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은 누구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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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상 칼럼] "배출권거래제는 환경 투기의 재앙 낳는다"

환경은 국민 모두의 관심사다.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은 누구나 원하는 것이고, 4대강 사업이 환경 살리긴지 죽이긴지 논란이 일고 있는 시점이어서 더욱 관심들이 높다. 그러나 한 쪽에서 배출권거래제라는 이름으로 환경을 팔아치우고 있는데도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고 있다.

배출권거래제는 오염물질 배출권을 나눠준 후 권리자가 실제 배출량을 줄일 경우에 그 차이만큼의 권리를 시장에 내다 팔 수 있는 제도다. 환경도 토지처럼 민간에 불하하고 시장거래를 보장하는 방식이다. 1997년 교토의 기후변화협약 총회에서 지구온난화 대책으로 탄소 배출권거래제에 합의를 이루었고 유럽과 미국에는 이미 국제적인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금년부터 탄소 배출권거래제를 시범 실시한다.

신자유주의에 어울리는 배출권거래제

배출권거래제는 배출권의 가격과 배분이 시장에서 결정되므로, 정부 간섭의 극소화와 시장 기능의 중시를 핵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와 잘 어울린다. 이 제도가 교토의정서에서 채택된 것도 시장에 대한 믿음이 세상에 퍼져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더구나 배출권 시장이 ‘완전경쟁’ 상태에 있다면 시장을 통해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이론이 믿음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문제는 ‘완전경쟁’이라는 가정이다. 주류경제학에서는 가정 속에서나 맞는 이론을 세우고는 늘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그대로 적용하려고 한다. 우리는 그 폐단을 토지를 통해 이미 잘 알고 있다. 토지시장이 교과서와 같은 완전경쟁 상태라면 토지 불로소득이 없고 따라서 토지 투기도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부동산 투기라는 고질병을 지긋지긋하게 앓아왔다.

그런데도 시장자유주의자들은 가정에 믿음을 더해서, 토지든 환경이든 사유화해서 시장에 맡기라는 처방을 확신에 차서 내놓는다. 현실에서는 엄청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사실을 외면한다.

토지 투기보다 더 큰 비극 초래

배출권은 토지처럼 불로소득을 낳고 투기의 대상이 된다. (투기라는 말이 싫으면 투자라고 해도 좋다.) 투자기관에서 미래의 재테크 유망종목으로 배출권에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배출권이 투기 대상으로 전락할 때 생기는 문제도 토지의 경우와 흡사하다. 세 가지만 들어보자.

첫째로 불로소득으로 분배정의가 무너진다. 너무나 당연하여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특히 기존의 배출량을 기준으로 해서 무상으로 배출권을 배정하는 소위 grandfathering(옛 방식 존중하기)이 대세인 것으로 보이는데, 이렇게 되면 분배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기존 오염자가 자신의 잘못에 대해 처벌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보상을 받기 때문이다.

둘째로 배출을 위해서가 아니라 불로소득을 얻기 위해 배출권을 소유하는 사람이 많아진다. 이런 투기수요는 가수요이므로 권리가 유휴화하고 정작 배출이 필요한 사람이 권리를 구할 수 없게 된다. 투기 때문에 알짜 토지가 빈 땅으로 방치되는 것과 같다. 소위 ‘알박기’와 같은 폐단도 생길 것이다.

셋째로 버블의 형성과 붕괴를 통해 경제 전반의 파탄을 초래할 수 있다. 부동산 투기가 1990년대 초의 일본, 2007년 이후의 미국에서 버블 붕괴를 일으킨 것과 같다. 경제성장의 압력이 거세질수록 환경의 가치는 급상승할 것이므로 더 엄청난 비극이 발생할 것이다.

대안은 탄소세, 그러나 기득권층이 저항

가격을 매개로 자원을 배분한다는 시장 원리를 존중하면서도 부작용을 막는 방법이 있다. 배출권거래제 대신 탄소세를 (나아가서는 환경세를) 도입하면 된다. 오염 피해액 또는 환경 회복 비용은 오염의 진정한 가격이므로 이 금액을 세금으로 징수한다면 완전경쟁 시장에서 발생할 이점을 얻게 된다. 불로소득이 없으므로 분배 문제도 안 생기고 권리가 유휴화되지도 않고 버블 비극도 없다. 탄소세는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등 일부 유럽 국가에서 실시되고 있다.

그러나 탄소세는 원칙적으로 grandfathering이 없어 기존의 다량 오염자가 기피한다. 불로소득을 기대할 수 없으므로 투자자의 관심을 끌 수도 없다. 큰 손들이 좋아하지 않는 제도라는 말이다. 그래서 우여곡절을 겪고 있는 프랑스 사례에서도 보듯이 탄소세에 대해서는 저항은 많고 지원은 적다. 우리나라 종합부동산세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좋은 약은 입에 쓰다더니.....

너무나 쉬운 질문을 다시 해 보자. 환경은 누구의 것인가? 오염자의 것인가, 투자자의 것인가, 아니면 국민 (넓게는 인류) 모두의 것인가?






[김윤상 칼럼 27]
김윤상 /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yskim@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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