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여성노동자회는 지난 4년간 청년 여성노동자들과 함께 인스타툰('인스타그램에 연재하는 만화')을 그려왔다. 직장과 일상에서 겪은 차별적인 경험을 만화로 녹여낸 것이다. 인스타툰에는 채용성차별, 직장 내 성희롱, 외모 지적, 독박 돌봄 노동 등 여성노동자들이 겪는 다양한 차별의 경험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매년 진행된 전시회에서는 다양한 세대들이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하기도, 변하지 않은 현실에 속상해하기도 했다.
인스타툰에 드러나듯 대구지역 청년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은 열악하다. 대구의 많은 청년들이 일자리가 부족해 고향을 떠난다. 그런데 그 부족한 일자리조차 근로기준법을 지키지 않거나 수직적인 조직문화인 사업장이 많기 때문에 떠나는 청년들 또한 많을 것이다.
실제로 전국의 여성노동자회에서 함께 진행한 90년대생 노동자 실태조사 인터뷰 과정에서 가장 자주 등장한 말은 ‘쌍팔년도식 직장문화’다. 무급야근을 당연하게 여기고, 연차나 휴식권 보장과 같은 기본적인 노동권조차 지켜지지 않는 곳이 많았다. 성차별적인 직장 관행이 유지되어 취업 자체를 제한하고 심지어 군대식 복종을 요구하거나 업무가 아닌 개인적인 잔심부름을 시키는 것도 여전했다.
문제는 청년 여성노동자들이 겪는 어려움은 단순히 노동청에 가서 신고를 하는 것만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은 근로기준법 위반을 넘어 성차별, 성희롱과 같은 복합적인 문제에 시달린다. 특히 사회초년생일수록 피해 비율이 높은 직장 내 성희롱 같은 문제는 법적 대응도 중요하지만 여러 번의 재상담과 밀착 상담을 통해 피해자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런 어려움을 겪는 여성노동자들이 기댈 수 있던 최소한의 안전망이 바로 민간고용평등상담실이었다. 대구여성노동자회를 비롯한 19개의 단체들이 전문성을 가지고 24년간 여성노동자들을 상담하고 지원해왔다. 그러나 2024년 윤석열 정부는 민간고용평둥상담실의 예산을 하루아침에 ‘0원’으로 삭감했다. 집권 시기부터 외치던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메시지에 걸맞은 행보였다.
정부는 민간고용평등상담실을 폐지하며 고용노동부가 직접 ‘원스톱’으로 상담과 권리 구제를 책임지겠다고 했지만 고용노동부가 보여준 행보는 참담하다. ‘노동부 진정 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상담 진행이 불가하다’는 경직된 운영과 더불어, 고용노동부 내부사업이라는 특성상 근로감독관의 판단에 이의를 제기하기도 어려웠다. 지역 노동청은 수개월이 지나도록 상담 인력 채용도 제대로 하지 못했거나 상담 인력이 입퇴사를 반복하는 등 상담의 안정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더 심각하게는 상담의 질적인 문제도 드러났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김위상 국민의힘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4년 직장 내 성희롱 신고 접수가 1,100건이 넘었지만, 이 중 단 1건만 기소의견으로 검찰 송치, 17건은 과태료 처분이 내려졌고, 900건이 넘는 사건이 ‘법 위반 없음’으로 처리되었다. 어렵게 노동청 진정 접수를 하고도 ‘손에 쥔 결과가 아무것도 없는 여성노동자’가 900인이 넘는다는 이야기다.
심지어 피해 신고를 위해 고용노동부로 전화를 하니 ‘진정 접수를 해봤자 결과가 좋지 않을 수 있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오히려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울 수 있다’며 진정 접수를 포기하도록 유도하고 ‘힘들게 싸우느니 실업급여를 받으라’는 응대를 받았다는 믿기 어려운 사례들도 여성노동자회에 접수되었다.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은 재상담, 의견서 제출, 피해자 진술 동행과 심리정서 돌봄 등 상담사가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만 ‘피해 회복과 권리 구제가 가능한 사건’들이다. 피해 정도가 심각하고 2차 가해, 재발 위험이 있기에 신속하게 대응해야만 한다. 어렵게 용기를 내어 신고를 하기 위해 고용노동부의 문을 두드렸지만 신고 접수조차 못 해본 여성노동자들의 심정은 어떨까?
이재명 정부는 윤석열 정부의 과오를 바로잡고 민간고용평등상담실을 복원하겠다고 했으나 그 계획은 형식적인 수준에 불과하다. 민간고용평등상담실 예산은 폐지되기 전에도 턱없이 부족했던 2023년 기준 예산에서 1/3 수준인 4억5천에 불과하며, 기존 19개소였던 상담실을 9개소로 운영하겠다는 계획이다. 확대해야 할 민간 고용평등상담실을 오히려 축소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관계 법령을 총괄하고, 사업장 감독과 시정명령 권한을 가진 고용노동부의 ‘여성고용정책과’까지 폐지하고, 성평등 노동 추진 체계를 강화하기보다 오히려 약화시키는 것은 명백한 퇴행이다. 여성노동자들이 최소한의 안전망에서 제대로 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민간고용평등상담실 완전 복원과 예산 확대부터 시작해야 한다.
[시민사회 칼럼 106] 김수현(대구여성노동자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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