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바뀌어야 세월호 진실도 밝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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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를 기억하는 대구사람들 5] 한유미 / 달서구 조석원씨와 '카페 유유 노란공방' 회원들


413 총선과 4월 16일, 세월호 참사 2주기를 앞둔 세상은 바쁘게 돌아간다. 사람들이 있는 곳이면 있는 곳마다 자기와 자기 당을 찍어달라는 후보들의 목소리와 구호는 높기만 하다.

한편으로는 2014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지금까지를 겪어온 가족과 국민들은 이 정권 하에서 어떤 것도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스스로 알고 배워 참사 2년을 잘 보내기 위한 준비에 분주하다. 여기에 뭐라도 보태야겠다는 마음에 이번 세월호를 기억하는 대구사람들 다섯 번째 인터뷰는 새누리당 조원진 후보에 맞서 출마한 세월호 진상규명 후보 조석원씨(34세/남)를 만났다. 아울러 조석원씨가 함께 활동하고 있는 ‘대구경북 민주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이하 민권연대)’ 여성 회원들로 구성된 카페유유 노란공방 회윈들을 같이 만났다.

2016년 4월 6일 카페유유 노란공방에서, 왼쪽부터 허성화씨, 장정수씨, 조석원후보, 천혜정씨, 노연희씨./ 사진. 한유미
2016년 4월 6일 카페유유 노란공방에서, 왼쪽부터 허성화씨, 장정수씨, 조석원후보, 천혜정씨, 노연희씨./ 사진. 한유미

카페 유유는 방천시장 방향에서 수성교를 막 건너면 왼쪽 편 동로 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커피와 함께 마약김밥과 마약옥수수를 자랑하며 한 번 먹으면 꼭 다시 먹고 싶어진다며, 얼른 카페로 들어오라는 입간판이 재미있다. 유리문을 밀고 들어서면 마음씨 좋아 보이는 주인장 노연희씨(37세/여)가 보이고, 입구에는 세월호를 기억하자는 노란리본과 엽서가 곱게 놓여 있고, 손님들이 덜 찾는 자리 한 귀퉁이에 노란 리본 공방의 흔적이 여기저기 엿보인다. 에바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리본 재료인 eva보드와 플라스틱 고리들이 보이고, 손님이 없는 틈틈 주인장 연희씨가 만들어놓은 노란리본들이 투명비닐 봉지에 가득 묶여 있다.

카페 유유 세월호 리본공방은 작년 가을에 시작해 지금까지 매주 수요일 점심 시간이면 어김없이 열리고 있다. 달서구, 수성구, 칠곡 등 사는 곳은 다양하지만 모두 민권연대 장년모임 ‘새봄’의 회원인 엄마들과 여성회원들이 의기투합해서 시작을 했다.

사진. 한유미
사진. 한유미

카페 유유의 주인인 공장주 노연희씨, 필자가 보기에 딱 공장장으로 보이는 장정수씨(40세/여), 역시 필자가 보기에 숙련공으로 보이는 천혜정씨(39세/여). 그 외 오늘 아이들 참관수업 등으로 참가하지 못한 회원이 두어 명 더 있다고 한다. 공방을 소개해달라며 인사를 청한 장정수 씨의 말을 옮겨 본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너무 마음이 아팠고, 뭐라고 보태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달서구에서 저녁시간에 진행하는 세월호 서명전에 참가를 잘 못 해서 마음이 무거웠어요. 그러던 차에 연희 후배가 낮에 카페유유에서 리본을 만들어보자고 제안을 했어요. 정말 고맙고 반가왔어요. 그래서 매주 수요일마다 모여서 리본도 만들고, 수다도 떨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나누고 있어요. 리본 만드는 게 뭐 큰 일도 아니고 해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을 때는 정말 부끄럽고 죄송해서 안 하고 싶었어요.”

아, 그래도 인터뷰 거부하셨으면 제가 큰 일 날 뻔 했다는 생각을 속으로 하는 사이, 신매동에 사는 천혜정씨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저는 아이가 셋인데 막내가 세 살로, 올 해 어린이집을 보내기 시작했어요. 그러니까 작년 처음 공방을 시작할 때는 막내가 한참 뭐든 눈에 보이는 건 다 주워서 입에 넣을 때였죠. 여기 카페에 와서 흙도 많이 주워 먹고, 맛도 보고(^^), 그 때는 저도 크게 보탬이 되지 못했어요. 이제는 요령도 생기고, 속도도 늘고. 혼자 오니 도움이 좀 더 되는 것 같아요”라며 밝게 웃는다.

사진. 한유미
사진. 한유미

그런데 노란 리본 사이사이 색색 예쁜 색깔의 빨래집개가 꽂혀있는 게 보인다. 아마 본드를 칠 한 후 재료가 잘 붙으라고 집개를 활용했겠다는 생각이 들어 물어보았다.

“처음 시작할 때 빨래집개는 없었어요. 그런데 제가 애기 데리고 여기서 만드는 게 너무 속도가 안 나서 집에 재료를 들고 갔었어요. 애들 셋이랑 리본 만드는 걸 본 남편이 우리가 느려 보여서 답답했던가 봐요. 어느 날 빨래집개를 가져와서 사용해보라고 하더라구요. 사용해보니 애들이랑 같이 만들 수도 있고, 속도도 많이 빨라졌어요.”

식구들이 둘러앉아서 노란 리본을 만드는 모습은 천혜정씨 집에서는 흔한 모습이라고 한다. 막내와 둘째는 아직 어려서 노란 리본이 어떤 의미인지까지 얘기하기 어렵지만, 리본을 만들 때 거들기도 하고 새 것을 달아주면 무척 좋아한다고 한다. 세 아이의 엄마다 보니 더욱 세월호 참사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는 천혜정씨는 아이들이 리본을 보면서 언니오빠들이 바다에 빠져서 죽지 않았냐고 물을 때 너무 마음이 아프고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도 되었는데, 이제는 ‘언니 오빠들을 잊으면 안 된다’고 이야기해준다고 한다. 아울러 서명전에 나가거나 주변 사람들한테 잘 설명은 못하지만, 서명을 받으면서 리본을 나눠주는데 보탬이 되면 고맙겠다는 마음으로 안 빠지고 나오려고 애쓰고 있다는 마음을 전한다. 

대구 달서구병 국회의원으로 출마한 조석원 후보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자 대구에서 시민사회단체 70여개가 모여 만든 세월호참사대구시민대책회의에서도 상황실 활동을 적극적으로 시작했다. 여러 달 서울 광화문 농성장을 지키기도 했고, 근래까지는 수성구, 동구, 경산 지역의 여성들이 모인 ‘세월호 참사 진실규명 수요서명모임’ 활동을 함께 했다. 이 수요 서명 모임에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단원고 희생 학생들의 부모님들이 특별법제정 서명을 받으러 전국을 다니시던 2014년 여름, 만 명의 서명을 받아서 부모님들께 전달한 유모차 부대 엄마들이 함께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수요서명 모임 분들을 만나면서 세월호 활동을 더 열심히 하게 되었습니다. 만 명의 서명을 받아주었던 유모차 부대 애기들이 그새 자라서 두 명은 초등학생이 되었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나서서 꾸준히 세월호활동을 하고 있는 분들에게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라고 말문을 연 조석원후보에게 출마를 결심하게 된 이유를 자세히 들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수요 서명 모임 분들과 인연도 큰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서울 광화문 농성장에 있을 때부터 조원진씨의 막말에 대해 단원고 유가족 부모님들께서 절대로 당선되지 않도록 해 달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다 아시겠지만, 조원진씨는 세월호참사를 조류독감에 비교했을 뿐 아니라, 국회에서 유가족들에게 ‘가만 있으라’는 막말을 한 대표적인 새누리당 인사입니다. 아직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지도 않고, 부모님들에게 사과도 하지 않고 있는 조원진씨가 정말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라도 알게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아주 조금, 정말 아주 조금이라도 가족들에게 힘이 된다면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출마를 결심 했습니다”

지난 3월 18일 조석원 후보의 출마 기자회견 때 내려왔던 단원고 2학년 4반 김동혁 학생의 어머니 김성실 씨와 5반 이창현 학생의 아버지 이남석 씨는 “대구에서 세월호 진상 규명을 공약으로 조원진후보가 국회의원 출마한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왔다”며 “조원진 의원에 맞선 조석원 후보에게 정말 감사하며 국회에 들어가는 그날을 보고 싶다”는 심정을 밝히기도 했다.

“지금도 세월호 참사의 진실규명은 끊임없이 방해를 받고 있습니다. 여전히 많은 분들이 꾸준히 세월호 진상규명 활동을 하고 있지만, 종편을 위시해 국민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믿게 하고, 국민들을 이간질하는 방해 세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가장 큰 방해세력이 대통령이라는 생각으로 대통령 탄핵을 공약으로 걸기도 했습니다. 또 현재 상황이 변하지 않는다면 세월호 인양도 되기 전에 특별법 기간은 끝나 버리게 됩니다. 세월호참사의 진실이 영원히 바다에 묻혀버리지 않도록 특검을 비롯한 제대로 된 법과 제도를 국회에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가 바뀌어야 한다는 부모님들의 말씀을 늘 마음에 새기고 있습니다.”


조석원후보 선거캠프의 홍보를 맡고 있기도 한 카페 유유의 노연희씨에게는 카페에서 노란공방을 열기로 한 마음과 조석원 후보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들었다.

“늘 카페를 지키고 있다 보니 세월호 참사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답답하던 차에 언니들에게 제안을 하게 되었습니다. 소박한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하다보니까 참 좋았습니다. 매주 꼬박꼬박 보면서 수다도 떨고 세월호 얘기도 하면서 같이 울고, 그러면서 서로 많이 친해졌습니다. 세월호 이야기는 해도 해도 끝이 없을 듯 합니다. 어쨌든 우리가 평생 지고가야 할 짐이기도 하고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은 분명합니다. 생각해보면 민권연대에서 여러 어려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후보를 내자고 결정할 수 있었던 것도 세월호 문제를 풀어야한다는 데 대한 회원들의 마음이 하나로 모아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저런 어려움 가운데 출마를 결심하고 활동하고 있는 조석원 후보가 정말 고맙습니다.”

연희씨의 이야기에 이어 장정수씨는 ‘가게에서 공방을 열어보니 손님들, 디저트 먹으러 오는 고등학생들이 관심도 갖고 리본도 달라고 하더라’며 이렇게 시민들과 소통하니 참 좋다는 이야기도 하고, 천혜정씨는 ‘이런 장소를 내 준 후배가 너무 고맙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노연희씨의 말에 따르면 노란 리본이 뭐냐고, 왜 아직도 이렇게 하냐고 묻는 손님들 열 명 중 9명은 대화를 나눠보면 모두 소통이 된다고 한다. 그리고 수긍하지 않는 분들의 속내를 들어보면 한결 같이 부모들도 빨갱이라는 말을 한다고 한다. 우리 사회 곳곳에 좋은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일에 대한 뿌리 깊은 반공컴플렉스를 세월호 진상규명 활동에서는 다시 만나는 것이다.

그래도 조석원 후보는 응원하는 시민들을 더 많이 만난다고 한다. 조원진 후보 선거사무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할 때면 젊은 청년들이 손으로 파이팅을 외치며 지지하는 눈빛을 보내오는 경우도 많고, 한번은 좀 나이 드신 분이 다가 오길래 지레짐작으로 또 화를 내시려나 했더니 대통령 탄핵 구호와 세월호 진상규명 구호를 보고 ‘잘 한다’면서, ‘이렇게 해야 한다’고 응원을 해주고 간 적도 있었다는 소식을 전한다.

더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았지만 선거 한참 선거운동 기간이기도 하고 이런저런 행사가 많은 날이라 몇 가지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마무리 발언을 돌아가면서 들었다.

노연희씨는 “전국적으로 민권연대에서 서울, 부산, 익산 그리고 대구에서 청년후보를 냈습니다. 어려움도 있지만 생각보다 많은 시민들이 응원을 해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더 열심히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애쓰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는 마무리 이야기를, 천혜정씨는 “피붙이를 잃은 희생자 가족들이 원하는 대로 일이 해결이 되기를 정말 바랍니다. 부모님들, 열심히 활동하시는 분들에게 우리 같은 사람이 뒤에서 늘 지지하고 함께 하고 있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고, 힘내시면 좋겠습니다.”는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누구보다도 조원진씨에게 꼭 할 말이 있다는 조석원 후보의 이야기를 옮겨본다.

“조원진 후보 사무실 앞에서 제가 매일 11시에 기다리고 있으니 조원진후보는 공인답게 답변을 하십시오. 딱 두 가지만 묻겠습니다. 하나는 세월호 참사 가족들에게 자신의 막말을 사과할 생각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입니다. 두 번째는 아직도 헌법보다 대통령과의 인간관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 묻습니다. 두 가지만 물을 테니 답을 하십시오.”라며 조원진씨가 온갖 막말을 했지만, 민주주의와 헌법의 가치를 근본 무시하고 사람으로서 도리인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않은 데 대해서는 꼭 답을 듣고 싶다고 말했다.

조석원후보 캠프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으면서 오늘 인터뷰 자리에 동행한 허성화(43세/남)씨는
“후보가 이야기 한 조원진사무실 앞 행사 때 수요서명모임 어머님들이 오셔서 선전전도 해 주고 응원도 하고 가셨습니다. 이를 본 지나가는 시민이 다른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알려주시는 일도 있었고요. 이런 분들을 보면서 정말 일반 시민들도 이렇게 세월호 참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함께 움직이고 있는데, 그동안 스스로 좀 소극적이었다는 반성이 들었습니다. 또 오늘 여기 계신 분들의 이야기 들으면서는 20년, 30년이 걸리면서 진실이 서서히 밝혀지는 518 광주항쟁 생각이 났습니다. 이처럼 세월호 참사도 언젠까는 꼭 진실이 밝혀지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도’가 아니라 ‘될 때까지’라는 마음으로 저도 더 열심히 보태야겠습니다.”라는 소감을 밝혔다. 조석원 후보가 당선되면 서울로 가겠지만, 아니면 리본 공장에 취직해야겠다는 허성화씨의 농담에 모두 함께 웃기도 했다.

이야기를 찬찬히 듣고 있던 장정수씨는
“언젠가는 진상이 규명되고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 때까지 우리가 지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석원후보가 출마하고 선거운동을 하면서 많은 시민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시민들이 기억하고,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많이 배우고, 힘과 기운을 얻는 경험을 했습니다. 지치지 않으려면 시민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만나고 소통하고 함께 힘을 내야겠다는 생각, 국민을 믿고, 될 때까지 기운을 내면서 끝까지 행동해야겠다고 생각이 많이 듭니다.”라는 소감을 밝혔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416이전과 이후, 우리사회가 정말 달라져야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삶도 조금씩 달라지고, 누구나 자신이 서 있는 곳에서 각자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서로를 믿고, 존중하고 소통하는 것을 통해 서로를 격려하며 힘을 내야 한다는 것도.

세월호 유가족육성기록 <금요일에 돌아오렴>에 실린 김소연 학생의 아버지 김진철님 삽화
세월호 유가족육성기록 <금요일에 돌아오렴>에 실린 김소연 학생의 아버지 김진철님 삽화

내일 모레면 조석원 후보의 활동도 마무리가 되고, 국민들은 이후 자신들의 삶의 상당부분을 결정하게 되는 투표행위를 할 것이다. 수학여행을 떠난 학생들이 2014년 4월 그 금요일에 돌아왔다면, 투표를 했을 것이다.

홀로 애지중지 키운 딸을 세월호참사로 잃은 단원고 2학년 3반 김소연 학생의 아버지 김진철씨의 우시던 얼굴을 우리는 알고 있다. 별 말씀도 없이 딸의 사진을 보여주며 우시던 분, ‘이제 나는 어떻게 살아요, 나라가 너무 나빠요.’라고 말하던 아버님의 음성도 잊을 수가 없다. 그분께서 지난 2015년 12월 동거차도를 다녀오고 대구에서 열린 세월호참사 가족들과 함께하는 송년 행사 때 오셔서 하셨던 말씀, ‘우리 아이들을 닭에 비유한 조원진을 대구사람들이 어떻게든 꼭 좀 떨어뜨려 달라’던 말씀을 기억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기고]
한유미 / 세월호참사대구시민대책회의 상황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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