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중부서 역사관, '영남폭동'서 '10월사건'으로 정정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15.03.10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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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 항의 후 설명문도 '식량정책에 항의한 시위'로...중부서 TF팀 다른 내용도 점검


대구중부경찰서가 중부서 내에 있는 경찰역사체험관에 국가에 의한 민간인 학살사건인 대구10월항쟁을 '영남폭동사건'으로 전시했다 유족들의 항의를 받은 뒤 4년만에 '대구10월사건'으로 정정했다.

대구중부서는 중부서 내 경찰역사체험관에 '영남폭동사건'이라고 전시한 대구10월항쟁전시물을 '대구10월사건'으로 정정했다(2015.3.10)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중부서는 중부서 내 경찰역사체험관에 '영남폭동사건'이라고 전시한 대구10월항쟁전시물을 '대구10월사건'으로 정정했다(2015.3.10)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10일 중부서는 역사체험관 2층 '주요 사건사고' 전시판에서 1946년 10월 1일에 대해 '영남폭동사건'이라고 규정한 것을 '대구10월사건'이라고 정정했다. 또 '조선공산당 지령과 선동으로 대구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대구 10.1폭동사건이라고도 한다'고 설명한 부분은, 지난 2010년 3월 30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해위)가 발표한 결정문대로 '대한민국정부수립 전 식량정책 등에 항의한 시위운동'이라고 고쳤다. 이어 당시 경찰에 연행되던 민간인 모습을 담은 '영남폭동사건'이라는 제목의 사진도, 시위하는 시민과 대치하는 경찰 모습이 담긴 ' 대구10월사건'이라는 사진으로 변경했다.

중부서는 이뿐 아니라 TF팀을 꾸려 역사체험관 내 다른 전시물 내용도 재점검해 잘못된 부분이 있는지 확인할 예정이다. 김기태 대구중부서 경무과장은 "유족회가 요구한 정정문과 정부의 공식 입장을 함께 검토해 역사적으로 가장 객관적인 내용으로 전시물을 정정했다"며 "앞으로 이 같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오류나 실수가 없도록 TF팀을 꾸려 다른 전시물 내용도 점검하겠다. 다시 유족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전하며 다시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중부서 차원에서 최선을 다 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구10월사건'이라고 정정하기 전 '영남폭동사건'이라고 설명된 전시물을 보는 채영희 10월유족회장(2015.3.5)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10월사건'이라고 정정하기 전 '영남폭동사건'이라고 설명된 전시물을 보는 채영희 10월유족회장(2015.3.5)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채영희(71) 10월유족회 회장은 "뒤늦게 역사왜곡이 정정돼 천만다행"이라며 "다시 역사왜곡이 재발하지 않도록 경찰, 대구시 등 모두 노력해달라"고 10일 평화뉴스와의 통화에서 밝혔다. 또 "10월항쟁이라고 수정되면 가장 좋지만 10월사건도 객관적 사건 이름이기 때문에 더 추가정정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며 "많은 시민이 이제서야 제대로된 역사적 진실을 알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덧붙였다.

나정태(69) '한국전쟁전후 경산코발트광산 민간인희생자유족회' 이사도 "10월사건으로 정정된 것만으로도 만족한다"며 "불의에 역사에 저항한 수많은 희생자들의 영령을 위로하기 위해 항쟁이라고 표현하는 게 가장 옳지만 여러 입장이 있기에 이 정도로 정정된 것도 다행"이라고 말했다. 또 "다시는 이 같은 일이 일어나선 안될 것"이라며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중부서의 행보를 지켜보겠다"고 했다. 

중부서는 2011년 대구경찰 역사, 활동사항을 알릴 목적으로 경찰역사체험관을 개관했다. 현재 관장은 김우락 중부서장이 맡고 있다. 역사체험관은 1.2층으로 이뤄졌고 1층은 경찰 관련 전시물, 2층은 사건.사고 전시물이 게재됐다. 개관에는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등이 참여했다. 역사체험관이 있는 경찰서는 대구에선 중부서가 유일하며 지금까지 5만여명의 시민들이 다녀갔다. 

그러나 지난 4년간 중부서는 이 역사체험관에 대구10월항쟁을 '영남폭동사건'으로 전시했다. 이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10월항쟁유족회'는 지난 5일과 9일 중부서를 찾아 항의면담을 갖고 '내용 정정'을 요구했다. 중부서는 이 과정에서 유족에 사과를 한 뒤 사실확인을 거쳐 10일 전시물을 정정했다.

대구중부경찰서 경찰역사체험관(2015.3.5)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중부경찰서 경찰역사체험관(2015.3.5)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10월항쟁은 2005년부터 대통령 직속기관 진실화해위가 재조사를 벌였다. 2013년 진실화해위가 작성한 '대구10월사건 관련 진실규명결정서'에 따르면, 1946년 대구 시민들은 해방 직후 미군정 '식량정책'을 비판하며 9월 총파업을 벌였다. 10월 1일에는 미군정과 친일파 '축출' 촉구 대규모 항쟁을 했다. 하지만 미군정과 대구경북에서 지원을 나온 경찰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우익단체를 동원해 시민들을 '좌익'으로 몰아 무력진압했다. 그 결과 이름이 확인된 희생자만 204명으로 집계됐다. 때문에 정부는 10월항쟁에 대한 국가 책임을 인정하고 유족에 대한 사과와 함께 매년 위령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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