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청년 L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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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택진 칼럼] 청년이 불행한 나라에 희망은 없다


 스물여덟, L은 취업준비생이다.

 L은 취업스터디를 하고 있다. 5명으로 이루어진 스터디 팀은 매주 ‘글쓰기’와 ‘신문브리핑’을 한다. 1주일에 두 번, 한 번은 글쓰기 한 번은 신문브리핑이다. 글쓰기는 한 주에 하나씩 주제를 정해 글을 쓰고 팀원들이 돌려가며 읽으면서 의견을 말한다. 수정 보완해야 할 내용, 첨삭해야 할 단어 문장 등을 얘기하는데 팀원들의 지적이 L에게는 가끔씩 상처가 되기도 한다. 신문브리핑은 매주 한 종류의 종이신문을 읽고 그 주 브리핑을 준비한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으로 보는 것과 종이신문으로 보는 것이 차이가 난다. 매일 종이신문을 살 수가 없어 도서관에 가거나 인쇄판 신문파일을 볼 수 있는 사람의 ID를 빌려서 보기도 한다.

 진보적인 성향의 L은 특정신문의 논조에 비판하며 신문브리핑 안에 ‘졸나 짜증나’ 등의 비속어도 써가며 속풀이를 한다. 팀원들은 어떻게 이런 논설을 쓸 수 있냐며 분개한다고 한다. L은 그런 신문사에도 원서를 낸 적이 있다. 어디든 우선 들어가야 한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 L의 신문브리핑 자료를 보고 싶었다. 깔끔하게 정리된 자료를 보고 놀랐다. 분야별로 주제별로 정리된 자료와 표 등은 한눈에 보기 좋게 정리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매일 신문을 보고 주 단위로 이렇게 정리하면 얼마나 해박한 상식을 가지고 있을까 싶었다. L은 글쓰기도 잘 할 것이다. 매주 글쓰기를 하는데 글이 늘지 않을 수가 있겠나. 안 그래도 언론인공채가 적은데 여자들의 합격률이 낮다고 한다. 필기시험을 통과하는 비율은 여성이 많지만 면접과 최종면접을 올라가면서 여성들이 많이 떨어진다고 한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부정적인 소식이다. L은 세상의 ‘팩트’를 전달하고 자기 목소리를 내고 싶다. 그런데 L이 직업으로 글을 쓸 곳이 없다.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L은 기자와 시사교양PD를 준비하고 있다. 졸업한지 2년 반이 지났지만 본인이 원하는 곳에 갈 수 있을지 취직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그저 열심히 할 뿐이다. 벌써 수십 곳에 떨어졌다. 언론인 준비는 내년 상반기까지로 시한을 정해놓았다. 그때까지 안 되면 일반기업 홍보부서도 지원해 볼 생각이다. 내년을 넘기면 서른이 된다. 서른이 되기 전에 취직을 해야 하는 것이다. 나이는 먹어가고 매년 30만 명의 젊은 대학생들이 졸업하고 있다. 자기보다 어린 후배들이 치고 올라오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 계속 가다간 취업자체가 불안하다. 최근 본 면접에서 한 면접관은 L에게 물었다. “졸업이후 아무것도 한 게 없네요?” 그 질문에 L은 대답을 얼버무렸다. 면접을 끝내고 와서 L은 후회했다. 면접관에게 속시원하게 한마디 해줬어야 했다. ‘당신네 회사에 들어오기 위해 열심히 준비했어요. 그런데 한 게 없다니요? 그걸 말이라고 하세요?’ L은 너무 속상했다. 경력을 쌓고 싶어 취직하려는데 왜 졸업 후 경력이 없느냐고 묻는 면접관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L은 면접관의 질문이 ‘인턴’경력 또는 ‘자격증 취득’과 같은 것이 왜 없느냐고 물어본 것이었다고 짐작된다. L은 고민한다. 지금 이대로 열심히 취직시험 준비만 해도 되는지 아니면 어디 작은 곳이라도 들어가야 하는지. 다시 시험은 다가오고 L은 또 다른 면접에서 같은 질문이 나오면 어떻게 답해야 하나 준비해야 한다.

 많은 기업에서 경력직을 선호한다. 도대체 대학을 졸업하고 구직활동을 하며 취직을 준비한 졸업생들에게 어떻게 ‘경력’이 있을 수 있나? 스펙도 모자라서 경력까지 요구하면 ‘청년’들은 정말 대통령이 말할 것처럼 ‘중동’으로 가야하나? L과 같은 친구들에게 가혹한 요구이다.

 L은 취업준비 과정에서도 주3일 하루 5, 6시간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취업준비생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취업준비를 위한 시간이다. 한 주에 일하는 시간과 이동시간을 합치면 약 20시간이다. 일하지 않는 취업준비생에 비해 20시간 정도를 손해 보는 것이다. 취업준비에 ‘올 인’ 하는 친구들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하는 사람이 아니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 기간 동안 ‘노동하지 않음’으로 인한 ‘무소득’은 가족들이 떠안아야 할 부담이다. 그러니 한 시라도 이 기간을 줄여야 하는 것이다. 모두에게 힘든 시간이며 취업준비생들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속절없이 시간만 가는 것이다.

L은 최저시급 5,580원을 받는다. 한 달에 40만원 남짓 번다. 가끔씩 당일치기 아르바이트도 찾아서 한다. 집안 형편이 여의치 않았던 L은 대학 입학 때부터 지금까지 자기 생활비를 자기가 벌어서 해결했다. 지난 8년간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은 해가 없는 것이다. 등록금은 여러 차례 대출을 받아 해결했다. 대학 다니면서 학자금 대출만 4년간 800만원이다. 그나마 국립대학이라 사립대학 다니는 친구들보다 적다. 첫 대출을 받을 때 2015년부터 원금상환을 해야 한다고 했다. 새내기 때는 2015년 즈음에는 직장에서 월급을 받고 있겠지 싶었단다. 그런데 진짜 2015년은 왔고 자신이 아직 구직중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올해부터 대출금의 원금을 매달 갚기 시작해야 한다. 자취방 월세는 26만원이다. 30만원이었는데 오랫동안 자취했고 취업준비생이라고 집주인에게 사정하고 그나마 4만원 깎은 것이다. 생활비까지 포함하면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는 모자란다. 어떻게 사느냐고 물었다. 최대한 집에서 밥을 해결하고 자취방 월세는 부족하면 보증금에서 까고 그래도 해결이 안 되는 달은 부모님께 손을 벌린다고 한다. 커피와 함께 케이크를 주문했는데 L이 많이 먹었으면 했는데 별로 먹지도 않았다.

 L은 대구에 살고 있다. 대구라서 지방이라서 불이익을 받는 경우는 너무도 많다. 모든 자원과 정보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기도 하고 학벌위주의 사회의 폐해이기도 하다. 취업준비생들도 마찬가지다. 시험을 준비하려면 ‘서울’로 가야한다. 좋은 학원도 좋은 프로그램도 고급정보도 다 서울에 있다. 그래서 서울에 사람이 몰리니까 서울에서 공부하면 정신도 차리고 경쟁력도 생긴단다. 그러나 서울에 가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자취할 보증금, 월세, 생활비 등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 서울로 가고 싶지만 지방에서 묵묵히 취업을 준비하는 친구들도 있다. 

예비언론인을 위한 2015언론학교(2015.7.11. 대구MBC 강당) / 사진. 오택진
예비언론인을 위한 2015언론학교(2015.7.11. 대구MBC 강당) / 사진. 오택진

 L과 필자는 ‘언론학교’에서 만났다. 필자가 속한 단체와 한 언론단체가 함께 ‘예비언론인을 위한 언론학교’를 열었고 L은 참가했다. 언론의 역할과 사명을 중요하게 생각하던 차에 대구의 예비언론인들에게 조그만 기회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선배 언론인들을 불러 어떻게 공부하는지 어떤 언론인이 되어야 하는지 듣고 공부한 것이다. 뭐 대단한 프로그램도 아니다. 이런 프로그램 때문에 서울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대구에도 이런 프로그램이 있으니 예비언론인들 여기 한번 와 보세요’ 하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한 달 정도 지났다. 취업준비생을 위한 프로그램을 고민하던 차에 졸업생이라고 했던 L을 만나고 싶었다. 갓 대학을 졸업했을 것으로 알았던 L이 스물여덟이라는 것을 알고 ‘어이쿠’하는 마음이 들었다. ‘나의 기자 합격기’라는 강연을 했던 K기자가 스물여섯이었다. 혹시 알았을까? 어땠을까? 두 살 어린 친구에게 합격기를 듣고 있어야 하는 자신의 모습이 초라하게 느끼지는 않았을까? 나 혼자 상상의 나래를 폈다. L은 덤덤했고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았다. 얘기를 나누다가 ‘언론학교’ 기획취지도 얘기하게 되었다. L은 진심이 느껴진다며 고맙다고 했다. L은 나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데 정작 나는 L에게 아무것도 준 게 없다. 먼저 세상에 나와 인생을 산 사람으로 L에게 느끼는 미안함과 걱정만 한가득 안고 헤어졌다.

 잠깐의 만남이지만 L은 차분하면서도 밝아 보였다. 그런데 L은 대학입학부터 졸업과 이후 취업을 준비하는 이 과정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L은 괜찮은 것일까? 알 수 없다. 내가 in 서울 대학에 다녔더라면, 우리 부모가 경제적 여유가 있었더라면, 대학 다니는 동안 학점관리를 잘 했었어야 했는데 하며 스스로와 주변 환경을 탓해 본 적은 없었을까? ‘우린 열심히 하고 있어. 그런데 왜 일할 수가 없는 거야. 세상은 왜 이렇지?’라며 세상을 향한 불만과 분노는 없었을까? 있었다면 그럴 때마다 어떻게 했을까? 필자라면 억울했을 것 같다. 어렵다 어렵다 해도 대학만 가면 될 줄 알았는데 등록금 대출의 원금을 갚을 때까지 취직이 안 될 줄 어떻게 알았겠나?

 대학 다니는 동안 남들처럼 학점과 스펙 쌓기에 뒤쳐지지 않았고, 어학연수삼아 워킹홀리데이로 캐나다에도 1년을 갔다 왔다. 캐나다에서도 아르바이트는 계속했다. 학생신분을 오래 유지시키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하여 졸업도 최대한 뒤로 미뤘다. 외국생활의 경험도 가졌고 세상의 지식과 정보를 실시간으로 접하며 지금까지 살아왔다. 20대 거의 전부를 아르바이트하며 공부하며 취업준비하며 보냈는데 여전히 L의 미래는 불안하다. 이 불안함이 언제 끝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다. 열심히 일했고 아끼며 살았고 남들만큼 공부했고 지금도 또 열심히 열심히.... 그런데 이 지랄 같은 세상에 L의 ‘일자리’하나 내어줄 기업이 없다. 저출산 고령화시대에 앞으로 머지않아 L과 같은 청년 두 명이 노인 한명을 먹여 살려야 하는 시대가 온다고 한다. 젊은이들은 세금을 통한 이 부담을 흔쾌히 지려 할 것인가? 기성세대 노인세대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나누어지려 할 것인가? L이 취직해 돈을 벌면서 자신에게 졸업 이후 한 게 없네요라고 질문한 면접관등의 노인세대를 책임지기 위해 세금을 더 낼 것인가 말이다.

우리 사회의 진보란 무엇인가? L이 걱정 없이 취업준비를 할 수 있는 사회적 토대를 갖추는 것이다. 당장에 어렵다면 L과 같은 청년들이 겪는 어려움을 하나씩 제거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국가가 존재하고 세금을 걷는 것이다. 청년이 불행하고 불안한 나라에 미래가 희망적일 수 있겠는가?






[오택진 칼럼] 29
오택진 / <연구공간Q+> 대표.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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