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장 취임준비위'로 간 시민단체 대표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택진 칼럼] "지역 시민단체, 그 가치를 일상에서 실천하는지 돌아봐야"


 지방선거 이후 광역자치단체장으로 당선된 사람이 시민단체 현직대표에게 공동취임준비위원장을 제안했다. K대표가 몸담고 있던 시민단체는 지방권력 감시와 정치혁신을 주요과제로 하는 단체였다. K대표는 대표직을 사임했고 공동취임준비위원장 제안을 수락했다. K대표 외에도 시민운동과 관련된 인사가 여럿 들어갔다. 우리 대구의 일이다. 어제는 지방권력을 감시하는 단체의 대표로 오늘은 지방정부의 당선자 취임준비위원장으로 하루아침에 ‘명함’이 바뀐 것이다. 보도를 통해 소식을 접했고 당혹스러웠다.

 K대표의 자리 이동은 불법도 아니고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현직대표가 직을 버리고 옮긴 것이 드물기는 해도 ‘선의’를 파악하고 싶었다. 당선자의 정책공약의 기본 뼈대 위에서 세부과제와 살을 붙여 다시 당선자에게 제안하는 20일간의 취임준비위원회였다. K대표가 취임준비위원장을 맡으면서 평소에 활동하고 관심 있던 분야의 준비된 정책을 정리해서 제안할 수도 있고, 시민단체 출신으로 시민단체의 의견을 폭넓게 수용하여 반영시킬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내가 파악할 수 있는 선의는 이 정도다.

 선거 과정에 지역의 여러 시민 사회단체들이 각 후보들에게 분아별 정책제안을 했다. 일부는 정책협약식을 맺었고 일부는 문서로 전달되었다. 시민사회단체들이 제안한 정책을 당선자가 수용하고 실질적으로 집행할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스스로가 내세운 핵심적 공약도 파기하는 대통령을 목격하고 있고, 그 당의 후보로 당선된 대구시장이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는 회의가 드는 것도 사실이다. 취임준비위원회에서 세부정책을 정리해 보고하는 것과 시민사회단체의 입장에서 정책을 제안하는 것의 차이가 얼마나 클지 모른다. 단순 비교할 수 없는 일이다. 새로 당선된 시장에게 좋은 정책을 제안하는 일이 중요하더라도 현직대표를 버리고 가야했던 일인지 K대표의 선의를 파악하더라도 그의 자리이동이 쉽사리 수긍가지 않는다.

 최근 두 번의 국무총리 임명자의 청문회 전 낙마와 정홍원 총리의 재기용, 다른 장관 후보자들의 각종 의혹은 다시 한 번 한국정치가 어느 수준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정치적 입장, 스스로의 능력과 자질문제는 제대로 검증도 해보지 못했다. ‘법을 지키자’고 강변하면서 탈법과 불법을 일삼은 자들이다. ‘정직해야 한다’면서 논문을 베껴 쓰고 남의 노력을 자신의 것으로 옮긴 자들이다. ‘언행불일치’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핵심이다. 국민들의 눈높이는 매우 높아졌고 이것은 비단 정부 여당뿐만이 아니라 야당과 기업 시민사회단체에게도 동등하게 적용된다.

 K대표가 있었던 시민단체는 지방권력감시와 정치개혁을 주요과제로 하였고 본인이 위원장으로 있던 ‘시민정치특별위원회’는 지역의 진보-개혁세력이 성장할 토대를 구축하는 것이 주요임무였다고 한다. K대표의 행보는 스스로가 참여하여 정리한 역할과 임무와는 상반된 길을 가고 있다. 같은 길이었으면 대표직을 사퇴하지 않지 않았겠는가? K대표는 임기가 있는 현직대표로 자신의 남은 임기도 채우지 않고 사임을 하고 간 것이다. 시민의 참여로 권력을 감시하고 정치를 개혁하고 대구를 바꾸자는 슬로건과 다르게 개인의 자리이동으로 대구를 바꾸려 한 것이다. 자신을 선출한 단체와의 약속을 다 이행하지 못하고 상반된 곳으로 위치이동을 한 K대표에게 시민단체의 도덕성 투명성 진정성을 기대하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K대표의 문제는 비단 개인의 문제에 국한하기도 어렵다. K대표가 있었던 시민단체의 지역주민회는 이렇게 지적했다.

 [문제는 그들의 개인적 판단이 아니다. 이와 같은 ****대표와 간부의 일탈에 대하여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어떤 문제제기도 하지 않는 ****의 모습이다.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관행적으로 얼버무린다. 이래선 안 된다. 우리는 이들의 행보가 ****의 기본정신과 정체성을 훼손하고, 많은 회원들의 분노와 허탈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음을 직시해야한다.]

 그렇다. 지역의 시민사회단체는 이번 일을 계기로 자체의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점검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대표는 실질적으로 대내외를 대표하는지, 대표 임원 상근자가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운영되는지, 내부의 소통과 민주주의는 충분한지, 임원과 회원 간의 괴리는 없는지 등을 꼼꼼히 찬찬히 살펴야 한다. 정관 규약에 담긴 가치를 스스로의 일상에서 실천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시민사회단체의 위기란 말이 나온 지도 오래됐다. 위기는 일상에 내재되어 있다. 곳곳의 균열이 어느 순간 터지게 되는 것이다.

 혁신의 좋은 소식을 듣는 것보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많아 함께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 부끄럽고 아프다. 기본에서 이탈하고 기초가 허약해진 결과라 생각한다. 좋은 열매는 좋은 토양과 뿌리에서 나오는 것임을 잊지 말자. 시간은 자꾸 가고 열매가 매달리지 않는다 집착하면 땅을 버리고 딴 곳으로 가고 싶어지는 것이다. 처음부터 새롭게 땅을 갈아 엎는 ‘우공이산’의 마음으로 움직여야 대구사회가 바뀐다고 믿는다. 곳곳에 조용하지만 아름다운 변화의 움직임들이  있다. 방법의 변화보다 깊이 뿌리내리고 꾸준히 함께한 과정에서 오는 좋은 모습들이다. 천천히 스며들 듯이, 작은것에서 출발하고, 치열하지만 구체적으로 시작하자.





[오택진 칼럼] 22
오택진 / <연구공간Q+> 대표.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지금 주목 받고 있어요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