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의 여름..."적응되지 않는 고통"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12.08.07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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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도 선풍기도 없어...쪽방상담소 "근본대책 시급" / 대구시 "전수 조사 중"


대구 서구 원대동 일대. 낡은 시멘트 벽과 슬레이트 지붕으로 이뤄진 한 평 남짓한 쪽방. 8월 7일 대구 낮 최고기온이 34도까지 오르자 쪽방 공기도 점점 뜨거워 졌다. 쪽방 거주민들은 땀을 식히기 위해 선풍기를 틀었다. 선풍기가 없는 이들은 방문을 열거나, 세숫대야에 물을 담아 발만 담갔다. 그러나, 환기가 잘 되지 않는 쪽방 구조 때문에 방 온도는 좀처럼 낮아지지 않았다.

대구 서구 원대동3가 여인숙 쪽방촌. 한 사람이 서 있기도 힘든 좁은 골목 사이로 쪽방이 다닥다닥 붙어있다(2012.8.7)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 서구 원대동3가 여인숙 쪽방촌. 한 사람이 서 있기도 힘든 좁은 골목 사이로 쪽방이 다닥다닥 붙어있다(2012.8.7)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15년째 쪽방에서 살아 온 유모씨(54.서구 원대동3가) 방에는 선풍기도 TV도 없다. 방에 있는 전자기계는 밥솥이 유일하다. 34도까지 오른 이날, 그가 더위를 이기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부채질이었다. 이마저도 사고로 팔다리를 움직이기 힘든 유씨에게는 무리였다.

그는 지난 2008년까지 용접공으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4년 전 사고로 다리와 팔을 다쳐 일을 할 수 없게 됐다. 이후, 그는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돼 매달 40만원을 지원받아 생계를 이어왔다. 그러나, 한 달 월세 14만원을 내고 나머지 돈만으로 전기세, 교통비, 식비를 대느라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유씨는 "병 때문에 나가면 어지럽고, 방안은 한증막이나 다름없다"며 "여름 쪽방 생활은 적응되지 않는 고통"이라고 했다.

유씨가 살고 있는 여인숙 쪽방의 옆방은 낮 시간이면 대부분 문이 잠겨있다(2012.8.7)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유씨가 살고 있는 여인숙 쪽방의 옆방은 낮 시간이면 대부분 문이 잠겨있다(2012.8.7)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유씨가 살고 있는 여인숙 쪽방에는 8월 현재 모두 11명이 거주하고 있다. 그러나, 이날 낮에는 1층 쪽방 대부분이 비어있었다. 거주민 대다수가 건설 일용직에 종사해 일터로 떠났기 때문이다. 더위를 참지 못해 다른 곳으로 대피한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유씨처럼 거동이 불편한 이들은 하루 종일 방 밖을 벗어날 수 없었다. 이모씨(59.서구 원대동3가)도 마찬가지였다. 심장과 호흡기관이 약한 이씨는 여름만 되면 코에 휴지를 꼽고 산다. 쪽방의 건조한 방안 공기로 콧속 점막이 금이 가 혈관이 찢어져 코피가 자주 흐르기 때문이다.

이날 아침에도 이씨는 코피를 흘렸다. 이씨는 "방에 창문이 없어 유독 건조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한 평 남짓한 이씨의 방에는 창문이 없었다. 이 때문에, TV를 켜놓지 않으면 한낮에도 방은 칠흑처럼 캄캄했다. 환기도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씨는 세숫대야에 물을 가득 담아 방문 입구에 놓고 가습기 겸 냉장고로 사용하고 있었다. 건조함과 음식 보존을 위한 임시방편이었다.

이씨는 공사장 건설 노동자로 십수년을 일해 왔다. 그러나, 겨울과 여름철이면 일감이 줄어들어 소득은 항상 불안정했다. 그래서 그는 돈을 절약하기 위해 이곳 쪽방에 방을 얻었다. 그러나, 4년 전 심장과 호흡기에 이상을 느껴 더 이상 일 할 수 없었다. 이후,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돼 매달 20만원을 지원 받았다. 하지만, 월세 14만원을 내고 나면 손에 남는 돈은 6만원 남짓. 치료는커녕 식대비로도 부족했다. 이씨는 "더위도 더위지만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임시방편으로 세숫대야에 물을 담아 '가습기 겸 냉장고'로 사용하고 있었다(2012.8.7)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이씨는 임시방편으로 세숫대야에 물을 담아 '가습기 겸 냉장고'로 사용하고 있었다(2012.8.7)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이와 관련해, 대구쪽방상담소는 지난 7월 11일부터 '쪽방주민 사례관리 봉사단'을 꾸려 '쪽방주민 폭염나기 캠페인'을 시작했다. 상담소는 보도자료를 통해 "7-9월 폭염기간 펄펄 끓는 찜통같은 쪽방 거주민을 보호하고, 이들의 가장 큰 고충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이 캠페인을 시작하게 됐다"며 "점차적으로 많은 시민들이 이 봉사대와 캠페인에 참여해 거주약자들에게 관심을 가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현재, '쪽방주민 사례관리 봉사단'에는 모두 70여명의 자원 봉사자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기업과 공무원 봉사단, 대학생과 개인 봉사자들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5명 내외로 조를 이뤄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각자가 지정한 지역의 쪽방을 돌며 '얼음 물'과 '라면'을 전달한다. 이날도 봉사단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봉사활동을 벌였다. 특히, 봉사단은 쪽방촌 거주자들의 '생계', '의료', '일자리', '심리적 상태', '주거 문제'에 대한 개인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있다. 8월말 캠패인이 끝나면 올해 대구지역 쪽방촌에 대한 현황을 발표할 예정이다.

서구 비산5동 쪽방촌 일대에서 모니터링을 진행 중인 '쪽방주민사례관리봉사단'(2012.8.7)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서구 비산5동 쪽방촌 일대에서 모니터링을 진행 중인 '쪽방주민사례관리봉사단'(2012.8.7)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강정우 대구쪽방상담소 팀장은 "여름만 되면 언론사에서 쪽방 관련 기사를 보도하지만, 지자체와 정부가 법률이나 조례를 제정하지 않으면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어렵다"며 "쪽방에 사는 거주인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무더위뿐만 아니라 의료서비스와 생계문제도 시급한 사항"이라며 "더 많은 자원봉사자들과 시민들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이영선 사회복지여성국 국장은 "폭염철 쪽방 거주민과 독거노인 관련해 현재 보건소에서 전화와 방문을 통해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이 국장은 "모든 이들을 구재할 수는 없지만, 현 상황을 파악하고 자활을 도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전수 조사가 끝나는 대로 병환이나 위기에 처한 사람들은 병원이나 재활센터에 입소시켜 치료를 도울 예정"이라고 답했다. 

한편, 대구에는 현재 동구 동대구역과 고속버스터미널, 서구 비산동과 원대동, 북구 칠성동과 대현동, 중구 대구시청과 달성공원 인근, 남구와 달서구 일대에 쪽방촌이 밀집해 있다. 이 가운데, 대구쪽방상담소가 발표한(2011) 대구지역 쪽방거주자 현황을 보면, 현재 대구에는 131개 쪽방 건물, 1414개의 쪽방이 있고, 모두 850여명의 거주민이 있다. 또, 기초수급자는 434명이고 나머지 416명은 수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

'달셋방 있습니다', '싼 방 있습니다'...서구 원대동과 비산동 쪽방촌 주변 벽에는 이같이 적힌 전단지들이 많다(2012.8.7)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달셋방 있습니다', '싼 방 있습니다'...서구 원대동과 비산동 쪽방촌 주변 벽에는 이같이 적힌 전단지들이 많다(2012.8.7)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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