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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일러도 없이 겨울철 나는 여관 쪽방 주민들
[르포] 동대구역 여관 쪽방촌 / 낡은 전기장판과 이불에만 의지..."이마저 없어지면 어디로"
2013년 11월 27일 (수) 10:34:48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pnnews@pn.or.kr

   
▲ 동대구역 일대에 붙어 있는 달셋방 전단지(2013.11.26)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달셋방 있음. 세금포함 25만원. ooo여관 월세방 있음. 보증금 없이 월 20만원. 26일 오후 대구시 동구 신천동 동대구역 일대. 낡은 여관 건물 옆 전봇대와 나무, 벽마다 하얀 전단지가 붙어있다. 여관에 살고 있는 쪽방 주민 대부분은 이 전단지를 보고 여관을 찾아 온다. 보증금과 전기세, 수도세 등을 내지 않고 여관주인에게 월세만 제때 내면 기한 없이 얼마든지 오래 거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대구역 일대에서 월세를 놓는 여관은 모두 5곳. 한 곳은 최근 재개발 공사로 철거돼 빈터에는 앙상한 철근들만 널부러져 있다. 이모(55)씨는 지난 2011년 철거 된 여관 옆에 있는 Y여관 307호로 이사왔다. 그렇게 3년이 지났다. 1평 남짓한 여관 방한칸은 아저씨의 몸을 누일 유일한 보금자리가 됐다.

   
▲ Y여관 307호 이모 아저씨의 쪽방(2013.11.26)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발로 차면 금방 부서질 것 같은 낡은 나무 문을 열자 욕실과 방한칸이 보인다. 서구 원대동 일대 쪽방촌에 비하면 욕실이 있다는 것이 그나마 장점이다. 하지만, 월세가 5~10만원 정도 비싼 편으로 사정이 열악하기는 마찬가지다. 누렇게 변한 벽지는 군데군데 찢어졌고 창문은 고장나 절반만 닫혔다. 틈새로 찬바람이 들어왔다. 보일러도 없어 방바닥은 얼음장처럼 차갑고 장판도 찢어져 발이 시렸다.    
  
3년 된 낡은 전기장판과 이불에만 의지해 아저씨는 겨울을 버텼다. 다른 여관 쪽방촌 주민들의 생활도 이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중앙난방을 하거나 바닥에 전기패널을 넣은 곳도 있지만 겨울철을 보내기에는 역부족이다. 춥다고 온도를 올려달라는 말도 하지 못하는 처지기 때문이다. 보일러가 없으니 당연히 찬물로 샤워를 하고 세수를 한다. 요즘에는 밥솥에 물을 넣고 끓여서 사용하기도 한다.

방에 부는 외풍을 막으려 문풍지를 바르고 싶지만 몸이 불편해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달력으로 대충 막아놓은 게 다다. 아저씨는 3년 전 갑자기 길에 쓰러져 뇌병변장애5급 판정을 받았다. 왼쪽 팔, 다리, 허리를 사용하지 못하고 말투도 어눌해졌다. 가족 없이 홀로 사는 아저씨는 그때부터 여관에서 거주하고 있다. 기초생활수급비 40만원, 장애인생활보조금 3만원을 받아 월세와 의식주를 해결한다. 

   
▲ Y여관 306호에 6년째 살고 있는 최모 아저씨(2013.11.26)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같은 여관 306호는 최모(67) 아저씨 '집'이다. 아저씨는 6년째 Y여관에서 살고 있다. 겨울은 1인용 전기장판과 이불로만 버틴다. 왜 이곳으로 오게 됐는지 밝히기 꺼려하던 최아저씨도 이아저씨와 마찬가지로 장애인이다. 왼쪽 상・하반신이 마비 돼 지팡이 없이는 걸을 수 없고 오래 서 있을 수도 없다. 방 벽지에는 '대구쪽방상담소' 전화번호가 볼펜으로 적혀있다. 유일하게 어려움을 털어놓는 곳이다.

Y여관에는 모두 7명, 옆 H여관에는 2명의 쪽방 주민이 살고 있다. 김모(51)씨는 H여관에서 10년째 살고 있는 가장 오래된 쪽방 주민이다. 김모씨가 사는 3층에는 다른 주민들도 많았지만 최근에는 아저씨 혼자만 남았고, 2층 207호에는 노모(63)씨가 9년째 살고 있다. 둘다 월세를 내기 위해 건설현장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서로 바빠 얼굴 볼 시간도 없어 이웃이라고 부르지도 못했다. 

   
▲ 전기장판으로만 난방을 하는 최모 아저씨의 작은 방(2013.11.26)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H여관은 Y여관보다는 사정이 낫다. 보일러로 중앙난방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1일부터 모든 난방이 끊겼다. 주인이 보일러를 꺼 바닥에선 냉기가 올라오고 욕실에는 찬물만 나온다. 욕실에서 설거지를 할 땐 손에서 김까지 난다. 잘때는 전기장판을 키고, 점퍼를 입은 채 이불을 덮는다.

김모씨는 사업 실패 후 신용불량자가 돼 가족과 떨어져 살게 되면서 여관으로 왔다. 두 딸과 부인 얼굴을 생각하면서 하루 하루 열심히 빚을 갚아 빨리 가족에게 돌아가겠다고 맘을 먹었다. 하지만, 여관에서의 생활은 벌써 10년. H여관 301호 쪽방은 아저씨의 '집'이 됐다.

   
▲ Y여관 정면 건물에 '신세계' 규탄 플래카드가 걸렸다(2013.11.26)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그러나, 이들 모두 곧 여관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동대구복합환승센터' 사업이 시행되면서 지난 19일 신세계가 여관 주민 24명과 영세 상인 49명 등 세입자 73명을 상대로 '명도단행가처분' 신청을 했기 때문이다. 거주지 '불법점유자'니 12월 6일까지 대구지방법원에 재판을 받으러 오라는 것이다.

19일 한밤 중 여관 쪽방 주민들은 날벼락 같은 사실을 통보받았다. 글씨를 읽지 못하는 이모 아저씨는 수백페이지 통보문을 들고 김모씨를 찾아가 내용을 물었다. 그때부터 김모씨는 여관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릴 답변서를 모아 법원에 제출하기 위해 여관 곳곳을 다녔다. 하지만, 벌써 1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떠났다. 이 겨울 어디도 갈 데 없는 사람들만 마지막으로 여관에 남았다.  

   
▲ 법원에 제출할 답변서..."나는 불법점거자가 아닙니다"(2013.11.26)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이모씨는 "나는 불법점검자도, 범죄자도, 채무자도 아니다. 내 돈 내고 3년간 살았던 사람"이라며 "밥도 해먹고, 잠도 자고, 씻고, TV도 보고, 여기서 다 하고 살았는데 이마저 없어지면 어디로 가란 말인가. 한겨울 이몸을 끌고 어떻게 움직이나. 주거이전비를 주지 않으면 갈데가 없다"고 말했다.

김모씨는 "춥고 불편하고 좁은 집이지만 이 돈을 내고 우리가 있을 수 있는 곳은 여기 밖에 없다"면서 "삶의 벼랑 끝에 선 쪽방 주민들을 불법점유 운운하는 신세계나 방관하는 대구시가 야속하다. 여기서 이렇게 오랫동안 산 사람들의 집을 왜 마음대로 집이 아니라고 판단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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