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박7일 홀로 학교 지키는 '경비' 할아버지의 추석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13.09.17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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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없는 13년 / 최저임금에 야근수당ㆍ밥값도 전혀 없어..."딱 하루라도 쉬었으면"


당직실에서 9월 달력을 보는 김영수 할아버지(2013.9.16)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당직실에서 9월 달력을 보는 김영수 할아버지(2013.9.16)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하루만 쉬어도 될까요?"

추석을 이틀 앞둔 16일. 대구시 달성군 A초등학교에서 13년째 '경비원'으로 근무해온 김영수(가명.68) 할아버지는 출근하자마자 교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문 앞에서 작은 목소리로 준비한 말을 되뇌였다. 하지만, 쉽게 문을 열지 못했다. 그렇게 10분을 서성이다 결국 당직실로 발걸음을 돌렸다. 

김 할아버지는 매일 오후 4시 30분 학교에 출근해 다음 날 아침 8시 30분까지 하루 16시간을 일한다. 주말은 금요일 오후 4시 30분부터 월요일 아침 30분까지 2박 3일 동안 꼬박 64시간을 일한다. 365일 일하는 셈이다. 명절이나 공휴일이 되면 4-5일은 학교에 갇힌 채 일할 수 밖에 없다. 올 추석도 마찬가지. 할아버지는 집에 가지 못한다. 지난 설 역시 그랬다. 벌써 13년째 명절없는 생활이다.

복도서 교정을 바라보는 김 할아버지의 뒷 모습(2013.9.16)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복도서 교정을 바라보는 김 할아버지의 뒷 모습(2013.9.16)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특히, 이번 추석은 18~20일 평일 3일에 21~22일 주말 이틀이 더해져 다른 때보다 오래 학교에 갇혀 일한다. 게다가, 추석 하루 전인 17일 오후 4시 30분에 출근해 23일 월요일 아침 8시 30분이 돼야 겨우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무려 6박7일, 136시간 동안 홀로 학교를 지키는 셈이다.

"13년째 부모님 산소도 못갔다. 벌초는커녕 어떻게 생겼는지도 까먹었다. 365일 일하니 명절이 뭔지 까마득하다. 부담스럽기만 하다. 남들 다 쉬는 추석에 일하는 것도 모자라 감금되다시피 하니 감옥살이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완전 딴 세상에 혼자 사는 것 같다. 아파서 병원에 가고 싶어도, 딱 하루만 쉬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다. 서러워 기대고 싶어도 학교에는 내 말 들어주는 사람 하나 없다"


순찰을 하다 덜 잠긴 교실 문을 다시 잠그고 있다(2013.9.16)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순찰을 하다 덜 잠긴 교실 문을 다시 잠그고 있다(2013.9.16)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17일 오후가 되면 모든 교직원과 학생들은 명절을 쇠러 학교를 떠날테지만 할아버지의 긴긴 노동은 끝날 줄 모른다. 학교를 돌아다니며 100여개가 넘는 교실 문 단속을 하고, 당직실에서 교내 CCTV와 화재경보기, 긴급전화 관리, 무단 침입자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화단에 물도 주고 쓰레기도 줍고 급하게 학교를 찾아오는 학생들이나 학부모들도 상대해야 한다. 넓은 교정에는 할 일이 태산이다.

이렇게 일해 받는 월급은 110만원 남짓. 올해 최저임금 4,860원을 적용하면 월 230여만원을 받아야 하지만 월급은 2001년 68만원에서 해마다 평균 2만4천원이 올랐을 뿐이다. 야근수당은 물론 식대비나 명절 상여금도 받아 본적 없다. 학교와 계약을 맺고 할아버지를 고용한 용역회사가 저녁 10시부터 아침 7시까지, 평일 9시간, 휴일 18시간을 '휴게시간'으로 지정하고 임금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김 할아버지는 밤새도록 CCTV를 감시한다(2013.9.16)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김 할아버지는 밤새도록 CCTV를 감시한다(2013.9.16)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학교 밖을 나가야 할 때도 있지만 '근무지 이탈'로 일당이 삭감돼 나가기 쉽지 않다. 대근자(대신 근무할 사람)를 쓰면 용역회사가 할아버지 월급에서 하루씩 7만원을 떼가 그마저도 부담스러워 발걸음 옮기기 어렵다. 지난달 15일 3일간 급한 일 때문에 대근자를 썼다가 할아버지는 급여 21만원이 삭감됐다.

"속으로는 도둑놈들이라 욕해도 밖으로 표현은 못한다. 회사 사무실가서 월급 올려달라, 수당달라고 말하면 책상 위에 놓여있는 이력서 보여주면서 '싫으면 나가라'고 한다. 내가 나이도 많고 힘도 없으니 그냥 참고 살아야지. 이제와 어디 가서 다시 일 할데도 없고. 13년 동안 속이 다 문들어졌다" 


당직실 옆 화장실...할아버지는 이 곳에서 직접 밥을 해먹는다(2013.9.16)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당직실 옆 화장실...할아버지는 이 곳에서 직접 밥을 해먹는다(2013.9.16)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식사도 학교나 용역회사 중 누구도 제공하지 않아 본인이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가끔 급식실 조리사들이 음식이 남을 때 '당직실' 앞에 밥을 놓고 가지만 연휴에는 그마저도 없어 홀로 해결할 수 밖에 없다. 때문에, 라면이나 김치, 된장, 고추, 김, 쌀 같은 재료를 집에서 갖고와 끼니를 때운다.    

할아버지는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민 끝에 노동조합을 찾았다. 그곳에서 할아버지는 자신과 같은 상황에 놓여있는 학교경비가 대구에만 4백여명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후, 대구시교육청과 국가인권위원회, 권익위원회를 찾아 자신들의 처지를 알렸다. 이 같은 활동은 전국적으로 확산됐고, 대법원은 지난 2009년 '야간노동자의 대기시간이 근무시간에 포함된다'고 판결했다.

모두가 퇴근한 교정에서 할아버지가 홀로 순찰 중이다(2013.9.16)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모두가 퇴근한 교정에서 할아버지가 홀로 순찰 중이다(2013.9.16)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같은 해 대구교육청도 대구 전체 학교에 '밤 10시부터 아침 7시까지 퇴근할 수 있도록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러나, 학교 측은 '계약 당사자는 학교가 아닌 경비회사'라는 이유로 계속 관행을 유지했다. 오히려, 이 같은 활동을 벌인 경비원들은 '해고' 되거나 여러가지 불이익을 당했다. 할아버지 역시 지난해 2월 학교와 용역업체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가 대구교육청에 항의한 끝에 복직하게 됐다.

"우리가 큰 거 바라나? 법만 지켜달라는 거다. 잘은 모르지만 이건 불법이다. 그런데, 법은 용역회사와 학교에만 있고 경비한테는 없다. 이제 하소연할 곳도 없다. 싫은 소리하면 그 사람만 잘리니 다들 입을 다물었다. 혼자들 참는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쉬지도 못하고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이렇게 살 수 없다. 나도 추석엔 학교가 아닌 집에서 손주들, 가족들과 지내고 싶다. 정말 할 수만 있다면 내 맘을 꺼내 보여주고 싶다. 추석에 또 학교서 홀로 있을 걸 생각하니 참..." 할아버지는 말을 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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