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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를 달려 온 사내, 임광호 선배를 그리며
<곡주사> 신창일 / "젊은날의 변곡점 곡주사 단상 長毋相忘(장무상망)이라..."
2010년 03월 26일 (금) 00:02:48 평화뉴스 pnnews@pn.or.kr


역사는 과거의 부끄럽든 아픈 진실이든 들추어야 겠지만, 보통사람에게는 즐겁고 달콤한 기억이 아닌 바에는 과거를 통상 묻혀 두고 끄집어내기를 주저한다.

곡주사와 이모 그리고 명희 씨를 언급하는 것은 칠흑 같은 어둠에서 촛불이 되고자 했던 70년대 박정희 유신과 긴급조치와의 저항야사를, 전두환 정권의 광주시민학살이후 패배와 절망을 딛고 조심스럽게 사회변혁운동의 전망을 모색하기 시작하는 80년 초 조직야사를, 대구에서 10월항쟁 이후 처음으로 대규모 학생과 시민,노동자가 결합하여 직선제 개헌투쟁을 쟁취하였던 80년대 후반 투쟁야사를 되새김질 하게 한다.

30년 풍상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곡주사는 미완의 역사적 과제를 품은 이들에게 현재 진행형이며, 산자와 죽은 자 모두에게 가슴 아픈 회한을 자아내는 곳이다.

그렇구나. 나에게 곡주사는 살아있는 이들보다 죽어간 이들의 한 맺힌 혼령이 머물고 있는 곳이다. 어쩌다 ‘바람없는 밤 꽃그늘에 달이오면’ 옛 생각에 홀려 곡주사에 들린다. 맨 정신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옛 상흔으로 마음이 무겁고, 곡주사 이모와 김00..유00등의 간난한 근황을 주고받고 하다보면 이모도 눈물을 훔치고, 나 역시 먹먹한 아픔으로 막걸리 한 사발을 거듭 마시게 된다.

허나 불의의 사고로 혹은 병환으로 돌아가신 선배들과 아직도 정신이 지하 대공분실에 갇혀있는 후배와, 다른 한편으로 사회적 성격소수자로서 생활낭인이 되어버린 이들이 곡주사 언저리를 여전히 서성거리고 있는 곳이기도 하겠지만, 곡주사 이모의 서운한 속내처럼 자리 잡고 잘나가는 그래서 던적스러운 이들에게는 곡주사는 외면하고픈 기억이기도 할게다.

곡주사 2대 주지 임광호 선배...

시간을 거슬러 곡주사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제일 먼저 곡주사 2대주지로서 뒷방의 터줏대감으로,  하루 세끼국밥과 막걸리를 무전취식하면서도 이모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봉발머리 문학청년 임광호선배가 제일 먼저 환한 얼굴로 반긴다.

1957년 원주에서 태어나 원주 진광중,고교를 졸업한 임광호선배는 1976년 경북대 사범대 영어교육과에 입학,복현문우회 활동을 하였고, 박정희,유신독재에 대한 송곳 같은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두 번의 긴급조치로 구속,제적된 선배이다.

 70년대 후반 독재 터널의 끝이 안보이는 답답한 현실에서 낙관적인 역사적 전망을 심어주던 선배이며, 언젠가는 독재를 타도하고 민중적 민주주의를 쟁취할 수 있다는 단호한 확신으로 ‘우리 승리하리라’를 부르던 임광호 선배..

당시 중앙초등학교 지금의 2.28공원에서 ‘이판사판’이란 포장마차를 열고 먹먹한 울분을 선후배들과 함께 나누던 선배는  1982년 원주로 귀향하였다. 여담이지만  임광호선배가 남긴포장마차 ‘이판사판’을 얼떨결에 나와 송00가 함께  물려받게 되었다. 제일극장 건너편 농협이 있는 요정골목으로 이전하였는데 목이 좋은 만큼 수입이 짭짤하였지만, 늘 해거름이 되면 술과 벗이 그리운 선후배들과 난장 굴림 하게 되고, 그래서인지 다음날 부식거리 살 돈은 늘 궁했던 기억이 아련하다.

 1982년 추운 겨울, ‘이판사판’을 너나들이 했던 녹같은 그리움의 얼굴들은 지금 얼어있거나, 살아도 살아있지 못하고 있다.

이후 곡주사의 하늘같은 선배들에 비해 얼치기 어린 막내였던 내가 일찌감치  비상계엄법으로 형을 살고  출소하였던 덕분에  임광호 선배의 뒤를 이어 곡주사 3대주지가 되었고 나 또한 얼마 안되어 1983년 대구 미문화원 사건 관련하여 감옥으로 가면서 곡주사와의 젊은 인연은 또 다른 계기를 맞게 된다.

   
▲ 2005년 임광호 2주기 추모제 - 미안한 마음이 나 뿐만은 아니었으니... / 사진.신창일

한편 ‘이판사판’ 포장마차를 뒤로 하고, 귀향한 임광호 선배는 원주의 독특한 사상적 풍토 - 지학순,장일순,김지하의 사상적 영향을 받았고, 원주에서 유망한 농민운동가 및 천주교사회개발분과위원으로서 활동하면서 1987년 6월항쟁시 원주가두집회를 주도하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유기농 농사와 한살림운동, 그리고 민주노동당 활동등 임광호 선배는 왕성하게 활동하였다. 그러나  2004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형수와 외동딸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나셨고, 임광호의 장례식에 채 못간 이들이 곡주사의 외상 빚처럼 짓누르는 가슴을 달래려 곡주사 사발통문을 돌렸다. 많은 이들이 2주기 추모제를 함께 해주었으며, 기대이상으로  십시일반 모아진  돈으로 외동딸에게 장학금을 건네주었다.
곡주사 이모가 눈물을 그렁그렁 맺히며 얼마나 기뻐하셨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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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시 흥업면 매지리 박경리토지문화관근처 선배가 좋아하던 진달래 산천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누워있는 임광호 선배께 배창환시인이 대독한 정대호선배의 '광야를 달려온 거친 사내' 시를 바친다.

광야를 달려 온 거친 사내

슬프다 광호 선배가 돌아가셨다니
사월은 꽃 피고 새 잎 돋는 계절로 알았더니
푸른 하늘에 흰 눈 덮어 푸른 생명을 앗아가기도 하구나 !
임광호 선배의 영전에

정대호

하얀 고무신, 빛바랜 검은 옷을 걸치고
검은 머리 긴 갈기를 날리며
그대는 거침없이 달렸다.
역사의 능선을

바위 언덕은 바위가 많아 넘어야 했고
돌길은 돌이 많아 달려야 했다.
우리들이 대학을 다녔던 유신말기
와이에이치 김경숙님의 죽음 앞에
모두가 넋을 잃고 탄식만 하던 때
그대는 유인물을 들고 경북대학 시계탑 앞, 도서관 앞으로
광야를 달리는 준마같이 뛰었다.
따라오는 사복 경찰의 손길을 뿌리치고
민주와 자유, 그리고 독재타도를 외쳤다.
얼마나 많은 학우동지들이 주먹 쥐고 안간힘으로
눈으로 마음으로 그대의 등 뒤를 따랐으랴
일청담을 둘러싸고 침묵으로 서 있는 동지들은
버드나무 가지마다 모두 흘러내리는 눈물이었다.

그대와 함께했던 긴 밤 긴 이야기는
역사의 질곡을 건너는 사람들의 의식을 일깨우는 등불이었다.
곡주사 할매집 뒷방에서
중앙초등학교 담 옆 이판사판 포장마차에서
학교 정문 앞 청도식당에서
음지 골목의 양지 식당에서, 오삼식당에서, 선산식당에서
책 읽고 술 마시며 울분을 달래었던 역사의 시대
때로는 “돌베개”로 때로는 ‘오적’으로 때로는 “들불”로
신동엽, 김수영, 고은, 이성부 그 숱한 이야기에
그대는 언제나 검은 얼굴 빛나는 눈빛으로 살아있었다.
예수도 석가도 마호멧도 우리 역사의 현실을 떠나서는
의미가 없다고 하였다.

또한 그대는 고독한 침묵이었다.
조용히 앉아 먼 산을 바라는데
눈에는 우수의 고독이 듣고 있었다.

흘러가는 정세를 보며
뛰어드는 후배들에게 한 번쯤은 생각할 여유를 가져라 했다.
역사의 변혁기에
자유를 얻기 위해 소수의 피 흘림이 필요하지만
온 몸을 역사에 던지려면
온 몸을 던져 네 몸의 피가 흘러 다른 사람 자유의 밑거름이 되려면
네 몸은 영원한 거름이 될 수 있어야······.
이 고독한 결정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대는 미친 시대를 달려간 진정한 사내
거친 들판에서 울부짖은 고독한 범
역사의 가시밭길을 의연히 걸어간 멋쟁이
깜깜한 한 밤중에 초롱초롱 빛나는 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신창일 / 전 대구참여연대 집행위원장


<박창원의 인(人)> 첫 순서로 <곡주사 이모>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대구 염매시장 대폿집 곡주사. 아픈 시절 그 이모와 애뜻한 사연 가지신 분들,
그리고 곡주사 외상장부에 이름 올리신 분들, 곡주사의 추억 간직한 분들의 사연을 기다립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 평화뉴스 / 보내실 곳 : pnnews@pn.or.kr / 053-421-6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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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규
(58.XXX.XXX.3)
2010-03-26 18:32:26
그리움...
그리움의 마음이 글속에서도 짠 하게 보입니다.

늘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 박인규 올림-
전체기사의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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