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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적(五賊)의 굿판을 걷어치우라'
'농사꾼 철학자' 천규석③ / '세상 바꾸는 일을 고민하다'
2010년 11월 03일 (수) 10:13:54 평화뉴스 pnnews@pn.or.kr

"소농이나 분산된 농업이 살길이라 주장한다고 '생태파시스트'라니 말이 됩니까? 한살림 같은 가게가 파시스트와 어울리기나 한건지요. 농업의 독점은 생명의 독점과 마찬가지라 이를 막자는 것이고요. 녹색운동, 생명운동 하는 친구들까지 싸잡아 욕을 했더군요. 과거의 동지들을 ‘잔치판의 화적떼가 된 양’ 쏘아 붙이다니…."

그는 시인 김지하의 이야기를 하면서 잠시 흥분했지만 이내 착잡한 표정으로 돌아왔습니다. 예전과는 달리 김 시인이 민족주의를 넘어서 국수주의 냄새를 풍긴다는 우려를 했습니다. 책을 많이 읽고 지식을 넓힌 것은 인정하지만 영향력을 감안할 때 말하고 글을 쓰는데 삭힐 것은 삭히고 좀 더 신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졸업하지 말고 학교에 있으면서 후배들을 지도하자고 합디다. 러시아의 작가 막심 고리끼도 7년 넘게 대학에 다녔다며 저를 꼬드겼지요. 그 친구 별의별걸 다 안다 싶었지요.”

그는 김 시인과 서울대 미학과를 같이 다녔습니다. 그는 김 시인보다 2년 늦은 61년에 대학에 들어가 2년 일찍 졸업했습니다. 그러니 1966년에 졸업한 김 시인은 막심 고리끼 처럼 7년 넘게 학교를 다닌 셈입니다. 그는 서울 생활 6년 동안 입주과외를 통해 등록금과 생활비를 마련했습니다. 이 때문에 지칠 대로 지친데다 농촌에 가기로 한 그는 김 시인의 이른바 ‘졸업연기’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 천규석(72)님

그는 애초 선생님과 시인이 되기 위해 서라벌 예술대에 입학했습니다. 입학해 보니 명성과 달리 문인이나 교수들의 강의내용이 시원찮다고 느꼈습니다. 더구나 교수들 중에는 자유당의 실세였던 이기붕에게 빌붙어 칭송하는 글이나 시를 써대는 바람에 ‘인간만송족인(人間晩松族)’으로 불렸던 교수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만송’(晩松)은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종신집권을 위해 사사오입 가결에 앞장섰던 이기붕의 호입니다.

그런 터에 4․19 혁명이 일어나 세상이 달라집니다. 그 또한 인생의 새로운 전환을 모색합니다. 그는 예술철학을 전공해 평론가로, 교수로 활약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서라벌예대를 졸업한 해에 서울대 미학과에 입학하게 됩니다. 여기에는 서라벌예대 시절 몇몇 친구들이 일찌감치 학교를 중퇴해버리고 서울대에 진학한 것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하지만 그는 서울대에 입학하자마자 민주주의의 싹을 짓밟는 세력의 침입을 보게 됩니다. 군인들이 5․16 정변을 일으킨 것입니다. 득세한 군인들이 군대식으로 모든 것을 처리해나갑니다. 4․19 혁명 이후 어렵사리 싹을 틔운 민주주의가 압살되는 암담함을 느낍니다. 

군사 쿠데타 세력의 행동방식은 자유당식 독재와는 달랐습니다. 1964년 한일 국교정상화 회담에 반대해 대학생들이 6.3 민주화운동을 전개하자 군인들은 위수령을 발동해 탄압한데서도 이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는 이 무렵 친구들과 함께 ‘세상을 바꾸는 일’을 더 고민하게 됩니다. 선생님과 시인, 평론가와 교수 같은 신변 근처에서 맴돌던 그의 꿈은 ‘인간 속으로’ 범위를 확대해나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무렵 그는 김 시인과도 자주 어울렸습니다. 또 김정남을 비롯해 김도현, 현승일, 김중태 등과도 이 때 만나 연을 맺어 왔습니다. 그는 김 시인이 선봉에 나서 일을 벌이지는 않았지만 이따금 대학 신문 같은 곳에 글을 발표해 한건씩 터뜨렸다고 기억합니다. 권력층의 부패와 타락상을 질타한 담시 오적(五賊)은 박정희 정권의 서슬이 시퍼렇던 1970년에 나왔지만 ‘필화사건’은 이때부터 싹을 틔운 셈입니다.

감옥에 간 김 시인이 폐결핵 치료를 받기위해 마산에 있는 요양소에 머문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 김 시인이 담을 넘어 농사를 짓는 영산에까지 그를 찾아와 밤새 술을 마셨습니다. 이후에도 연락을 해오면 가끔씩 만났지만, 지금은 대구에 와도 기별이 없습니다. 아무러면 어떠하나요. 끝까지 존경받는 시인이자 사상가로 남았으면 하는 게 그의 바람입니다.

권력층을 다섯 도둑(오적)에 비유해 구속까지 됐던 40년 전. 조선일보에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우라’며 글을 써 논란을 빚었던 19년 전. 2010년, 그가 시인친구의 글을 받아 시를 씁니다.

'오적의 굿판을 걷어치우라'

   


[박창원의 인(人) 32]
일곱 번째 연재 '농사꾼 철학자' 천규석③
글.사진 / 평화뉴스 박창원 객원기자


'곡주사 이모'와 '하회마을 뱃사공', 노동운동가 '장명숙 세실리아', '장승쟁이 김종흥',
'고서 일생 박창호', '사주쟁이 기자 우호성'에 이은 <박창원의 인(人)> 일곱 번째 연재입니다.
친환경농산물과 그 가공품을 협동조합 방식으로 직거래하는 대구 한살림 천규석(72)님의 이야기 입니다.
도농공동체를 꿈꾸는 농사꾼 천규석님과 사연 있으신 독자들의 글도 함께 싣고자 합니다.
- 사연 보내실 곳 : 평화뉴스 pnnews@pn.or.kr / 053-292-6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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