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4일 신년 국정연설에서 “올해는 남북관계에도 새로운 전기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밝혔다. 물론 여전히 새로운 남북관계를 만들어기 위한 전제조건을 내걸었다. 다름 아닌 한반도 비핵화의 진전이다. 비핵화가 이루어지고 난 다음에 남북관계 진전이 있어야 한다는 선핵폐기 입장에서 보면 한발 전진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여전히 핵문제에 남북관계 진전을 연계시키고 있다.
하지만 의미 있는 변화도 엿보인다. 비록 북한의 6자회담 복귀 및 한반도 비핵화라는 전제조건을 달기는 했지만, '남북간 상시대화를 위한 기구'를 언급하고 '북핵'이라는 대신 '한반도 비핵화'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도 눈에 띤다.
이는 해석하기에 따라 지난 1일 북한이 신년공동사설에서 남측 당국에 대한 직접적인 비난을 피하면서 남북관계 개선을 촉구한 것에 대한 화답으로 풀이할 수 있다.
북한은 매년 1월 1일 당보(로동신문), 군보(조선인민군), 청년보(청년전위) 등 3개 신문의 공동사설 형식으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북한은 신년사를 "당과 국가의 수반이 새해를 맞이하여 시행하는 공식적인 연설이나 그 연설문"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북한 신년사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새해 추진과업'이다. 이는 한 해 정책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각 분야별 시정지침과 중요한 대남 및 대미제안이 포함되어 있는 정책대강을 밝히고 구체적 과제를 제시하는 일종의 국정지표라 할 수 있다. 그런만큼 신년사를 통해 발표되는 남북관계에 대한 언급은 올 한해 대남정책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남북관계 의지 뚜렷이 표명한 2010년 신년사
올해 북한은 신년공동사설에서 ‘인민생활 향상’에 명백하게 방점을 찍었다. 이례적인 일이다. 이는 신년공동사설의 제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당창건 65돐을 맞는 올해에 다시한번 경공업과 농업에 박차를 가하여 인민생활에서 결정적전환을 이룩하자”는 제목에서 북한당국은 인민생활 향상에 대한 의지를 분명히 하였다.
한편 북은 사설에서 남북관계 개선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사설은 “북남관계 개선의 길을 열어나가야 한다”면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서 직접 비난하지 않고 있고 우회적으로 ‘내외분열주의 세력’이나 ‘남조선 당국’ 등으로 표현함으로써 대남공세의 수위를 낮추어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배려의 모양새를 띠고 있다.
하지만 남한 당국에 대한 경고도 분명히 하고 있다.
“남조선당국이 6.15공동선언을 부정하고 외세와 결탁하여 대결소동에 계속 매달린다면 북남관계는 언제가도 개선될 수 없다”며 “남조선 당국은 대결과 긴장을 격화시키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하며 북남공동선언을 존중하고 북남대화와 관계개선의 길로 나와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남이 지금까지와 같이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서명한 공동성명을 부정하고 한미일 공조에 매달린다면 남북관계 개선은 어렵다는 의지 표명이다.
밖에서 부는 훈풍, 그러나 남북관계는 불투명
일단 한반도 정세의 핵심적인 당사자인 북미관계의 전망은 밝다.
지난 해 12월 미국의 오바마 정부 등장 이후 열린 북미 공식회담의 성과가 좋기 때문이다. 첫 공식회담에 대해 북미양측의 평가 역시 긍정적이다. 북은 외무성 대변인이 "6자회담 재개 필요성과 9.19 공동성명 이행 중요성과 관련해 일련의 공동인식이 이룩됐다"고 평가했으며 미국의 보스워스 특사도 기자회견에서 "매우 실질적인 진전이 있었으며, 과거보다는 다음단계에 대해 매우 전향적이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물론 여전히 북미 사이의 이견은 남아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대화와 제재 양면전략에 미련을 갖고 있고 북미직접회담과 다자회담 사이의 상호관계 문제에 대한 이견도 있다. 그러나 북한도 2012년 강성대국 건설을 위해서는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시급한 문제이고 미국 역시 제제와 무력으로 북을 굴복시킬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기에 북미관계 정상화는 언제 이루어질지가 문제일 뿐 되돌릴 수는 없는 흐름이 되었다.
한반도 평화체제 문제 역시 마찬가지이다. 북미양국의 정치적 지도자가 정치적 결단을 통해 북미적대관계 청산을 정치적으로 선언하고, 이것을 이행하기 위한 제반 조치들을 협상을 통해 풀어나가자는 입구론과 실무적 협상(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협상)을 통해 합의안(한반도 평화협정)을 만들고 그것을 이행해 나가는 방식으로 한반도 평화체제와 비핵화 체제를 구축해 나가자는 출구론의 논쟁이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한반도 종전 선언을 위한 4자 정상회담 개최의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즉 입구론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주변 환경이 좋다고 해서 저절로 남북관계 개선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결국 남북관계 개선은 남북한 당국이 주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남북관계 개선의 전망이 그렇게 밝은 것 만은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남북한 관계 개선의 새로운 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신년사에서 표명했지만 통일부의 새해업무보고를 보면 여전히 ‘남북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 구현'을 내세우고 있어 국민의정부, 참여정부와 차별성을 강조하고 있다.
6.15선언 10주년...의례적 존중 표현조차 없는 통일부
통일부는 새해 업무보고에서 2010년 3대 전략목표로 △원칙 있는 남북관계 발전 △생산적 인도주의 실현 △미래준비 통일역량 강화 등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이를 위한 9대 중점 추진과제로는 △북핵문제의 획기적 전환 △국민의 확실한 신변안전 보장 △투명한 교류협력 추진 △인도적 문제의 창의적 대타결 선택과 집중의 민간단체 지원 일자리 중심 북한이탈주민 토탈케어△통일준비 내부 인프라 강화 △국제사회 통일 커뮤니티 형성 △녹색 한반도 구현을 통한 국격향상.미래준비 등을 제시했다.
이를 살펴볼 때 여전히 통일부는 남북관계 발전보다는 통일교육 등 소위 '통일국가 기반 조성'에 무게 중심이 치우쳐 있는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올해가 6?15공동선언 10주년임에도 불구하고 의례적으로 기존의 합의를 존중한다든지 표현조차 없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국민통합특별보좌관이자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인 김덕룡도 기존의 합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합의가 필요하다며 "북한 핵은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 실현의 큰 걸림돌"이라며 북한핵 문제가 한반도 평화유지의 선결조건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여전히 북핵문제와 남북관계 개선을 연계시키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 정세 분수령의 해, 민족 이익 어느때 보다 앞세워야
2010년은 한반도 정세에서 극적 분수령이 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올해가 지구상 마지막 분단국가이자 지난 20년간 북미간의 대결로 소련의 해체이후에도 냉전이 지속되었던 한반도에 평화체제 구축의 결정적 전환점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휴전협정이 4자정상의 종전선언을 거쳐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북미간에 외교관계가 수립되면 2차 대전이후 진행된 냉전은 공식적 종말을 고하게 될 것이다. 또한 그 냉전체제 아래 양진영의 최전선에서 대립함으로써 민족의 자주적 발전의 기회를 박탈당해 왔던 한민족이 다시 웅비할 기회를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남북관계 개선없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분단의 지속으로 연결될 가능성도 높다. 남은 한미 FTA로 미국과의 경제적 연계가 강화되고 북은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한 방법으로 중국과의 협력을 강화함으로써 경제적 분단도 강화될 수 있다.
북은 최근 중국과의 협력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이는 최근 북한이 라선시를 특별시로 지정한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라선시는 함경북도 동해안 북쪽 끝에 위치하고 있으며 두만강을 경계로 중국과 러시아와 접해 있고 지난 1991년 북한에서 첫 자유경제무역지대로 지정된 도시이다. 북한과 중국은 중국의 동북3성과 북한의 라선 지역간 접근성을 높이고 있다. 중국의 지린성 훈춘과 라선 지역을 묶어 대규모 국제물류기지로 개발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기도 하다. 이럴 경우 북한경제의 대중국의존도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주변의 좋은 환경을 우리민족이 재도약할 기회로 기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남북한 당국의 적극적인 의지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이명박 정부가 민족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대북정책으로의 전환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평화와 통일]
김두현 / 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 사무처장. 평화뉴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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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현 / "분수령, 새해 변화의 훈풍 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