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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부터 미싱 돌려도 월100만원...'서문시장 봉제공'의 한숨
40년 봉제노동자 최모(65)씨 원·하청 소속 아닌 객공제 특수고용직...새벽 6시부터 하루 15시간 노동
원청에 넘겨야 일당·작업장 월세 내면 수중에 100만원 "일감 끊길까 신고 못해...미싱일 원망스러워"
2019년 10월 04일 (금) 09:07:09 평화뉴스 한상균 수습기자 hsg@pn.or.kr
   
▲ 40여년 동안 미싱을 돌려온 최씨(2019.9.26.대구 중구 서문시장 인근) / 사진.평화뉴스 한상균 수습기자
   
 
"미싱일을 배운 게 원망스러울 때가 많다."

40년 넘게 미싱(재봉틀 영어 소잉머신(Sewing Machine)을 일본어 발음 미싱(ミシン)으로 사용한 것에서 유래)을 돌려 생계를 이어온 대구 서문시장의 65살 남성 '봉제노동자' 최모씨는 지난 26일 말했다.

대구지역 최대 종합시장인 중구 서문시장. 시장 안팎에는 소규모 봉제업체들이 수두룩하다. 최씨도 시장 근처에서 40년째 봉제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최씨의 사무실은 시장 인근 5평 남짓 작은 공간이다. 봉제 경력 40여년, 전국기능경기대회 은메달리스트에 옛날에는 봉제공장도 직접 운영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회한이 느껴진다. 예전엔 체력적으로 버틸만 했던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구조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더 이상 견디기 힘들어진 탓이다. 이는 최씨만의 특수한 상황이 아니다. 대구지역 봉제노동자 대부분이 비슷한 현장에서 노동을 하고 있다. 최씨는 그나마 조금 나은 형편일 수도 있다.

이날 오후 7시 서문시장의 컴컴한 거리에서 최씨가 일하는 곳만 재봉틀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미싱 소리를 따라가자 작은 가게에 불이 켜졌다. 최씨가 밤이 깊어가는지도 모르고 미싱을 돌리고 있다.

옷감을 맡긴 원청업체는 출근 오전 9시·퇴근 오후 7시를 정해줬다. 하지만 일한 만큼만 임금을 지급하는 '객공제' 고용이라 최씨는 정시 출퇴근을 해본적 없다. 원·하청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특수고용직인 탓이다. 때문에 봉제노동자 40년째 한 번도 근로계약서를 써본 적 없다. 출퇴근 개념을 인식하지도 못했다. 한 벌이라도 더 작업하면 한 푼이라도 더 번다는 생각에 바느질과 미싱을 멈출 수 없다.

"지금 만드는 이 코트가 백화점에서 수 십만원에 팔리는데 손에 떨어지는 건 25,000원이다. 하나 만드는데 3~4시간 걸린다. 그러니 출퇴근 시간 맞춰 일하면 먹고 살지 못한다. 그래서 새벽 6시에 출근해 끝날 때까지 미싱을 돌린다. 빨리 끝나면 저녁 9시에 퇴근하고 안 되면 저녁 10시까지 할 때도 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 미싱을 한다. 솔직히 하루 노가다 뛰는 것보다 벌이가 못해서 속상하다."

그래도 최씨는 자신의 사정을 마냥 비관하지만은 않았다. 더 열악한 봉제노동자들이 많은 탓이다.
"다른 데 가보면 말도 못한다. 셔츠 1장에 5천원씩 받고 일하는 사람들도 있다. 단가가 지나치게 싸니까 결국엔 시간 싸움이 된다. 밤 11시까지지도 일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돈은 돈대로 못 번다."
 
   
▲ 저녁 8시 30분...최씨는 아직도 미싱을 돌리고 있다(2019.9.26.대구 중구 서문시장 인근) / 사진.평화뉴스 한상균 수습기자
 
최씨의 손은 멈추지 않고 원단에 지퍼를 박고 있었다. 한 순간도 원단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그렇게 쉬지 않고 일을 해왔지만 법적으로 보장된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생활. 하지만 호소할 곳이 없다.

"이 일을 그만둘 것 같으면 여기는 어떻다. 저기는 어떻다. 다 얘기를 하겠는데 벌어먹고 살아야하는 입장이니까 어디에 신고를 할 수가 없다. 그리고 어차피 신고해봤자 혜택은 안 돌아오고 소문이 퍼지면 일이 끊길지도 모른다. 사람들 다 마찬가지다. 평생 이것만 했는데...무서워서 어떻게 말하나."

처음부터 객공제 봉제노동자였던 것은 아니었다. 최씨는 20대부터 재봉틀을 돌렸다. 전국기능경기대회 은메달도 수상한 적이 있을 정도로 뛰어난 기술자다. 봉제공장도 운영했었다. 하지만 1997년 세계외환위기(IMF)를 겪으면서 두 번의 사업 실패 후 지금은 객공제 봉제노동자가 됐다. 이후 언제 일감이 끊길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적은 벌이 때문에 밤늦게까지 일을 해왔다.

"패션도시, 섬유도시 대구도 다 옛말이다. 봉제 시장 자체가 저물어가고 있기 때문에 일거리도 적다. 게다가 인건비도 안 되니까 사람을 안 뽑는다. 그래서 기능공 양성을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남은 사람들 나이만 점점 더 먹고 있다. 악순환이다. 나도 일흔이 다 되가는데 일하고 있지 않나."

산업화시대에 성업한 섬유산업 자체가 저물어가면서 봉제노동자 고령화도 가속화되고 있다. 대부분 환갑에 가깝다. 그러면서 예전 고용·임금체계가 50년 가까이 이어져 처우개선도 되지 않고 있다.
 
"경력이 오래 됐다고 돈을 많이 주는 것도 아니다. 1년차든 40년차든 월급은 같다. 특정 브랜드에서 받은 돈 일부를 월급으로 주니까 우리한테 떨어지는 돈이 얼마 안된다. 보통 월 200만원을 버는데 이 작은 작업실 월세, 전기세 등 종합 관리비용(월 100만원)도 내가 내야 하고 그 돈으로 생계도 이어가야 하니 어렵다. 일이 아예 없으면 빚을 내서 월세를 낸다. 그럴 땐 미싱일을 배운 게 원망스럽다"
 
   
▲ 5평 남짓한 최씨의 작업장(2019.9.26) / 사진.평화뉴스 한상균 수습기자
 
실상 최씨가 버는 월급은 100만원에 불과하다. 백화점 입점 A브랜드가 원청업체에 옷을 맡기면 원청이 봉제노동자에게 일감을 배분한다. 원청이 옷을 수거해가고 브랜드가 확인을 하면 계약금을 준다. 백화점이 마진을 40% 갖고 원청은 60% 중 일부를 임금으로 지급한다. 저임금 피라미드가 유지되는 방법이다. 대구 봉제노동자 평균 경력 29년, 절반 이상이 최저임금도 못 받는다는 조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대구경실련·대구경북정보공개센터 2019년 9월 23일 '대구 봉제노동자 근로조건 실태조사')

어느 덧 밤 9시. 하루 종일 재봉틀 앞에 앉아 있던 최씨는 마지막 원단에 지퍼를 박고 몸을 일으켰다. 오늘은 평소보다 일이 일찍 마쳤다. 최씨는 작업대를 정리하고 늦은 저녁 식사를 하러 퇴근했다.

지역 봉제노동자의 열악한 노동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관련 업계 인사는 지자체 개입을 촉구했다. 박경욱 공공연구노조 한국패션산업연구원지부장은 "문제 개선을 위해 대구시가 실태 파악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며 "그래야 지역 봉제산업의 문제를 알 수 있고 저물어가는 산업을 다시 활성화시킬 수 있다"고 했다. 또 "이를 통해서 산업 활성화 대책과 봉제노동자 처우개선 방안도 마련할 수 있다"면서 "대구보다 상황이 나은 서울 동대문시장·평화시장 등 다른 지역 사례도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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