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든 여자들의 개미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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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림 / "일개 개미의 몸과 마음으로 엄청 앓았던 기억..."

                      
 결과를 크고 작음으로 일부러 나눠본다면, 결과는 무엇이며 크고 작음은 다시 무엇인가 라는 생각입니다. 그러다가 문득 한 얼굴이 떠올랐고 어떤 다정함에 젖었고 혹시 이런 기분이 병조차 다정한 기분인지 야리꼬리합니다.

 그러니까 그녀의 집, 뒷 언덕을 서성일 때 순간순간 카메라 후레쉬 터지듯 환해지는 기억, 그 기억의 뜰을 연애자처럼 제 발로 제 설움에 겨워 찾아 올라가면 거기 땅 속 깊디 깊게 뿌리박은 나무처럼 살던, 그리고 그 나무에게 瑞香(서향)을 풍기며 찾아오는 저녁해처럼 어떤 기억이 심장 속으로 쓰러집니다.

 그리하여 지금 이 순간 한 얼굴이 계속 떠오르고 눈빛에까지 스며드는 물기를 느끼며 슬쩍 닦는 것, 이것이 어떤 기분인지 밝히고 싶어졌습니다.

 그렇군요. 그녀는 은맥의 의식을 가진 두 딸의 젊은 어머니입니다. 저와는 희림개미와 피그일개미라는 아이디로 개미활동을 활발히(온 오프라인) 주고 받았죠. 지금은 고담의 별칭을 가진 이 도시 때문인지 다른 곳으로 살러 간 상태입니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와 합심했던 일들과 이견(異見)들, 조선의 운명에 대하여 민족시인과 남자의 바람에 대해 아버지들의 마음과 사랑의 믿을 수 없는 결과에 대해 교환했던 뜨거운 생각과 밤들이 한겹 한겹 떠오르자 종종 애증이 겹쳐 충돌했던 순간들이 툭툭 불거집니다. 그리하여 미안하지만 <‘병’든 여자>라는 제목의 졸시조차 쓰게 하구요 .       

걸리고 업은 두 딸과 오봉산자락 매일 오르내리는 저 발‘병’ 든 여자
생활협동조합에서 산 고구마 삶고 미역국 끓여주는 저 절대 음식‘병’ 든 여자
내 아버지 죽었을 때 밤새 울음 들어주며 머리 빗어주던 저 아버지‘병’ 든 여자
사랑 타령 시절 타령 들어주며 못때게 굴던 저 철든 여자
눈 크림 챙겨주고 권정생 다시 읽자며 몰래 책 넣어놓던 뭘 아는 여자
둘째딸 사슴 눈 들여다보며 못된 성질 죽이는 저 남편 착한 여자
‘병’이란 ‘병’ 다 든 ‘병’든 세상 고치고 따지는 ‘병’, 든 여자
지금 어디예요, 전화하며 달동네 고불고불 오봉산 자락을 내려오는 저 다리 긴 예쁜 여자
“오늘자 신문 봤어요” 하며 두 딸 재워놓고 참언론 강의 들으러 가는 저 싸움닭 여자
“그 남자 어때요 떨거지는 정말 아니죠.” 빠른 시간 내에 알아내고만 저 눈치 빠른 여자
찾아 찾아 다른 세상 오봉산 꼭대기에 둥지 튼 저 꿈길 같은 여자


 그랬지요 그녀는 ‘병’ 든 여자였기에 그녀에 대한 제 기억도 이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어지는 ‘병’이 되었습니다. 개미와 개미가 치열하면서 나눴던 것이 잘 고쳐지지 않던 도시의 큰 고질‘병’에 관한 처방전들이었으며, 그 ‘병’, 그렇게 앓으며 얻었던 결과는 과연 무엇이었나 조용히 떠올리면, 다만 무엇보다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묻고 대답하면서 얻는 생활의 발견이 때로 소중한 기쁨을 가져다 준다는 사실로만 그 ‘병’의 치유에 기여할 뿐이었습니다.

 누군가와 서로의 곁에서 치열한 도모를 벌였을 때 그 결과에 대해 초월할 수는 없겠지요.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여러 애증의 충돌과 절망감에도 불구하고 제가 그녀에게, 그녀가 저에게 던지던 질문이 후회스럽고 안타깝지만은 않는 것은 비록 개미효과이겠지만, 그 ‘병’을 일개 개미의 몸과 개미마음으로 엄청 앓았다는 사실인거죠.





[주말에세이]
고희림 / 시인. 99년 작가세계로 등단. 03년 시집 <평화의 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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