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16시간, 주말 64시간...학교 경비아저씨의 "노동 억압"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12.06.22 17:1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학교경비노동자, 국민권익위에 민원..."최저임금, 2교대, 주1회 휴무" / 교육청 "실태조사"


"오늘이 금요일이지? 오늘 출근하면 사흘 동안 학교 안에만 있어야 돼. 남들 다 쉬는 주말 64시간 동안 일하고 월요일 아침 돼야 집으로 가. 봉건시대 노예도 아니고... "

대구 달성군 모 초등학교 경비노동자로 12년째 근무한 전모(65)씨는 6월 22일 남구청에서 열린 국민권익위원회 '이동신문고'에서 이같이 말하며 학교 경비노동자의 실태를 고발했다.

'이동신문고'에서 민원 접수를 기다리는 시민(2012.6.22.대구 남구청)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이동신문고'에서 민원 접수를 기다리는 시민(2012.6.22.대구 남구청)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전씨는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4일 동안 오후 4시 30분 다음 날 아침 8시 30분까지 하루 16시간씩 근무한다. 학교 문을 닫는 주말이면 금요일 오후부터 월요일 아침까지 64시간 동안, 설.추석 등 연휴가 끼면 4-5일은 학교에 갇힌 채 일한다. 순찰, 시설관리, 문단속은 기본이고 전화, 화재.비상 벨도 관리한다. 식사는 라면, 김치, 쌀을 가져와 직접 해 먹는다. 개인 사정으로 학교 밖을 나가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나가는 순간 ‘근무지 이탈’로 일당이 삭감되기 때문에 나가기 쉽지 않고, 12년 동안 명절도 없이 일했다.

대구지역에 전씨와 상황이 비슷한 경비노동자는 400여개 학교 중 450여명. 50-70대 가장이 대부분이고, 90-100만원 남짓 월급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이에 대해, '전국교육기관회계직연합회 학교비정규직본부 대구지부'가 22일 오전 남구청에서 열린 국민권익위원회 '이동신문고'에 "학교 당직 경비 노동자에 대한 노동 억압" 민원을 접수했다. 이 자리에는 이병수 전회련 대구지부 조직국장을 포함한 경비노동자 7명이 참석했다.

전회련 대구지부는 민원서를 통해, ▷최저시급 4,580원 위반한 평균시급 4,112원, ▷상주 노동 시간 주 120시간 중 수면 시간 제외한 42시간만 임금에 반영, ▷올해 대구시교육청이 용역설계에 지정한 8시간 근무, 인건비 131만9천원 위반한 점을 지적했고, ▷올해 1, 2월 최저임금 미지급분 지급, ▷근로기준법에 따른 근로계약서 작성, ▷시교육청 용역설계 기준 131만9천원 하반기부터 지급, ▷내년 용역설계 2교대 근무, 주 1회 휴무 보장 ▷시교육청의 학교와 용역업체에 대한 감사를 요구했다.

대구 시민들이 남구청에서 열린 국민권익위원회 '이동신문고'를 찾아 조사관에게 민원을 접수하고 있다...이날 접수된 민원은 모두 64건이다(2012.6.22)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 시민들이 남구청에서 열린 국민권익위원회 '이동신문고'를 찾아 조사관에게 민원을 접수하고 있다...이날 접수된 민원은 모두 64건이다(2012.6.22)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이들이 제출한 민원서는 국민인권위원회 '이동신문고' 복지.노동 분야에 접수됐고, 2주 안에 처리 결과가 통보된다. 서종원 복지.노동 조사관은 "현장 확인과 위원회 심의 절차를 거쳐  시교육청과 대구지방노동청에 민원 내용에 대한 감사 명령을 내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경비노동자 전모씨(65)는 "학교, 시교육청, 업체 모두 밤 10시면 업무가 끝나는 줄 알지만 학교에 있으면 변수가 너무나 많다"며 "1년에 한번 쉬지도 못하고, 당직을 서는 게 일인데 자는 시간은 근무시간이 아니라니...이상한 근로 계산법이다"고 했다. 또, "아침에 일 나가는 마누라나 가족 얼굴도 못 본지 한참됐다"며 "한번은 손녀가 보고 싶어 손녀 학교로 낮에 직접 찾아간 적도 있다"고 답답한 심정을 나타냈다.    

대명동에 있는 모 초등학교 경비노동자 김모씨(63)는 "학생들을 바른길로 이끌어야 하는 교육기관이 어떻게 이런 일을 수수방관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교육청은 학교에 학교는 용역업체에 따지라 하니 나라가 나서 해결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 지난 IMF 당시 사업 부도로 15년째 모 중학교에서 경비를 하고 있는 000씨는 "노조원인 게 알려질까봐 이름을 밝히기 곤란하다"며 "우리는 현대판 노예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그는 "몇 십년 동안 억울하게 착취당하고 살아도 언론이나 공기관 누구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며 "권익위에서도 해결을 못하면 다음에는 어디에 가 요청을 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전국교육기관회계직연합회 학교비정규직본부 대구지부가 대구 남구청에서 열린 국민권익위원회 이동신문고에 "학교 경비노동자에 대한 노동 억압" 민원을 접수하고 있다(2012.6.22)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전국교육기관회계직연합회 학교비정규직본부 대구지부가 대구 남구청에서 열린 국민권익위원회 이동신문고에 "학교 경비노동자에 대한 노동 억압" 민원을 접수하고 있다(2012.6.22)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현재 대구지역 학교, 아파트 등의 경비용역을 담당하는 대표 업체는 동구 신천동에 있는 J업체와 수성구 황금동에 있는 S업체 2곳으로 이날 민원을 접수한 경비노동자들도 이곳 직원이다. 이 업체는 각 학교와 수의 계약을 통해 근로자를 파견하고, 이들에게 임금을 지급한다. 이 때문에, 시교육청과 각 학교는 "업체의 책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황성현 대구시교육청 총무인사팀 주무관은 "고용 당사자는 용역업체"라며 "관리 의무와 책임은 업체 쪽에 있다"고 했다. 또, "계약서를 작성하고 내용을 확인해야 하는 것은 고용된 당사자"라며 "시교육청 책임으로 돌릴 수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문제가 꾸준히 제기돼 교육청 차원에서도 실태조사에 나섰다"며 "현재 조사 진행 중이니 완료되는 시점에 각 업체와 학교에 지침을 내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국민권익위원회 '이동신문고'는 권익위 조사관들이 전국 시.군.구 지방자치단체를 다니며 주민 고충과 애로 사항을 접수해 민원을 해결하는 곳으로 지난 9년 동안 운영돼 왔다. 앞서, 지난 6월 19일에는 포항, 20일에는 경주, 21일에는 영천에서 운영됐고, 22일 대구에서 접수된 민원은 모두 64건으로 산업.농림분야가 가장 많았다.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지금 주목 받고 있어요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