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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이 몰락하면, 노동자는 망한다
'농사꾼 철학자' 천규석 ① / "대구 한살림, 구원투수로 나서다"
2010년 10월 21일 (목) 09:53:53 평화뉴스 pnnews@pn.or.kr

"자급농민이 망해서 노예로 전락한 것이 노동자 아니냐? 당신들 아버지나 할아버지 중에 농사 지어보지 않은 사람 있으면 손 들어봐라. 자본가들이 자본을 통해 용이하게 수탈하는 방법으로 택한 것이 농민을 도시 노동자로 내몬 것이다. 그런 생각 안 해 봤느냐?"

‘대구 한살림’이 막 문을 연 지난 1990년 초. 경북대 총학생회에서 학생 10여명이 들이닥쳤습니다. 유기농 농산물을 비싸게 팔아 도시 노동자를 수탈한다며 항의하러 온 것입니다. 학생들은 일반농산물에 비해 비싼 유기농을 취급하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 했습니다. 말하자면 농민과 노동자를 살리겠다며 중산층 이상에나 어울릴 유기농 농산물을 파는 것은 자본가와 다를 바 없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으레 그렇듯 그는 거침없이 학생들을 쏘아붙였습니다. 그 또한 유기농 친환경 농산물을 싸게 공급받아 마진을 많이 남긴다면 당연히 수탈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으니 불같이 열을 낸 것이지요. 유기농이 일반 농산물보다 비싼 것은 맞습니다. 그렇다고 그의 ‘한살림’이 이익을 많이 남기는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보단 농민과 도시민의 직거래를 통해 공동의 이익에 충실하려 사업을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농민이 몰락하면 그 다음 차례는 노동자의 몰락이라고 봅니다. 노동자의 뿌리는 농촌인데 농민이 몰락하면 노동자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더 슬픈 것은 돌아갈 자리조차 없어진다는 것이지요.

학생들의 방문은 한 번 더 이어졌습니다. 며칠 뒤 영남대 학생들이, 그의 표현대로라면 떼거리로 찾아 왔습니다. 그는 꼭 같은 질문을 받고, 꼭 같은 대답을 했습니다. 그리고 냅다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렇게 이익이 많이 남아 좋은 것 같으면 너희들이 해라.” 그는 바로 농사꾼 철학자이자 농민 운동가인 천규석 님 입니다.

   
▲ 천규석(72)님

그는 어떻게 대구의 한살림을 맡게 된 것일까요? 그는 젊은 시절에 농사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흉년이든, 풍년이든 상관없이 당하기만 하는 농민들의 고통을 쭉 체험 합니다. 그는 농민들 스스로의 힘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는 길이 무엇인지를 찾아 나섭니다.

농민도 살고 소비자도 사는 길을 고민하며 농민운동을 하던 80년대 중반. 그는 지난 8월 세상을 떠난 박재일 님을 만납니다. 여기서 생명농업에 생명밥상을 연결해 생명세상을 만드는 일에 뜻을 모읍니다. 그것은 농촌과 소비자의 직거래, ‘도농공동체’로 그 모습이 드러납니다. 거기에는 농산물 차별화가 뒤따랐습니다.

1986년 농업에 기반을 둔 농촌과 도시의 생명문화를 주창하며 한살림이 소비자협동조합으로 탄생합니다. 한살림은 박재일 님의 제안에 장일순 님이 이름을 붙인 것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60년대 후반부터 강원도 원주에서 주민자치운동을 펼치면서 그 싹을 틔워 오던 터였습니다.

그는 처음에 생산자인 농민으로 ‘한살림’에 참여합니다. 한살림은 1985년 원주에서 시작해 86년 마산을 거쳐 87년 서울에서 문을 엽니다. 이즈음 대구 한살림도 출발을 합니다. 하지만 얼마못가 해체위기에 몰리자 그는 대구 한살림의 구원투수로 나서게 됩니다. 그 때가 1990년으로 지금까지 대표이사를 맡게 됩니다. 당시 외지인이 한살림을 맡는데 대한 이른바 ‘TK텃세’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대구 한살림은 울산과 더불어 가장 어려운 지역으로 꼽힙니다. 그는 그 이유를 두 가지로 꼽습니다. 하나는 자신이 선천적으로 장사를 못한다는 점이고, 둘째는 애초부터 대구 한살림이 독점적인 시장을 원치 않은 결과라는 것입니다. ‘푸른평화’ 등 다른 단체에 생협운동의 노하우를 거리낌 없이 전달하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그런 기운 때문인지 대구에서는 친환경이나 로컬 푸드 같은 직거래 장터가 어느 지역보다 많다고 합니다. 직거래 장터 간 연대의 아쉬움은 있더라도 그의 바람대로 다행히 독점구조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의 농삿일 독점은 쉽게 풀릴 것 같지가 않습니다. 일흔이 넘었지만 여전히 가을걷이로 눈코뜰새 없이 바쁘니 말입니다.

   


[박창원의 인(人) 30]
일곱 번째 연재 '농사꾼 철학자' 천규석 ①
글.사진 / 평화뉴스 박창원 객원기자


'곡주사 이모'와 '하회마을 뱃사공', 노동운동가 '장명숙 세실리아', '장승쟁이 김종흥',
'고서 일생 박창호', '사주쟁이 기자 우호성'에 이은 <박창원의 인(人)> 일곱 번째 연재입니다.
친환경농산물과 그 가공품을 협동조합 방식으로 직거래하는 대구 한살림 천규석(72)님의 이야기 입니다.
도농공동체를 꿈꾸는 농사꾼 천규석님과 사연 있으신 독자들의 글도 함께 싣고자 합니다.
- 사연 보내실 곳 : 평화뉴스 pnnews@pn.or.kr / 053-292-6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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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220.XXX.XXX.223)
2010-10-21 18:32:01
천만의 말씀!
농민이 망하면 서민은 더 살기 좋아진다 휴식땅이 많은데 땅값 떨어지면 더 살기 좋아지는건 당근이지!!!
전체기사의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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