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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실서 쪽잠, 아파트 경비원의 쉴 새 없는 24시
온갖 잡무에 3개월마다 재계약..."주민이 전부 주인, 조금만 더 친절했으면"
2013년 04월 01일 (월) 14:33:22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pnnews@pn.or.kr
 
저녁 어둠이 내린 아파트 단지. 차량들이 하나 둘 귀가한다. 10년째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는 이모(68.신천동) 할아버지는 형광등 불이 켜진 경비실 작은 창문을 통해 일일이 차량 번호를 확인했다. 바코드가 등록되지 않은 외부 차량이 들어오자 입구까지 걸어가 방문 목적과 운전자 이름, 차량 번호와 차종을 적었다.

29일 저녁 7시 대구 수성구 범어3동에 있는 한 아파트 단지 안. 이 할아버지는 같이 야간업무를 서는 천모(60.신천4동)씨와 바쁘게 일했다. 택배를 찾으러 온 주민이 경비실 문을 두드리자 호수를 확인하고는 택배 더미에서 작은 상자를 찾아 전달했다. 할아버지 등 뒤에는 아직 주인을 찾지 못한 택배들이 한 가득이다.  

   
▲ 경비실에서 아파트 출입 차량을 감시하는 이모 할아버지(2013.3.29)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명절 때는 산더미야 산더미. 발 디딜 틈도 없어. 보관소를 따로 만들어야 하는데 아직 경비실에다 맡겨두고 있어. 따로 지으면 돈 드니까 여기다 보관하는 거야. 몇 개월 심하면 1년 넘게 방치된 것도 있다니까. 버리고 싶어도 우리 물건이 아니니까 버리지도 못하고 계속 쌓아만 두는 거지"


이 아파트에는 486가구 주민 1,900여명이 살고 있다. 매일 차량 800여대가 오가고 CCTV 100여대가 쉬지 않고 돌아간다. 경비원들은 매일 새벽 6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일을 하고 이틀에 한번 24시간 근무를 한다. 점심과 저녁식사 각각 1시간, 새벽 수면 2시간이 정해져 있지만 열쇠를 두고 간 주민들이 문을 열어달라고 부탁할 때가 많아 그나마 짧은  휴식시간을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 할아버지는 이날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새벽밥을 먹고 경비실로 출근했다. 먼저 아파트 단지를 청소하고 화원을 관리했다. 음식물 쓰레기통도 비우고 분리수거 되지 않은 쓰레기도 다시 분류했다. 종이박스를 차곡차곡 모아 관리실로 보낸 뒤에는 경비실로 돌아와 택배를 정리했다. 다음 날 이사 가는 주민이 아파트에 대형 트럭을 주차시킨다는 공문도 손수 적었다. 

   
▲ 이 할아버지가 아파트 주민에게 택배를 전달하고 서명을 받고 있다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이날은 새벽 6시부터 다음날 새벽 6시까지 꼬박 일하는 날이라 다른 날보다 업무가 많다. 명절, 공휴일, 주말도 출근해야 하기 때문에 피곤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내달에는 막내아들 결혼식도 있는데 대신 일할 사람을 구하느라 애를 태운다. 사람을 못 구하면 결혼식도 참석하지 못한다.

"경비원은 만능이야. 못하는 게 없어. 아니 못해도 해야 돼. 아니면 잘리니까. 주민이 전부 주인이잖아. 쉴 시간이 없어. 잠깐 눈을 붙일 수도 없고 자리를 비울 수도 없어. 여차하면 해고야. 막내 결혼식에는 갈수 있으려나 모르겠어. 일당이야 내 돈 주면 그만인데 잘못해서 잘리면 먹고 살기 막막해"
  

이 아파트에는 이 할아버지를 포함해 모두 6명이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다. 대부분 60대 이상 가장이고 100만원 남짓 월급을 받고 있다. 3명이 한 조를 이뤄 격일제로 경비를 보고 야간에는 2명만 경비를 선다. 특히, 야간에는 한명씩 돌아가며 새벽 1시부터 3시, 3시부터 5시까지 잠을 잔다. 잠자는 곳과 식사하는 곳은 아파트 한 동 지하에 있다.

   
▲ CCTV를 바라보는 이 할아버지의 뒷모습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저녁 7시 30분이 되자 또 다른 경비원 한명이 막 식사를 끝내고 경비실로 돌아왔다. 이 할아버지는 그와 교대하고 식사를 하러 지하로 갔다. 지하실은 따로 난방이 되지 않아 여기저기 곰팡이가 폈다. 1인용 침대와 냉장고, 식탁, 의자, 온풍기, 이불 등 여러 도구가 여기저기 널려있다. 모두 주민들이 버린 물건을 재활용 한 것이다.

이 할아버지는 부인이 새벽에 싸준 도시락을 냉장고에서 꺼내 밥을 먹고 20분 만에 경비실로 돌아갔다. '휴식시간이 끝나면 경비실로 빨리 돌아갈 것'이 근무수칙이기 때문이다. 또, 3개월마다 용역회사와 재계약을 맺기 때문에 회사에 밉보이지 않기 위해서라도 웬만하면 수칙을 지켜야 한다.      

"귀한 물건을 많이 버려. 줍다보니 이렇게 많이 모였어. 우리가 쓸 건 아무도 안 사주니 이렇게 버린 물건을 재활용할 수밖에. 여기서 밥도 먹고 잠깐 휴식도 취하고 쪽잠도 자고...경비원들 아지트지. 빛도 없고 온기도 없어서 처음에는 이것보다 곰팡이가 많았어. 지금은 깨끗이 청소했어. 견딜만해"


   
▲ 지하실에서 식사 후 차를 마시는 이 할아버지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5년 전만 해도 이 아파트에는 경비원 20명이나 있었다. 그러나, '감시 및 단속적 근로자'에게도 최저임금제가 적용돼 60만원이던 월급이 100만원으로 오르자 용역회사는 14명을 해고했다. 청소원도, 조경원도 모두 잘렸다. 아파트 단지의 대부분 업무는 경비원 몫이 됐다. 이후 할아버지는 최장기 경비원으로 일하며 '반장'까지 달고 5만원 추가 수당도 받고 있지만 그때를 떠올리면 여전히 아찔하다.

원래 이 할아버지는 개인 사업을 했었다. 하지만, 외환위기 당시 부도가 나 사업을 접어야 했다. 그리고, 5년간 방황을 하며 실직 상태에 있었다. 4남매와 부인이 생계를 이어갔지만 가계는 회복되지 않았다. 그리고, 2003년 할아버지는 아는 사람 소개로 경비원을 하게 됐다. 처음에는 적응하기 힘들었다. '문짝 고쳐 달라', '변기 뚫어 달라', '현관문 열어 달라', '세탁기 고장 났다' 등 민원은 끊이지 않았다.

"자존심은 놓고 와야 돼. 잠도 못자지, 쉬지도 못하지, 일은 많지, 언제 해고될지도 모르지. 해고시킬 때는 무서워. 그때만 생각하면 오금이 저려...가장들이 아파트로 몰려드는 이유 알고 보면 서글퍼. 그러니까, 다들 조금만 더 친절해졌으면 좋겠어. 황량한 아파트에서 조금만 더 행복하게 일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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