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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마저 왜곡되는 분단의 현실
[김두현 칼럼] 임을 위한 행진곡, 사향가, 전선야곡, 눈물 젖은 두만강, 아리랑...
2015년 06월 12일 (금) 10:11:55 평화뉴스 pnnews@pn.or.kr

 올해는 남북이 분단된지 70년이 되는 해이다. 분단은 참으로 많은 것을 왜곡시켰다. 남북 주민들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후퇴시키고, 일상적으로 평화를 위협받고 있으며, 분단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으로 우리가 마땅히 누려야 할 복지혜택도 유보시키고 있다. 분단은 정치체제와 같이 높은(?) 수준의 문제만 왜곡시킨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일상과 삶마저 분단으로 인해 뒤틀리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노래이다. 분단문제로 왜곡된 문제를 이야기 하는데 뜬금없이 왠 노래타령이냐고 물을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단은 분명 우리가 노래의 의미조차 왜곡시켜 마음껏 부를 자유를 가로 막고 있다.

분단이 왜곡시킨 '임'과 '새날'

불과 얼마전이다. 지난 5월 18일, 제35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제창이 아닌 합창 방식으로 불려졌다. 행사를 주관하는 국가보훈처는 그 이유로 ‘임을 위한 행진곡’이 북한이 제작한 5.18 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 배경음악으로 사용되어 노래 제목과 가사 내용인 '임과 새날'의 의미에  논란이 야기됐다"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특히 작사자인 황석영의 월북행위 등으로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체계와 양립할 수 없다는 의견이 있어 제창시 또다른 논란 발생으로 국민 통합에 저해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임을 위한 행진곡’은 광주항쟁 때 숨진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씨와 야학을 운영하던 박기순 씨의 영혼결혼식에 헌정된 노래이다. 김종률씨가 곡을 붙이고 소설가 황석영씨가 백기완의 시 '묏비나리'에서 일부를 인용해 가사를 붙였다는 것이 정설이다. 특히 시기적으로  광주민중항쟁이 1980년이고, 영혼결혼식을 위해 노래가 나온 게 82년이며 황석영씨가 방북한 게 89년이고 북한영화가 나온 게 91년이니, 10년 전 작곡된 이 곡이 북의 영향을 받아 제작되었을 리가 없다는 것이 상식적 사고일 것이다.

   
▲ <전남일보> 2015년 5월 19일자 1면

하지만 분단으로 인한 남북간 대결구조는 이러한 상식과 합리를 허용하지 않는다. 광주항쟁 당시 도청에서 죽어간 젊은이들을 노래한 ‘임’이 ‘김정일’로 둔갑되고 민주화된 세상을 의미하는 ‘새날’도 '적화통일의 그 날'로 왜곡된다. 보편적인 노래가사의 의미마저 왜곡시켜 북과 연결시켜 내는 괴물이 바로 분단인 것이다.

'사향가'와 '전선야곡'의 어머니 마음

 고백할 것이 있다. 노래가사의 의미마저 왜곡시키는 ‘분단’이라는 괴물의 힘에 통일운동을 15년 넘게 해온 필자마저 ‘함께 노래 부르기’를 주저했던 아픈 기억이 있다.

두 번째 만주기행인 2010년 여름의 단동 북한식당에서 생긴 일이다. 알다시피 북한식당의 접대원들은 서빙만 할 줄 아는게 아니다. 한두가지 ‘악기’를 다룰 줄 알고 노래와 춤도 수준급이다. 단동 북한식당의 접대원들도 마찬가지이다. 음식과 술이 들어가고 남과 북이 함께 하는 ‘아리랑’과 ‘우리의 소원’을 부르며 기분도 어느정도 올랐을 때였다. 김일성 주석이 직접 만들었다는 ‘사향가’를 부르더니 앞의 공연때 ‘북한노래’를 곧잘 따라 부르던 나를 무대로 오라고 손짓하는 것이었다. 나는 순간 주저하였다. 이미 중국의 ‘북한식당’에서 ‘사향가’를 부른 참여정부 시절의 고위 공무원이 곤혹을 치른뒤였다. 게다가 봄에 발생한 ‘천안함 사건’으로 인해 남북의 대결분위기가 고조되고 ‘5․24’조치 이후 해외의 ‘북한 식당’마저 출입이 자유롭지 않던 때가 아닌가? 북한 식당에 출입하는 사람들은 정보기관이 체크한다는 소문마저 돌던 때였다. 아무리 오랜 기간 통일운동을 하고 북을 수십차례 드나들었다 한들 쫄지 않을 수 없던 것이다. 눈치도 없이 그 접대원은 수차례 손짓해도 주저하고 있는 나를 기어코 손을 이끌고 무대로 불러내었다. 물론 무대에 선 다음에야 그 접대원과 나는 손을 맞잡고 사향가를 목청껏 함께 불렀다.

북한 식당에서 북한 여성과 노래한곡 같이 하는 것이 뭐 그렇게 무서워 할 일이냐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2010년의 분위기는 살벌(?)하였다. 2000년 6․15공동선언 이후 화해와 협력관계를 유지하던 남북관계가 이명박 출범 이후 위태 위태하더니 ‘박왕자’씨 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이 끊어지고 ‘천암한 사건’으로 ‘개성공단’을 제외한 모든 남북교류가 끊긴 상태였기 때문이다. 분단체제의 위력이 다시 발휘되던 시기였던 것이다. 사실 김일성 주석이 만들었다는 ‘사향가’의 내용은 그야말로 별 것이 없다.

사향가
내 고향을 떠나 올 때 / 나의 어머니 문 앞에서 눈물 흘리며 / 잘 다녀오라 하시던 말씀 / 아 아 귀에 쟁쟁해
우리 집에서 멀지 않게 / 조금 나가면 작은 시내 졸졸 흐르고 / 어린동생들 뛰노던 모양 / 아 아 눈에 삼삼해
대동 강물 아름다운 / 만경대의 봄 꿈결에도 잊을 수 없네 / 그리운 산천 광복의 그 날 / 아 아 돌아가리라


‘사향가’는 북에서 가장 애창되는 노래 가운데 하나이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그 이유는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먼 타국으로 떠나는 자식을 보내는 어머니의 애절한 마음과 고향을 등지고 만주벌판에서 항일운동을 하던 청년들이 고향을 그리는 마음을 잘 담내었기 때문이 아닐까?

2011년 한국전쟁 당시의 전투양상을 잘 담아낸 신하균, 고수 주연의 ‘고지전’에 이런 장면이 있다. 서로 뺏고 빼앗기는 ‘고지전’의 와중에 남과 북의 병사들이 노래를 부르며 잠시 휴전을 취하는 장면이다. 당시 함께 불렀던 노래가 바로 ‘전선야곡’이다. 남성식(이다윗 분)이라는 신참병사가 서울에서 유행한다던 ‘전선야곡’을 신고식에서 멋들어지게 불러 이미 남쪽 병사들에게는 인기를 누리던 ‘전선야곡’이 치열한 전투와중에서 남과 북의 병사들이 함께 불러 잠시 휴전상태를 만들었던 것이다. 비록 상상의 영화장면이지만 ‘전선야곡’이 전투를 멈추게 했던 힘은 아마도 ‘전선야곡’의 가사에 담긴 보편성 때문이 아니었을까?
 
전선야곡
가랑잎이 휘날리는 전선의 달밤 / 소리없이 내리는 이슬도 차가운데 / 단잠을 못이루고 돌아눕는 귓가에
/ 장부의 길 일러주신 어머님의 목소리 / 아~~아~~ 그 목소리 그리워
들려오는 총소리를 자장가 삼아 / 꿈길속에 달려간 내고향 내집에는 / 정안수 떠놓고서 이 아들의 공 비는
/ 어머님의 흰머리가 눈부시어 울었오 / 아~~ 아~~ 쓸어안고 싶었오


   
▲ 영화 고지전(감독 장훈. 2011). 영화 속 남성식(이다윗 분) 이병이 '전선야곡'을 부르는 장면

살아 돌아올지 모르는 전선에 있는 자식 생각에 단잠을 못 이루는 어머니의 마음, 정안수 떠놓고 아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비는 모정(母情)은 남이나 북이나 다 같은 것이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대한민국 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보내야 하는 군대이지만 자식을 보내놓고 남북의 대결상황으로 휴전선에 긴장이 고조되면 밤잠을 못 이루는 어머니의 마음은 남이나 북이나 매한가지일 것이다.

그렇다. 잃어버린 조국을 되찾기 위해 만주벌판으로 자식을 보내야 했던 어머니의 마음이나 남과 북의 대치상황에서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전선으로 자식을 보내야 하는 어머니의 마음은 갈라진 남과 북이 다르지 않은 것이다. '사향가‘의 어머니 마음과 ’전선야곡‘의 어머니 마음이 다르지 않은 것이다. 노래는 이렇게 보편성을 띄는 것이다.

오작교 없어도 노둣돌이 없어도

2005년 북의 아리랑 공연을 보기 위해 평양을 방문한 적이 있다. 10만이 참여한다는 대집단 체조와 아리랑공연의 시작과 함께 나오는 첫 노래가 놀랍게도 ‘눈물 젖은 두만강’이었다. 첫 장면은 다름 아닌 식민지 일제의 억압에 나라를 빼앗기고 고향땅을 떠나 ‘만주’로 독립운동을 하러 떠나는 남편을 보내는 이별장면이었다. 당연히 그 장면에 제일 어울리는 노래는 ‘눈물 젖은 두만강’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눈물 젓은 두만강’의 가사가 독립운동을 하던 남편을 수소문해 찾아온 여인이 남편이 이미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처형되었다는 사연을 듣고 지은 것이기 때문이다. 분단의 세월은 남과 북의 삶과 민족의 운명을 왜곡시켰지만 여전히 남과 북에 흐르는 보편적 정서는 변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 북한을 대표한다는 공연의 제목 자체가 ‘아리랑’이 아닌가?

분단으로 인해 왜곡된 보편성을 회복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김원중의 ‘직녀에게’가 노래한 것처럼 너무 긴 슬픔과 이별을 끝내기 위해서는 서로의 적대감을 눈물로 녹이고 오작교가 없어도 노둣돌이 없어도 남과 북이 만나야 할 것이다. 그래서 임진강을 자유로이 오고 가는 물새들 처럼 고향을 가고파도 못가는원한의 세월은 끝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분단은 노래의 보편성마저 왜곡시켰다. 영화속의 상상에서 남과 북의 병사들이 함께 불렀던 ’전선야곡‘처럼 현실에서 남과 북이 ’사향가‘를 목청껏 함께 부르며 식민지시절 자식을 만주벌판으로 보내야했던 어머니의 마음을 함께 공감하는 날은 언제 올 수 있을 것인가?

직녀에게 (문병란 시집 '땅의 연가' 中. 노래 김원중) 
이별이 너무 길다 / 슬픔이 너무 길다 / 선 채로 기다리기엔 / 세월이 너무 길다
말라붙은 은하수 / 눈물로 녹이고 / 가슴과 가슴에 / 노둣돌을 놓아
그대 손짓하는 연인아 / 은하수 건너 / 오작교 없어도 노둣돌이 없어도 / 가슴 딛고 다시 만날 우리들
연인아 연인아 / 이별은 끝나야 한다 / 슬픔은 끝나야 한다 / 우리는 만나야 한다
그대 손짓하는 연인아 / 은하수 건너 / 오작교 없어도 노둣돌이 없어도 / 가슴 딛고 다시 만날 우리들
연인아 연인아 / 이별은 끝나야 한다 / 슬픔은 끝나야 한다 / 우리는 만나야 한다


   





[김두현 칼럼]
김두현 / 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 사무처장.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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