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은 유난히 길었다. 7월 장마 이후 8월 한달 온전히, 그리고 9월 중순 추석까지 35도 가까운 무더위가 계속되었다. 기후변화는 총체적 파국을 일시에 터뜨리는 것이 아니라 이상기후를 하나씩 선보여 주면서 서서히 자기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어느 해는 40도 가까운 폭염이 맹위를 떨치는 해도 있었고, 올해는 40도 정도의 더위는 없었고 대략 35도 수준의 무더위가 한달 이상 지속되는 현상을 나타내었다. 지구가 뜨거워지는 것을 인간 활동에 의한 기후위기라고 분석하고 대책을 세우자고 호소한 과학자들에 대하여 그 진실성을 의심하는 눈초리들이 많았고, 과학계 안에서도 반론과 비난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2015년 파리협정 이후에는 지구온난화가 자연스러운 천체 자연현상이 아니라 인간 활동에 의한 기후변화라는 것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보기 어렵다. 기후변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응의 역사는 짧지 않다. 이 글에서는 파리협정으로 불완전하지만 중요한 결실을 본 기후위기 대응의 역사를 살펴본다.
인간환경문제를 논의하자는 스웨덴의 제안에 따라 1972년 6월에 개최된 유엔 '인간환경회의(UN Conference of the Human Environment)'가 스톡홀름에서 개최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스웨덴은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 중 좀 특이한 나라이다. 고마운 존재이다. 유엔환경회의는 국제환경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새로운 국제 환경법질서로서 시도된 것이다.
스톡홀름 회의에는 113개 국가와 13개 국제기구가 참석하였으며, 환경적 위협에 맞서 전세계적인 협력을 약속하는 스톡홀름 선언을 채택하였다. 스톡홀름 선언은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환경문제의 본질을 알리고, 그 해결을 위해서는 공통의 사상과 원칙이 필요하다는 전제하에서 환경에 관한 기본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이 선언에 포함된 기본원칙은 모두 26개이며, 이 원칙들과 행동계획에 명시된 권고사항들은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환경법의 기본 골격과 방향을 제시하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스톡홀름 선언은 환경이 인류의 복지, 기본적 인권, 생존권의 향유를 위해 필요불가결한 것이며, 인간환경의 보호와 개선은 인류의 복지와 경제적 발전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과제로서, 이를 추구하는 것이 인류의 지상목표인 동시에 모든 정부의 의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환경의 보호 내지 개선과 경제 개발은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으며, 개도국의 경우 환경을 이유로 개발을 중지하는 것이 아니라 개발을 하되 환경보존과 개선을 고려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민간에서 같은 해에 100여명의 학자, 기업인, 전직 정치인 등 100여명으로 구성된 '로마클럽'이 인구증가, 자원고갈, 환경오염 등 미래의 성장 한계요인들을 밝히는 <성장의 한계>라는 보고서를 발간하여 환경문제에 대한 국가간 협력을 위해 필요한 이론적 기반을 제공하였다.
1972년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인간환경선언이 있은지 20년 만에 '환경과 개발에 관한 리우데자네이로 선언'과 '기후변화에 관한 유엔 기본협약(UNFCCCC)'이 1992년 6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개최된 유엔환경개발회의(UNCED)에서 채택되었다.
1992년 유엔환경개발회의에서는 기후변화협약과 함께 생물다양성협약도 채택되어 역사상 국제환경법의 발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회의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은 기후변화협약에 1993년 2월 47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하였다. 협약은 50개국이 비준을 하여 1994년 3월 21일 발효하였으며, 현재 197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이에 앞서 1988년 지구온난화의 과학적 근거 마련 및 사회경제적 영향 평가 수행을 위하여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설립되었다.
'리우선언'은 150여개국 대표가 서명하여 채택되었으며 27개 원칙으로 구성되어 있다. 27개 원칙 중 중요한 몇 개를 보면, 각 국가는 자국의 자원을 개발할 수 있는 주권적 권리를 갖고 있으나 자국의 통제 범위 내에서의 활동이 다른 국가나 관할 범위 외부 지역의 환경에 피해를 끼치지 않도록 할 책임을 갖고 있다는 것, 개발의 권리는 개발과 환경에 대한 현세대와 차세대의 요구를 공평하게 충족할 수 있도록 실현되어야 한다는 것, 지속 가능한 개발과 모든 사람의 보다나은 생활의 질을 추구하기 위하여 각 국가는 지속 불가능한 생산과 소비 패턴을 줄이고 제거해야 하며 적절한 인구 정책을 촉진해야 한다는 것 등이 있다.
'기후변화협약'은 온실가스 배출 감소를 위한 각국 국내 정책의 수립 및 시행,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권고, 당사국들이 통계자료와 정책이행에 대한 보고서를 당사국 총회(COP)에 제출할 의무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유엔기후변화협약 제1차 당사국 총회가 1995년 독일 베를린에서 개최되었다. 베를린회의에서는 2000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관한 의정서를 3차 당사국 총회(COP3)에서 채택하기로 결정하였다. 그 결정에 따라 1997년 기후변화협약 3차 당사국 총회로서 교토 회의가 개최되었다. 1997년 제3차 당사국총회에서 채택된 교토의정서는 선진국들 중심으로 37개국이 의무이행 대상국으로 지정되었으며, 2008년부터 2012년까지 1차 감축공약기간 중 1990년에 비하여 온실가스를 평균 5.2% 감축하는 것으로 의무감축률을 결정하였다.
그러나 미국, 캐나다, 일본 등이 불참하고, 중국, 인도 등이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되어 감축의무를 지지 않는 등의 요인으로 감축의무국가가 40여 개국, 감축대상 온실가스는 전 세계 배출량의 22%에 불과하여 실효성이 없었다. 한국도 당시 OECD 국가였으나 그 시기에 맞추어 발생한 동아시아 금융위기로 인하여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되어 비의무감축국으로 남게 되었다. 세계 최대 온실가스 배출국이었던 미국의 비준 거부로 '교토의정서'는 발효요건을 갖추지 못하였고, 2004년 러시아의 비준으로 발효요건을 갖추어 2005년 2월 발효되었다.
교토의정서 이후 새로운 기후변화 대응체제에 대한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었다. 2011년 제17차 당사국총회에서, 교토의정서 이후의 새로운 체제 설립이 합의되고 이어 마침내 21차 당사국총회가 열린 파리에서 2015년 12월 12일 '파리협정(Paris Agreement)'이 채택되었다. 파리협정은 2016년 10월, 197개 당사국 중 3/4에 해당하는 국가들의 비준을 얻어 그해 11월 발효하였다. 발효 요건은 55개 당사국의 비준과 비준국가의 총배출량이 세계 배출량의 55% 이상이 될 경우였다. 교토의정서 효력 만료일은 2020년이다.
파리협정은 교토의정서와는 달리 전 국가가 기후변화에 대처하고 그 영향에 적응하기 위한 적극적 노력을 수행한다는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있고, 그 성공적 수행을 위해 개발도상국가에 대한 지원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파리협정의 핵심목표는 이번 세기 전 세계의 온도상승을 2도보다 훨씬 낮은(well below) 수준에서 유지하기로 하고, 더 나아가 1.5도 상승까지 억제하도록 노력을 해나감으로써 전 세계적인 대응을 강화한다는 것이다.(협정 2조) 선진국들이 주장한 2도 이내 제한과 개발도상국들이 제안한 1.5도 이내 제한 입장을 타협하여 양측의 주장을 하나의 문장에 녹여낸 결과였다.
온도목표와 함께 온실가스 배출 정점에 관한 목표도 제시되었다. 당사국들은 21세기 중반, 즉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 최고 정점(배출최대치, global peaking of greenhouse)에 이르러야 하며, 21세기 후반부에는 온실가스의 생성과 흡수가 균형을 이루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한다.(협정 4조1항) 파리협정에서 감축목표와 관련해서 국가가 스스로 "국가결정기여(NDCs, 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s, 국가별 기여방안)"라는 목표를 제출, 이행해가며 5년마다 정기적으로 그 결과를 보고하고, 그 목표가 2도씨 목표에 부합되게 실행되고 있는지 파리협정 당사국총회에서 검토해서 진전된 새로운 목표를 세워나가는 지구차원 이행점검(GST, Global Stocktake)체제를 도입하였다. 파리협정은 선진국에만 감축의무를 부과하였던 교토의정서와 달리 195개당사국 모두가 이행의무를 지는 구속력 있는 기후변화 대응체제를 형성하였다는 점에 큰 의의가 있다.
인권과 민주주의, 평화, 생태보전을 위해 의미있는 국제규범을 만들어 내는 것에 대하여 선진국 그룹들 중에는 거의 유일하게 미국이 딴지를 걸고 있다. 유네스코 탈퇴, 대인지뢰 금지조약 비준 거부, 포괄적 핵실험 금지조약 비준 거부와 함께 트럼프 대통령 시절 파리협정 탈퇴는 미국의 '동네 깡패' 기질을 보여주고 있다. 다행히 바이든 정부에서는 파리협정에 재가입을 하였다.
국제법으로 성립된 파리협정에 따라 각국은 국내법을 정비하여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조약 이행 법률을 제정하여 시행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상당히 진전된 입법을 제정하였으나 기후운동 흐름이 당해 법률이 국가의 배출량 감축목표를 낮게 잡아서 파리협정에서 부과한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는 내용이 아니라는 이유로 헌법재판을 제기하여 위헌결정을 받아낸 바 있다.
한국도 2021년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에 관한 법률'이 미흡한 배출목표를 세우고 2031년 이후에는 배출목표 자체를 명시하지 않아서 미래세대에 대한 부담을 주게 되었다는 이유로 헌법소원이 제기되어 2023년 8월 29일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았다.
2031년 이후 구체적인 배출량 저감 목표를 제시하지 않은 것은 "장래에 배출량의 대폭 축소 부담을 안게 되는 미래 세대의 환경권을 침해한다"는 근거로 재판관 9인 전원 일치의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은 그 법률 8조 1항은 2026년 2월 28일까지 국회에서 개정을 해야 할 의무를 지게 되었다. 그러나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배출량 기준 35% 이상 감축하겠다고 한 부분은 5인의 헌법재판관이 "위헌"으로 판단하였으나 나머지 4인이 이를 "국회의 입법재량"으로 보아 "합헌"이라고 판단하여 위헌의견이 위헌결정 정족수인 6인에 이르지 못하여 위헌결정을 면하게 되었다. 비록 위헌결정을 면하였으나 과반수의 재판관이 위헌으로 본 점에 주의하여 국회는 이 부분에 대해서도 국민의 법의식과 법감정에 맞는 전향적인 법률 개정을 해야 할 것이다.
파리협정은 세계기후위기 대응에 있어서 중요한 성과임에 분명하고, 독일과 한국에서 보듯이 각국으로 하여금 구체적인 입법과 정책으로 배출량 감축을 실행하도록 하는 효과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기후위기 대응운동 진영이 지적하듯이 협약이 각국의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을 구체적으로 할당하지 못하고 각국이 스스로의 배출량 감축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기준으로 해서 감축을 위한 노력을 하도록 하는 체제에 머물고 있는 부족함이 있다.
당사국들은 스스로 '국가결정기여(NDCs)' 목표를 제출해서 그에 따라 감축활동을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한국의 헌법재판에서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시민들이 우려한 바와 같이 각국은 파리협정 이행법률을 만들면서 현시점과 가까운 장래에는 배출량 감축의 폭을 약하게 하고 순탄소 배출 0을 실현해야 할 2050년 즈음에 가서 배출량을 대폭 줄이는 것으로 느슨한 계획을 짜고 있다. 결국 후속 세대에게 큰 부담을 주게 되고, 더 나아가 감축 목표 자체를 실현불가능하게 만들 수도 있다.
지구의 미래, 지구생명의 미래를 걱정하는 각국 시민들은 파리협정이 실효성 있게 각국의 온실가스 배출 감축의무를 부과하는 조약이 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고, 더 나아가 파리협정보다 좀 더 강력하고 구체적인 의무를 부과하는 국제법 규범이 나오도록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나아가 파리협정 각 당사국 정부가 협정이 부여하는 의무에 따라 이행법률에 해당하는 국내법을 충실한 내용으로 제정하도록 이행법률 제정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기고] 성상희 / 변호사. 생명평화아시아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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