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기부 재산은 목도리와 어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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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상 칼럼] "착한 개인이 선한 지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재산 기부 약속을 드디어 지켰다. 대선 과정에서 재산 의혹을 돌파하기 위해 했던 약속이라거나, 약속 후 너무 늦게 실천에 옮겼다거나, 자신이 영향력을 계속 행사할 수 있는 방식으로 기부를 했다는 등의 비판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재산가들이 이런 정도의 선례라도 따라 준다면 지금보다 훨씬 좋은 세상이 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기부와 함께 <재산 기부 소회 발표문>을 냈다. "일생 열심히 일하면서 모은 재산"이고 "정말로 소중한 재산"을 내놓는 일인데다가 문장이 잘 정제되지 않을 걸로 보면, 바쁜 일정 속에서 대통령이 직접 썼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이 글에 나타난 솔직한 ‘소회’에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이하, 인용은 <발표문>에서)

<발표문>을 요약하면 이렇다. 자신이 남의 도움을 많이 받으며 살아왔기 때문에 그에 보답하기 위해 재산을 기부하는 것이며, 사랑과 배려가 넘쳐나는 따뜻한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나무랄 데 없는 윤리의식이다. 또 입으로만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실천까지 했으므로 자연인 이명박 씨에게 일단 높은 점수를 매기고 싶다.

하지만 <발표문>을 쓴 자연인 이명박 씨와 현직 대통령이 같은 사람인지 의문이 든다. <발표문>에 나타난 개인윤리는 인간의 본성적인 윤리감정 그리고 성경의 교훈과 일치하지만 현 정부의 정책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착한 사람이라고 해서 사회적으로 선한 지도자가 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의미롭게 쓰는 방법...국가예산은?

두 가지만 예시해 보자. 첫째로, "가난하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분들을 위해서 제 재산을 의미롭게 쓰고 싶(다)"다고 했다. 그런데 대통령이라면 이런 국민을 위해 개인 재산만이 아니라 국가 예산을 의미롭게 쓰는 방법을 당연히 생각해야 하고 그것이 정책에 반영되어야 한다. 그런데 왜 강부자 정책을 추구하고 복지정책을 후퇴시키는지 모르겠다. 더구나 "사랑이 없는 물질은 의미가 없다"고까지 했으면서.

둘째로, 더 나아가서 "사람은 누구나 평등합니다... 서로를 돕고 사랑과 배려가 넘쳐나는 따뜻한 사회가 되길 진심으로 고대합니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런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정부가 강제 진압으로 철거민을 죽음에 몰아넣은 '용산 참사'를 일으켰다. 또 사후 처리에서도, 반성의 모습은 전혀 없고 오히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려는 사람까지 탄압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어떻게 이런 정책을 태연하게 밀고 나갈 수 있을까? 개인윤리와 사회윤리가 단절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인생 역정에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극심한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 일과 경쟁을 통해 성공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경제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경제로 인해 심한 고통을 받았고 또 경제로 인해 성공하였으며, 오로지 살아남고 성공하는 것만 생각하며 살아온 사람에게 경제 외적인 철학적 고민은 장애이자 사치일 뿐이다. 그가 종교에 깊이 경도된 것도 어쩌면 이에 대한 반작용이 아닐까?

'기회균등' 역행하는 발표문, '위선의 증거' 문서 될 뿐

또 그는 약육강식의 세상에 별다른 의문을 품지 않는다. 성공한 사람은 자신의 인생을 긍정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그는 세상은 본래 험하기 마련이고 모든 사람은 각자 시장에서 힘껏 경쟁하면서 살아가야 한다고 믿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실패하는 사람에게는, 사회가 아닌 (자신이 재산을 기부하듯) 개인 차원의 선의와 자선을 통해 구제하면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을 것이다.

'시장과 경쟁'은 "사랑과 배려가 넘쳐나는 따뜻한 사회"와는 어울리지 않지만, 그렇더라도 이를 부정할 수만은 없다. 다만 '시장과 경쟁'이 하나의 사회원리가 되려면 적어도 기회균등이라는 조건이 필요하다. 이 조건은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다는 <발표문>이 최소한의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기회균등 사회는 약육강식의 정글이 아니다. 기회균등 사회는 특권 없는 사회, 생존권이 평등하게 보호되는 사회, 교육의 기회가 평등하게 보장되는 사회, 노력과 기여에 따른 대가를 얻을 수 있는 사회, 불로소득이 없는 사회, 성실한 사람이 잘 사는 사회를 말한다. 이명박 정부가 지금처럼 이에 역행하는 정책을 펴는 한 <발표문>은 사회 문제에 대한 그의 무지, 외면, 심하게는 위선의 증거 문서가 될 뿐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나름의 진정성을 바탕으로 재래시장에 가서 목도리를 풀어주고 어묵을 먹어도 국민이 감동하지 않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김윤상 칼럼 21>
김윤상 /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교수. 경북대 행정학과. yskim@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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