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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성마비 딛고 인생의 '막' 올린 어느 청년 이야기
첫 연극무대에 선 서문규(21)씨..."특별하지 않은, 해맑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2015년 09월 01일 (화) 15:25:01 평화뉴스 박성하 기자 pnnews@pn.or.kr

   
▲ 연극 <그때 그리고 지금>에서 '병태'역을 맡은 서문규씨 / 사진 제공. 에테르 극단 청춘샐러드

8월 30일 남구 대명동. 컴컴했던 소극장에 한 줄기 조명이 켜지고 한 왜소한 청년이 등장했다. 그의 첫 마디는 "통화중이었다, 왜?". 어딘가 모르게 어눌한 발음에 고개를 갸우뚱 하려던 찰나, 자연스러운 슬랩스틱 개그와 이어지는 대사에 극장은 관객들의 웃음으로 가득 찼다. 무대를 끝내고 막 뒤로 들어가는 청년의 걸음걸이는 조금 '남달랐다'.  

남다른 걸음걸이의 주인공은 지난 30일 대구 남구 대명동 우전소극장에서 열린 연극 <그때 그리고 지금>에서 코믹감초 '병태'역을 맡은 서문규(21.북구 동천동)씨다. 뇌성마비라는 신체적 장애를 극복하고 배우의 꿈을 좇아 무대에 오른 청년 서문규씨를 31일 만났다.

문규씨는 1994년 3월 700g의 이란성쌍둥이로 태어났다. 몸의 움직임이 정상적인 아이와 달라 인큐베이터에서 지내던 중 39도가 넘는 열병을 앓으면서 뇌가 손상됐고 3살 때 뇌성마비 3급 판정을 받았다. '뇌성마비'는 뇌 손상으로 인해 신체 근육의 조절이 잘 되지 않아 자세와 운동기능에 이상이 생기는 질환이다. 다행히도 3분 30초 늦게 태어난 여동생은 아주 건강하게 성장했고, 학창시절 내내 문규씨의 든든한 보디가드가 돼줬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첫 소풍을 갔는데 동생이 부축해준 덕분에 대열에 맞춰 따라갈 수 있었어요. 제대로 걸을 수 없었기 때문에 조금씩 뒤쳐지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선생님과 반 친구들은 너무 멀리 가버려서 시야에서 사라졌어요. 동생과 둘만 덩그러니 남겨졌을 때의 그 외로움이 아직도 잊혀 지지 않아요"

문규씨는 초등학교 시절엔 친구가 없었다고 했다. 보통의 사람과는 다른 걸음걸이와 왜소한 몸집이 또래 친구들에겐 놀림거리의 대상으로 비춰졌다. 10살이 되던 해 서울 세브란스 병원에서 근육이완수술을 받았지만 수술이 성공적이지 못해 "이제 걸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판정을 받았다. 두 발을 땅에 지탱하고 일어날 수는 있었지만 다리가 사정없이 흔들리고 상체는 배배 꼬여서 가만히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어느 날은 아버지랑 목욕탕에 갔는데 입구에서 주저앉아 못 걷겠다고 하니까 아버지는 어떻게든 알아서 오라고 하며 탕에 들어가셨어요. 발가벗은 상태로 어찌할 바를 몰랐죠. 이 악물고 일어나 앞발가락을 한껏 오므리고 뒷꿈치를 바닥에 디딘 상태로 걸어봤어요. 조금씩 앞으로 나갈 수 있었어요. 일명 '요족'이라고 하는 발 모양을 하고 걷기 시작 했어요"

   
▲ 서문규(21)씨 / 사진. 평화뉴스 박성하 기자

이후 꾸준한 재활치료를 거쳐 12살이 되던 해 문규씨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걸을 수 있게 됐다. 걸을 수 없을 것이라는 3번의 판정을 받았지만 그는 보란 듯이 두 발로 걸었다. 그리고 지난해 장애 재판정 검사에서 뇌성마비 6급을 판정받았다. 문규씨는 부모님께 짐이 되고 싶지 않아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했다고 했다. 가늠할 수 없는 그의 노력이 맺은 선물이 아닐까.  

중학교 진학 후 문규씨는 '마술'에 흥미를 가지게 됐다. 우둔했던 손놀림을 고쳐보고자 방과 후 수업으로 배우게 된 마술은 대인기피증이 있는 그에게 새로운 기회이자 도전이었다. 대구 동성로에서 공연을 해보라는 선생님의 권유에 매주 수요일 낯선 사람들을 붙잡고 거리에서 마술연기를 펼쳤다. 중학교 2학년부터 3년 동안 이어진 공연에서 문규씨는 사람들 앞에 선다는 것에 큰 매력을 느꼈고 '연극배우'의 꿈을 갖게 됐다.

성인이 된 이후 문규씨는 쉴 새 없이 아르바이트를 했다. 부모님께 손 벌리기 싫어 스스로 생활비 정도는 마련하고 싶었고, 타지역에서 공부하고 있는 동생에게 용돈도 주고 싶어서였다. 백화점 주차요원, 편의점 아르바이트… 일을 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았다.

"주차요원 알바를 할 때는 고객 컴플레인이 자꾸 들어와서 2달 만에 일을 그만둬야 했어요. 다리를 절름거리는 안내요원이 기분 나쁘다는 이유로 회사에 항의를 했다고 그러더라고요" 이 같은 이유로 문규씨는 알바를 몇 차례 그만둬야 했다. 

그리고 올해 초, 본격적으로 극단에 들어가 연극을 배우고 싶어 인터넷을 검색하던 중 문규씨는 에테르 극단의 광고문구를 발견했다. 곧바로 단장에게 전화를 걸어 지원을 했고 '조금 다른 사람'이라는 첫 소개에 흔쾌히 입단을 허락 받았다. 3월부터 연극 <그때 그리고 지금>의 연습이 시작됐고 150일의 연습기간을 거쳐 지난 30일 문규씨는 첫 무대에 올랐다.

   
▲ 연극 <그때 그리고 지금> 리허설 중인 서문규씨 / 사진 제공. 에테르 극단 청춘샐러드
   
▲ 공연 후 배우ㆍ관객들과의 단체촬영. 맨 뒷줄 왼쪽에서 세번째 서문규씨(2015.8.30.우전소극장) / 사진. 평화뉴스 박성하 기자

"무대에 서는 순간 저는 장애를 가진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보통의 사람이 되는 거예요. 관객들이 그렇게 바라봐주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어요. 너무나 행복하고 감사한 일입니다"

문규씨의 최종 목표는 '유명인'이 되는 것이다. 돈, 명예 혹은 인기로 유명한 사람이 아니라 서문규라는 이름을 말했을 때 "아, 그 해맑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짝사랑 전문배우 서문규씨의 다음 무대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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