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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대구에서 의미가 있는 시국토론회가 열렸다. 세 시간 남짓 짧지 않은 시간동안의 토론회였지만, 그 열기는 뒷풀이로 연결되었다. 이 자리에 참석하여 어줍잖은 질문을 던지기도 했으며, 뒷풀이에서도 나름 독설(?)을 퍼부었던 열정이 아직 남은 느낌이다. 차분히 가라앉히면서, 당시의 단상을 정리하고자 한다.
당시 패널들을 비롯한 참가자들이 좋은 말씀을 보태셨고, 생각할 꺼리를 많이 던져놓으셨기에 두 가지에 대해서만 짧은 소견을 밝히고자 한다. 나는 시국토론회의 상황에 내재되어 있던 '두 가지 전제'를 목격하였고, 이것에 대하여 강한 문제의식을 느꼈다.
'노무현 전대통령 서거 사건에 대한 계시론적 해석'과, '연대의 필연성에 대한 묵종'이 그것이다. 이 둘은 상호 연결되어 있었다.
노무현 전대통령 서거는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던져주었고, 뒤 이은 일련의 사건들은 정치사회의 기존의 흐름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크게 틀어놓았다. 그러니 당연히 노무현 대통령의 '사적인 죽음'은 그 자체로 정치적인 것이고, 저항적인 것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마치 숨은그림을 찾듯이, 생전 그의 긍정적인 모습만을 부각하여 추억하기를 강요하는 듯한 진보진영의 '모종의 압박감'은 솔직히 부담스러웠다. 또한 노무현 전대통령의 죽음을 구체적인 어떤 '정치적 계시'로 해석하려는 다소 과장된 접근은, 사실적이지도 않으며 동시에 바람직하지도 않다. '노무현 철학'을 어떻게 현실화시킬 것인가? 운운은 명백히 오버라는 것이다.
그는 '사람사는 세상'을 추구하였지만, 그의 목표는 명백히 실패하였고 어쩌면 그는 '사람사는 세상'의 실현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상황을 만들기도 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진정성'을 믿기에, 그리고 그의 진정성이 이명박 정부의 독재와 대비되어 더욱 부각되고 있기에 그의 죽음앞에 진정한 추모의 정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기까지이다. 지금은 노무현 전대통령에 대한 추모에 대한 '정서적 공감'을 넘어선 구체적인 '정치적 주장'이 제시되어야 한다. 이에 근거하여 각자의 견해들이 눈치보지 않고 오해받지 않으면서 발언되고 비판되어야 '공정한 토론게임'이 된다.
노무현 전대통령에 대한 다소 과장된 정서는 연대의 '필요성'에 대한 토론이 아닌 연대의 '필연성'에 대한 '모종의 강요'로 이어진다. 물론 연대는 차이를 전제하고, 연대가 성사되었다는 것은 내부적 차이를 회피하겠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기에 '연대'는 '문법적 명사(名詞)'가 아니라, '정치적 동사(動詞)'이다.
그러나 상황에 대한 각자의 해석도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마치 '정언명령'으로서 연대를 전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연대는 차이가 부각되고 이들 사이에 '교집합'이 발생할 때, 또한 이러한 '교집합'이 미래지향적 확대재생산의 가능성이 발견될 때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상황이 좋지 않다고, 또한 이러한 불리한 상황에서 노무현 전대통령의 서거에 대한 정서적인 공감이 광범위하게 발생하였다고, 바로 연대를 도출하는 것은 성급하다.
또한 상황에 대한 각자의 견해에 주목하기보다는, 이러한 연대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비판당해야한다면, 다소 억울하기까지 하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연대가 궁극적으로는 '선거연대', 보다 구체적으로는 지방선거의 승리를 위한 '반MB연대'를 목표로 귀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치적 상황과 이에 따른 정치적 연대의 결과가 '당선을 위한 선거공학'으로 귀결되는 것, 이러한 가운데 '반MB연대'라는 특정한 정치적 견해가 보편적 상식의 이름으로 '끼워넣기'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좀 더 많은 토론이 필요할 것이다.
여기에서는 다만 결론적인 이야기만 하겠다. 각 정치세력 사이에 현실적으로 시각의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전면적인 연대는 불가능하며 바람직하지도 않다. 또한 선거전술은 연대의 성과에 기초한 보다 정치적인 판단에 근거하는 것이지, 전대통령의 죽음이라는 본질적으로는 일회적인 사건으로 기계적으로 도출될 사안은 아니다.
어느 외국 역사학자의 표현을 빌자면, '광기의 순간'(moment of madness) 같은 또 하나의 정치적 계기가 지나가고 있다. 보다 긴 호흡이 필요한 시점이다. 좀 더 솔직해지자. 과장하지 말고, 지나치게 기대하지도 말자.
채장수 /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대구사회연구소 기획조정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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