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대구 대학가 '대나무숲'에도 분다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18.03.05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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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영남대·대구대 익명 게시판에 '교수·선배·동기'에 의한 '성희롱·성추행' 가해 사례 고발
피해자들 "늦었지만 이제라도 용기내 신고하고 싶다", "권력 가진 이유로 상처 줘...사과해라"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피켓을 든 한 여성(2018.3.5)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피켓을 든 한 여성(2018.3.5)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대구 대학가에도 성범죄 피해 사실을 고발하는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번지고 있다.

서지현 검사로부터 한 달 전 시작된 '미투' 선언이 새학기 대학가로도 확산되는 모양새다. 이미 서울지역 일부 대학에서는 미투 전용 게시판이 생겼고, 재학생들을 상대로 성폭력 예방 교육이 실시되는가하면, 새내기들에게 대응 매뉴얼을 나눠주기도 했다. 지역에서는 뒤늦은 미투 바람이 불고 있다.

5일 대구지역 11개 대학교 페이스북 익명 게시판 '대나무숲'을 확인한 결과, 일주일간 3개 대학교 대나무숲에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고발한 '미투' 글들이 올라왔다. 경북대, 영남대, 대구대 등 3곳이다.

경북대학교 '대나무숲' 페이스북 캡쳐
경북대학교 '대나무숲' 페이스북 캡쳐

경북대 '대나무숲'에는 지난 4일 몇 년 전 선배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사실을 고발한 글이 올라왔다. 피해 학생은 "선배가 빠른 속도로 소맥(소주+맥주)을 말았고 빠른 속도로 잔을 비웠다"며 "머릿속도 비워졌고 기억은 거기까지였다"고 했다. 이후 "낯선 천장 아래 눈을 뜨니 선배가 있었고 속옷은 침대 아래 있었다"면서 "혹자는 '술 먹는 게 XX이지'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선배와 함께 있는 단체 술자리에서 빠질 명분이 없었고, 선배가 과에서 어느 정도 위치가 있는 사람이라 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때문에 "결론은 뻔했다"며 "선배는 학교를 떠났지만 나는 잘 지내지 못한다"고 밝혔다.

같은 날 또 다른 학생도 가해자를 특정하지 않은 채 피해 내용만 적은 글을 게시했다. 이 학생은 "'딱 한 번만 가슴 만져보면 안될까?' 그 멍청하고 더러운 말에 간단히 '싫어요.미쳤어요?'라고 거절할 수 없는 수 많은 상황과 이유가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알까"라며 "'왜 좀 더 강하게 저항하지 않았니' 같은 말이 너무 화가 난다는 것을 알까? 마음 같았으면 그 XX를 두 번도 더 죽였다"고 했다.

영남대학교 '대나무숲' 페이스북 캡쳐
영남대학교 '대나무숲' 페이스북 캡쳐

영남대 대나무숲에는 더 많은 '미투' 고발 글들이 올라왔다. 지난 달 26일 한 여학생은 '남자 선배'에게 성추행 당한 정황을 털어놨다. 그는 "2012년 스무살 대학 첫 학과 엠티 때 남자선배한테 성추행을 당했다"며 "술취해 자는데 강제로 가슴을 만지고 키스하고 팬티 안에 손을 넣었다"고 했다. 하지만 "다음 날 과대 남자선배를 찾아가 신고할까라고 말했지만 남자선배들이 우루루와서 '절대 신고하지 마라. 신고하면 엠티, 과행사 다 없어지고 박살난다'고 반협박을 했다"면서 "가해자는 당당하게 과생활을 하고 연애도하고 잘 사는데 나는 누가 욕하고 수근거릴까봐 속으로 피눈물을 흘렸다"고 폭로했다. 이어 "요즘 미투 운동을 보면서 늦었지만 이제라도 용기를 내서 신고를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또 지난 2일에는 남자 동기에게 성추행을 당한 피해 글이 올라왔다. 이 학생은 "2013년 4월 같은 과 남자 동기가 술 취한 절 기숙사에 데려다주면서 손을 가슴에 넣었고 치마 아래에도 수 차례 넣으려 했다"며 "잊고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남자친구가 몸에 손만 대도 지금도 소스라치게 놀란다. 5년이 지났지만 소름이 돋는다. 이 글을 보고 있을지 모르는 XXX. 꼭 찔렸으면 좋겠다"는 글을 올렸다.

대구대학교 '소나무숲' 페이스북 캡쳐
대구대학교 '소나무숲' 페이스북 캡쳐

대나무숲과 비슷한 대구대의 '소나무숲'에는 한 졸업생이 교수의 성추행을 폭로했다. 지난 2일 대구대 ㅇ학과 졸업생이라고 밝힌 한 학생은 "4년 전 한 교수님의 성추행을 직접 보고 겪었다"면서 "운전을 하다 몸을 뒤로 돌려 선배 언니 다리를 만졌다"고 했다. 또 "다른 후배들에게 이를 말했더니 대수롭지 않게 '자주 그렇게 하신다'고 했다"면서 "교수님은 같은 날 제 다리도 만졌다. 아직도 생각하면 기분이 더럽다. 권력을 가졌다는 이유로 남에게 상처주는 사람들이 없었졌으면 좋겠다"고 비판했다.

이처럼 지역 대학가에서 학생들의 '미투' 선언이 이어지고 있지만, 각 대학별로 미투를 지지하거나 대응책을 마련하는 움직임은 여전히 보이지 않고 있다. 용기를 내 성범죄를 고발한 피해자들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2차 가해를 막고, 법률 상담을 제공하는 등 '컨트롤타워'가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남은주 대구여성회 대표는 "대구여성회 고용평등상담실(053-427-4595, 010-4427-4595)과 대구여성의전화 대구성폭력상담소(053-471-6484)에서 성폭력과 관련한 상담 전화를 운영한다"며 "대학가 대나무숲에서 미투를 선언한 피해자들이 이곳으로 전화해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5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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