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선언 10돌, 비상한 각오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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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현 / "민의 광범위한 참여, 민간통일운동의 몫이다"


<6.15> 남북정상회담...2000년 평양 순항공항에서 만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6.15> 남북정상회담...2000년 평양 순항공항에서 만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내 인생의 결정점, 6.15

 지난 2000년 6월 14일 밤, 나는 제주도에 있었다. 내가 몸담고 있는 시민사회단체의 전국워크숍이 제주도에서 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당시 처음으로 4.3의 영혼이 편히 잠들지 못하고 있는 제주도에 밟을 디뎠다. 그리고 제주도에 머물고 있는 내내 워크숍보다는 13일부터 시작된 남북정상회담에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회의가 끝나고 숙소에서 여흥을 즐기고 있던 순간, 그러니까 그때가 바로 15일으로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손을 잡고 “여러분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나는 모든 것을 합의하였습니다”라며 6.15공동선언을 발표하는 것이었다.  잠시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던 나는 주변사람들에게 연이어 축배를 제안했다.  "통일을 위하여"

 연이어 건배로 취기가 오른 와중에서도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던 것이 있다.
 ‘그래 이제, 내 삶은 6.15가 연 통일의 문으로 모든 사람들과 함께 걸어가는 것“이라고.
 당시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취재경쟁을 벌이던 기자조차 눈물을 흘렸던 그 감동의 순간을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비록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감동의 파고는 잦아들었지만.

통일을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 바꾸어놓은 6.15선언

 내년, 그러니까 2010년은 벌써 남북관계의 전환을 불러온 6.15공동선언이 발표된 지 10주년이 되는 해이다. 10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이제 6.15공동선언은 과거일뿐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6․15공동선언이 변화시킨 것이 너무나 엄청나고 그 변화의 실체는 여전히 현실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6.15공동선언 이후 남북관계는 참으로 많은 변화를 겪었다.  6.15 이후 북을 방문한 사람들의 숫자는 금강산 관광객을 제외하고도 10만여명이 넘는다.  지난 89년부터 97년까지의 방북자 2,000여 명의 50배가 넘는다. 북한 동포의 남한 방문 역시 크게 늘어났다. 금강산 관광도 2003년 9월 육로관광이 시작되면서 급격히 늘어나 지난해 7월 중단되기전까지 198만여명이 금강산을 다녀왔다.

 지난해 베이징올림픽에서는 실현되지 못했지만 시드니와 아테네 올림필에서 공동입장이 이루어졌고 부산아시안게임과 대구유니버시아드 대회때는 선수단과 응원단이 참여하기도 하였다. 제주민족통일축전을 비롯하여 서울이 아닌 지방차원의 사회, 문화교류도 꾸준히 진행되었고 남의 자본과 기술력, 북의 노동력과 토지가 결합된 개성공단이 통일과정에서의 경제협력모델로 운영되고 있다.

비록 지금 일시적으로 남북관계가 냉각되어있지만 남과 북을 오가는 사람과 물자가 완전히 막혀 있는 것은 아니다. 이명박 정부의 선핵폐기 정책으로 인해 남과 북이 으르렁대고 있고 3차 서해교전으로 군사적 긴장도가 높아지기는 했지만 6.15이전의 상황과는 전혀 다르다.  남북간에 약간의 충돌만 있어도 주가가 폭락하고 외국인 투자자들이 빠져나가며 국민들이 생필품 사재기에 나섰던 6.15 이전의 현상은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 수준에서 분단체제를 지탱해왔던 냉전이 해체되었고 한반도 차원에서 지난 10년간의 남북 화해 기조가 진행되었으며 남북화해와 분단체제 해체를 가로막았던 미국 역시 오바마 행정부의 등장 하는 등 한반도의 긴장이 더 이상 고조되는 것을 막는 구조적인 요인이 만들어진 셈이다.

 이제 통일은 우리의 이상지자 꿈, 그리고 소원이 아니라 실체이자 구체적인 과정으로 다가온 것이다. 물론 이를 현실화 시킨 전환점은 외부적 냉전의 해체도 중요했지만 세계적 차원에서 냉전과 조응하며 한반도 차원에서 유지된 분단체제를 뒤흔들어 놓은 6.15공동선언이다.

다른 세상의 가능성을 열었던 6.15

 대결과 갈등의 남북관계를 화해와 협력의 남북관계로 변화시킨 6.15공동선언은 단순히 남북관계의 변화만을 가져오지 않았다. 냉전과 분단으로 인해 반공보수정치세력이 독점했던 정치구조를 변화시켰고 일방적인 주종관계였던 한미관계를 보다 평등한 수평적 관계로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또한 6.15공동선언은 우리사회의 수많은 금기 중 가장 큰 금기였던 한국의 현대사와 북에 대한 새로운 접근의 공간을 열어주었다. 금기가 풀리니 사람들은 분단과 전쟁의 과정에서 닫았던 입을 열기 시작했고 오랫동안 묻혀있던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과 국군에 의해 무참히 희생되었던 ‘노근리 양민학살사건’과  ‘국민보도연맹사건’ 등에 대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가능해지게 되었고 국가폭력에 의해 희생되었던 ‘4.3제주항쟁‘도 복원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그동안 다루지 못했던 수많은 소재들을 다룰 수 있게 되면서 한국영화의 부흥이 이루어졌다. '공동경비구역 JSA'와 ‘실미도’, ‘월컴투 동막골’ 등이 그러한 예이다.  막혀있던 입을 열게 하고 오른쪽 눈으로만 보던 세상을 양눈으로 보게 되니 새로운 세상의 가능성, 다른 세상의 가능성이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6.15공동선언은 바로 우리사회가 반공보수독점의 정치구조에서 벗어나 좌우가 균형을 이루는 사회의 꿈, 이상으로만 여겨왔던 다른 세상을 현실화 시킬 수 있는 창을 열었던 것이다. 그러하기에 6.15공동선언은 단순히 남북관계에 있어서 제 1사건이 아니라 대한민국 현대사 아니 남북을 아우르는 한반도 현대사의 제 1사건인 것이다.

 6.15가 열어놓은 한반도식 통일이 좋은 통일이 되기 위해서는

 6.15공동선언은 남쪽 사회뿐만 아니라 북쪽 사회도 변화시켰다. 일각에서는 북은 변화하지 않고 우리만 경계심이 풀어져 적화통일의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이는 북사회의 변화를 간과한 사시를 가진 사람들의 생각일 뿐이다. 북한 역시 남한에 대한 적대감은 급격히 변화하였다. 북만 전통성이 있고 남은 미국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할 대상으로만 인식했던 의식이 "통일문제를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나가자" 6.15공동선언으로 인해 변화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제 남 역시 통일의 과정에서 당당한 1주체인 것이다. 이는 북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6.15공동선언에 담긴 가장 큰 함의는 통일을 단번에 하는 것이 아니라 점차적으로 이루어가야 할 과정으로 남과 북이 합의한 것이다. 이는 6.15공동선언의 2항에 표현되어 있다.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한다."

 이는 기본의 남이 주장하던 교류협력 중심의 연합제 안과 정치군사 중심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하기로 했다는 말인데 무슨의미일까? 다른 아닌 통일이 단번의 정치협상을 통해 이루어야 결과로써의 목적적 가치일뿐만 아니라 평화적이고 점진적으로 이루어야 할 과정임을 남과 북이 합의한 것이다.

 바로 이 합의를 통해 앞으로 통일의 과정에서 남과 북의 광범위한 구성원이 참여할 공간이 마련된 것이다.  백낙청 교수의 표현을 빌면 ‘시민참여형 통일’이 가능해 진 것이고 이 점이 바로 무력통일에 의한 베트남식 통일과 정치협상을 통한 예맨 통일, 그리고 자본에 의한 흡수통일의 길이 아닌 한반도 고유의 통일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6.15선언 10돌, 민간통일운동진영이 각오를 새롭게 해야 할 이유

 한반도식 통일은 그럼 좋은 통일일까? 나쁜 통일이까? 또한 통일은 빠르게 올까 느리게 올까?
이는 전적으로 시민의 참여의 정도와 폭에 달려있다. 통일이 과정임을 인식하고 좋은 통일을 만들어 가려고 하는 한반도 통일에 대한 의식을 가진 시민들의 광범위한 참여가 이루어진다면 이는 좋은 통일이 될 것이다. 반면 통일은 나와 무관한 일이라고 남북의 정권담당자에게만 이를 맡기다면 이는 나쁜 통일이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그렇다고 통일의 과정에서 남북 정부 당국의 역할이 없거나 미세한 것은 아니다. 통일이 고도의 정치적 과정이만큼 통일의 과정에서 남북 정부 당국의 역할은 어떠한 단위보다 크다. 하지만 남북의 정부당국도 좋은 통일을 이루려면 이 과정에서 끊임 없이 통일로 만들 새로운 민족공동체의 비전을 제시하고 7천만 구성원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어야 한다.  그러하기에 한반도식 통일은 민관합작의 과정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관의 일관된 비전 제시와 민의 광범위한 참여로 이루어지는 한반도식 통일은 좋은 통일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관, 특히 6.15공동선언의 일주체인 남측 당사자인 이명박 정부의 일관된 비전제시를 기대하기는 힘들 것 같다. 그렇다면 이를 강제하고 민의 참여를 이끌어 내어야 할 몫은 다름 아닌 민간통일운동진영에게 있다.   6.15 공동선언 10돌을 앞두고 민간통일운동진영이 각오를 새롭게 해야할 이유가 있다. 민간통일운동진영은 비상한 각오와 다양한 방도를 가지고 6.15 10돌인 2010년에 민의 광범위한 참여를 이끌어 내어야 할 것이다. 






[평화와 통일]
김두현 / 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 사무처장. 평화뉴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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