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골로 갔다'...끝내 돌아오지 못한 '학살'의 역사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15.07.10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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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레드툼>, 보도연맹사건 증언ㆍ현장 10년 촬영...유족회 "역사의 진실을 기억하길"


그들은 밤새 골로 갔다. 저수지서 물을 마셨다. 손은 뒤로 묶였다. 줄줄이 사람이 따라왔다. 아무도 도망가지 못했다. 교복입은 어린 학생은 고무신이 벗겨져 맨발로 끌려왔고, 23살 여성은 오빠대신 잡혀왔다. 아이를 업은 엄마도, 동네 어귀에서 막걸리를 마시던 어르신들도, 한밤 중 집에서 자던 청년들도 영문도 모른채 골로 갔다. 경찰이 집에 찾아와 이름을 불렀고 그들은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영화 '레드툼'의 한 장면, 유족의 증언(2015.7.10) /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영화 '레드툼'의 한 장면, 유족의 증언(2015.7.10) /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경남 의령군에 사는 백발이 성성한 한 할머니는 지난 1949년 당시의 기억을 더듬었다. "올 때 트럭에 한 가득 싣고 왔어. 그 다음 차가 또 사람들을 싣고 재를 넘었어. 천으로 뒤로 묶어 내리게 하고 안 풀어줬지. 총 소리가 팡팡팡 나고 탄피가 나돌았어. 나중에 보니 전부 죽어 누워 있더라. 신발이고 옷이고 전부 뒹굴었어. 좀 있다 올라와보니 뼈가 나와 있었지. 한꺼번에 집단적으로 묻은거야"

잔인한 역사에 대한 증언은 이어졌다. 밀양시 삼랑진읍 미전리에 사는 한 할아버지는 친구가 끌려갔다. "죽어도 억울하게 죽은거야. 그때는 무조건 빨갱이로 몰아 죽였어. 무서워서 나는 숨었어. 이틀 뒤 알았어 희율이가 골로 간거. 산에서 총소리가 나 감으로 알았지만 죽였다는 생각은 못했어. 공산주의가, 민주주의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경찰이 미전고개 골로 끌고가 죽였어. 땅에 묻지도 않았지"

영화 '레드툼'의 한 장면...당시를 떠올리는 할머니(2015.7.10)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영화 '레드툼'의 한 장면...당시를 떠올리는 할머니(2015.7.10)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1950년 한국전쟁 전후 '국민보도연맹원'에 대한 이승만 정부의 집단 민간인 학살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레드툼(빨갱이 무덤)'이 9일 대구 오오극장에서 개봉했다. 레드툼은 9일 전국 17개 극장에서 동시 개봉했으며, 대구에서는 독립영화전용극장인 오오극장에서 유일하게 상영한다.

특히 10일 대구에서는 '대구10월항쟁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희생자 유족회'를 위한 특별상영회로 진행됐다. 극장에는 유족 40여명이 빼곡하게 자리를 채웠다. 유족회에는 10월항쟁과 국민보도연맹 사건, 가창골, 경산코발트광산 등 대구경북지역 민간인 희생자 유족 5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채영희(71) 10월항쟁유족회 회장은 "65년전 이승만 정부 학살로 아버지를 잃었다"며 "나와 비슷한 아픔을 가진 이들의 얘기를 담은 영화라고 해서 극장을 찾았다"고 했다. 나정태(69) '한국전쟁전후 경산코발트광산 민간인희생자유족회 이사는 "보도연맹 학살은 우리의 흑역사(黑歷史)"라며 "유족들과 당시를 기억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기억한 이 영화를 통해 많은 시민들이 진실을 기억하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레드툼 포스터를 보는 경산코발트 유족 나정태 이사(2015.7.10)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레드툼 포스터를 보는 경산코발트 유족 나정태 이사(2015.7.10)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레드툼은 <민중의소리> 기자인 구자환(49) 감독이 지난 10년 동안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로, 보도연맹사건에 연루돼 집단학살된 경남지역 사람들에 대한 진실을 담고 있다. '골로 간다', '물을 먹는다'는 표현은 이 사건 발생 후 산과 강물에서 억울하게 죽은 이들을 표현하는 말로 지금도 사용된다. 

구 감독은 2004년 마산 진전면 여양리 보도연맹 유골발굴을 취재하며 영화를 만들었다. 유족, 당시를 기억하는 이들과 함께 학살지를 다니며 현장을 기록했다. 2013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우수작품상 수상 후 보강작업을 거쳐 지난해 최종 상영본이 완성됐다. 그러나 개봉관을 구하기 어려워 올해 3월부터 한달간 시민후원을 모금했다. 모금에는 시민 1백여명과 10개 단체가 참여해 3천여만원이 모였다. 

국민보도연맹은 1949년도에 만들어졌다. 좌익 사상을 가진 이들의 의식 전향을 위해 정부가 만든 반공단체다. 그러나 한국전쟁 후 정부는 이들을 '빨갱이'라고 판단해 학살을 자행했다. '한국전쟁전후민간인피학살자유족회'에 따르면, 보도연맹 피해자는 최소 23만명에서 최대 43만명으로 파악된다.

대구에선 50년 6~9월에 가창골, 경산코발트광산, 앞산빨래터, 학산공원, 신동재, 파군재 등에서 학살이 집중된 것으로 유족회는 보고 있다. 대구형무소 수감자 2~3천여명과 전국 각지에서 잡혀온 보도연맹 관련자 5~8천여명 등이 대구 가창골에서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오오극장을 찾은 유족 40여명(2015.7.10)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오오극장을 찾은 유족 40여명(2015.7.10)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노무현 정부는 2005년 대통령 직속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를 설치하고 국가에 의한 민간인 희생사건을 조사했다. 진실화해위에 따르면,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매장지는 전국 168곳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13곳에서 유해발굴이 진행됐지만 이명박 정부 후 모든 발굴이 중단됐다. 대구에서는 10월항쟁유족회가 올해 처음으로 가창골에서 발굴작업을 했지만 유해는 발견되지 않은 상태다.

한편, '대구10월항쟁유족회'는 오는 31일 오전 11시 대구시 가창댐 수변공원에서 10월항쟁 희생자 65주기 위령제를 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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