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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70세 "우리는 시니어 바리스타"...태평살롱, 커피향 풍기는 노년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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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촌동 카페 태평살롱
'태평시니어협동조합'
커피 내리고, 빵 굽는
환갑~팔순 인생 2막
"반짝반짝 청년들 보며
나의 건강만 따라준다면..."

대구 중구 서성로14길 84 향촌동. 대구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에서 도보로 5분. 전봇대에 '행복길17'이라고 적힌 수제화골목길을 따라 걸으니 소담한 카페가 나온다. 간판에 적힌 이름은 '태평살롱'이다. 

"어서오세요.~뭐 드시겠어요?"

12월 31일 2024년 한해의 마지막 날 태평살롱 앞에서 깊고 진한 커피 향기가 풍겨 나온다. 태평쿠키와 마들렌의 달콤한 냄새가 골목길을 가득 채운다. 골목을 지나다니는 손님들의 발길을 잡아끈다. 

평균 70세 할머니, 할아버지 시니어 바리스타들이 매일 커피를 내리고, 빵을 굽는 카페 태평살롱이다.

대구 중구 향촌동 카페 태평살롱(2024.12.3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행복길17 전봇대 향촌수제화골목을 따라 걸으면 카페 태평살롱이 보인다(2024.12.3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2024년 마지막 날 태평살롱에서 손님을 맞는 바리스타는 모두 세 사람이다. 서순재(72)씨와 이미자(69)씨,  윤성순(61)씨다. 현재 태평살롱 소속 최고령 바리스타는 80세 할머니로, 60대은 막내격이다. 

이날 향촌동 카페 태평살롱을 오픈한 세 사람은 작은 카페 안에서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내오느라 분주하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고 신나는지 웃음이 그칠 틈이 없다.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다. 

단골손님인 70대 어르신이 주문을 하기 위해 카페 창가에 섰다. 매일 먹는 메뉴 그대로, 상투과자와 물 한컵을 시켰다. 2025년 1월 1일이 휴무라 상투과자를 새로 굽지 않아 다음에 오겠다며 발길을 돌렸다. 

이미자씨는 "단골인데 과자를 못 구워서 그냥 가셨네. 매일 오셔서 같은 주문을 하고 화투 치러 가시는데 다음에 다시 오시겠지 뭐"라고 아쉬움을 전했다. 이어 서순재씨를 향해 "언니 우리 상투과자 미리 구울 걸 그랬나?"라고 묻자 서순재씨는 "아쉽지만 다음에 다시 오시겠지~"라고 답했다. 

평균70세, 시니어 바리스타 3명이 카페살롱 안에서 커피를 내리고, 마들렌을 구워 정리하고 있다.(2024.12.3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태평살롱 카페 앞 테이블에 '언제나 청춘, 태평시니어협동조합' 현수막이 걸렸다.(2024.12.3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서로의 호칭은 '언니, 동생'이다.. 마치 자매들 같다. 아직 한해가 지나지 않아 "나이 한살 더 먹지 않아 좋다"는 농담도 건넨다. 커피머신과 오븐 앞 카페의 작은 창밖으로 거리를 쳐다본다. 연말 한겨울 길거리에 좀처럼 사람이 없다. 앞치마를 한 3명의 바리스타들은 기죽지 않고 다시 웃으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태평살롱은 중구 마을기업이다. 지자체로부터 사업개발비를 지원 받아 2018년 '태평시니어협동조합'을 꾸렸다. 그렇게 탄생한 게 카페 태평살롱이다. 1호점에 이어 2호점까지 열었다. 주축들 평균 연령은 70세다. 60세 이상,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고 3개월 수련을 거쳐 조합원들의 동의를 얻으면 조합원이 된다. 

현재 조합원은 20명, 시니어 바리스타는 18명이다. 노인복지관에서 개발한 '바리스타 반' 프로그램이 태평살롱의 모태가 됐다. 2018년 당시 같이 자격증을 딴 창립 멤버 10명이 힘을 모았다. 돈을 번다는 개념보다, 노년에 새로운 삶의 활력을 불어넣고 지역사회에 봉사하며 노인 일자리를 제공하는 게 목적이다. 

(왼쪽부터)서순재, 이미자, 윤성순 시니어 바리스타들이 손님에게 커피를 내주며 환하게 웃고 있다.(2024.12.3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왼쪽부터)서순재, 이미자, 윤성순 시니어 바리스타들이 손님에게 커피를 내주며 환하게 웃고 있다.(2024.12.3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커피향 풍기는 노년의 삶, 어르신 바리스다타들의 '인생 2막'은 그렇게 시작됐다. 

태평살롱에 손님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은 딱 2개다. 테이블 옆 붉은 벽돌에 큰 현수막이 걸렸다. '언제나 청춘, 태평시니어협동조합' 슬로건이 적혔다. 슬로건과 함께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고, 빵을 굽고, 카페를 오픈하던 어르신들의 지난 7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담은 사진들도 보인다. 

이들은 20대에 결혼해 40년 가까이 평생 가정 주부로 살았다. 남편 뒷바라지를 하고, 아이들을 키우고, 이제 손자 손녀까지 봤다. 할아버지 바리스타들의 인생 곡선도 할머니 바리스타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자식은 장성해 분가했다. 회사에서도 은퇴했다. 집에서 무료하게 TV만 보거나, 누군가를 기다리기만한다. 대화할 사람도 없다. 그러다 우연히 복지관에서 '바리스타 반'을 봤다. 작은 불꽃이 일었다.  

수줍은 많은 서순재씨는 "시력도 점점 안좋아지고, 집에 혼자 있으니 이야기하고 만날 사람도 없고, 그러다 보니 점점 언어 구사력도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며 "이 일을 하면서 젊은 사람들과 만나 대화를 하다보니 마음도 생각도 젊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 한 마디로 "자존감을 찾을 수 있어 좋았다"고 덧붙였다.

태평살롱 주문대인 창문 너머로 두 바리스타가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2024.12.31)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태평살롱 주문대인 창문 너머로 두 바리스타가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2024.12.31)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박력분 800g, 설탕 800g....카페 뒷편에는 마들렌과 파운드빵 등에 대한 레시피가 게시판에 적혀 있다.(2024.12.3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박력분 800g, 설탕 800g....카페 뒷편에는 마들렌과 파운드빵 등에 대한 레시피가 게시판에 적혀 있다.(2024.12.3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이미자씨는 "이사를 오면서 우연히 기회가 되어 복지관에서 바리스타 자격증을 땄다"며 "좋은 사람들을 만나 서로 언니야, 아우야 하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았다. 노인들이 모인 곳인데 이왕이면 커피 냄새가 나면 좋지 않겠냐 해서 시작한 일이다. 너무 재미있고 행복하다. 어떨 때는 빨리 나가고(카페로 출근) 싶어서 다음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고 밝혔다. 

막내 윤성순씨는 지난해 9월 자격증을 땄다. 갓 1년된 신입 시니어 바리스타다. 그는 "애들이 다 크고 나가서 살게 되니 집에서 내 역할이 많지 않았다"며 "TV에서는 노년 우울증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혹시 나도 하는 공감을 하다 새로운 일을 찾아보게 됐다"고 했다. 이어 "커피를 매일 한잔씩 마시니 내가 좋아하는 커피 냄새라도 실컷 맡자고 생각해 바리스타에 도전했다"면서 "요즘에는 80세 고참 언니를 보면서 '참 대단하다. 잘한다. 몸도 마음도 건강하다' 생각하며 나도 열심히 해야지 하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모두 태평살롱에 와서 인연을 맺었다. 환갑이 넘어 사귀게 된 귀한 친구들이다. 뒤늦게 얻은 친구들은 더 소중하기만하다. 하지만 환갑, 칠순, 팔순 늦은 나이에 하는 사회생활이 순탄하지 만은 않았다

태평살롱에서 만드는 착한 가격의 커피와 쿠키들. 모두 시니어 바리스타들이 직접 내리고 구운 음식들이다.(2024.12.3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태평살롱에서 만드는 착한 가격의 커피와 쿠키들. 모두 시니어 바리스타들이 직접 내리고 구운 음식들이다.(2024.12.3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태평살롱 1호점에서는 카페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연세 많은 손님들이 웃지 못할 에피소드를 만들었다. "커피를 내와라", "옆 자리에 앉아라", "배달해달라" 등 시니어 바리스타들에게 황당한 요구를 했다. 카페를 소위 '다방'으로 착각한 진상 손님들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 옛 이야기가 되었다. 지난 7년 사이에 어르신들도 많이 달라졌다. 카페 문화에 익숙해지면서 '아메리카노'와 '카페라떼'를 마시는 게 일상이 됐다.

그럼에도 가끔 '나이 탓'에 주눅이 든다. 서순재씨는 "명색이 카페하는 사람인데 너무 옛 사람인가 싶어 주눅이 들고 눈치 보일 때가 있다"며 "젊은이들 보기에 좀 그런가? 그런 질문을 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주문을 잊은 카페'라는 키워드도 칠순의 바리스타를 채찍질 하게 하는 이유 중 하나다. "손님이 주문한 메뉴를 깜빡 잊고 한참을 멍하니 있거나, 엉뚱한 메뉴를 낼 때도 있었다"면서 "내가 이 일을 해도 되나? 자괴감이 든다. 젊은 아이들(60대 바리스타들)에게 나 이상한 거 아냐? 물을 때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럴때면 "'나도 그럴 때 있어', '그럴수도 있죠'라는 한마디 말이 나에게 위안이 된다"고 했다. 

때문에 잊지 않고 되뇌이는 주문은 '내 나이가 어때서'이다. 세명의 시니어 바리스타에게 2025년 새해 소망은 다른 게 없다. 바리스타 일을 계속할 수 있게 건강이 허락하는 것이다. 이미자씨는 "어떻게 하면 더 젊어져볼까 궁리만 한다"며 농담을 했다. 이어 "이 일을 하면서 너무 행복하다. 이 나이에 뭔가 할 수 있다는 것도 나 스스로에게 자랑스럽다. 내년에도 계속 일할 수 있게 건강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일흔이 넘은 바리스타 서순재씨가 커피를 내려 손님에게 건네고 있다.(2024.12.3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윤성순씨도 "여기에 나오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면서 "집에 있으면 오고 싶고, 안보면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새해에는 아픈 곳 없이 다들 건강하고, 하는 일들이 다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순재씨는 "남편도 바리스타 하는 것을 응원한다"며 "처음에는 나가는 것을 잘 적응 못하더니 지금은 '오늘 출근하는 날 아니야?'하면서 오히려 챙겨준다. 노인 우울증이니 뭐니 그런 것 없이 너무 즐겁다"고 말했다. 이어 "이 일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고, 누가 하지 말라고 할 때까지 건강만 따라준다면 팔순이 되도 오래 오래하고 싶다"면서 "반짝반짝한 청년들을 보면서 거기에 뒤쳐지지 않게 열심히 살고 싶다. 경제가 어려운데 내년에는 경기가 좀 좋아져서 태평살롱도 대박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대한민국은 지난해 '노인 인구 1,000만' 시대에 접어들었다. 65세 이상 주민등록인구는 지난해 7월 10일 기준으로 1,000만62명을 기록했다. 대구광역시의 경우, 노인 인구 비율 상승세가 더욱 가파르다. 

대구는 지난해 부산에 이어 두번째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2024년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 기준을 보면, 대구 65세 이상 고령자는 인구의 20.1%인 47만5,318명이다. 2017년 고령사회(고령자 인구 비율 7% 이상)로 진입한지 7년 만이다. 국제연합(UN)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 이상인 지역을 초고령사회라고 규정하고 있다. 대구시는 지난해 '고령친화도시' 조성을 위한 로드맵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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