 여러 나라에선 홀로코스트를 부인하거나 히틀러의 나치 이념을 추종하고 찬양하는 행위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히틀러 시절 독일 경제가 성장했다고 해서 히틀러의 반인권, 반민주적 행위가 정당화되지 않는 것처럼 박정희 시절 경제가 성장했다고 해서 5․16이 정당화 될 수 없는 것이다. 당연히 박정희를 정당화하거나 그를 미화하거나 기념하는 행위 역시 민주헌정을 부정하는 사실상의 범죄행위인 것이다.

박근혜 의원의 집권이 무서운 이유


 박근혜의원은 자신의 5․16 발언에 공감하는 국민이 50%가 넘는다고 했다. 다행히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이 발언에 동의하지 않는 국민이 동의하는 국민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동의하는 국민 역시 40%를 넘어서고 있다. 만만치 않은 비율이다.

박근혜가 5․16가 박정희 시절을 정당화시키고자 하는 것은 딸로서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집권에 불리할지도 모를 5․16논란을 불러일이키는 이유는 뭘까? 필자는 감히 우리나라 주류세력의 역사적 기원과 그들의 역사인식에 그 이유가 있다고 본다. 민족이 패망해도 일제시절 친일행위로 권력을 유지했고 해방후에는 재빨리 친미세력으로 변신해 살아남은 그들은 이승만 독재와 박정희 독재에 협력해 부와 권력을 유지했다. 그들은 지난 김대중, 노무현 정권시절 잠시 정치권력을 상실했지만 여전히 경제, 문화, 사회, 언론, 교육 등 모든 분야의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다.

이제 그들은 단순히 정치권력을 유지하는 것을 넘어 자신들이 걸어온 역사를 정당화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영원한 주류(mainstream)가 되고 싶은 것이다. 친일과 독재의 역사를 근대화와 산업화의 역사로 바꾸는데 핵심이 바로 5․16의 정당화인 것이다. 

1932년 나치당에게 권력을 몰아준 것은 보통의 독일 사람들이다. ‘유권자의 위대한 선택’을 통해 탄생한 나치 정권이 이후 어떤 길을 걸어는지는 모두 다 알고 있는 일이다. 박근혜 의원의 집권이 무서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두현 / 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 사무처장. 평화뉴스 객원기자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지금 주목 받고 있어요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