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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악취 겨울 연탄재, 묵묵히 거리에서...
<새벽을 여는 사람들 ③> 환경미화원 / "온갖 쓰레기에 먼지...말끔해진 거리 보면 뿌듯"
2011년 01월 20일 (목) 17:55:31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pnnews@pn.or.kr

"마술 같지요? 가끔 지나가는 시민들이 그러더군요. 지저분했던 거리가 아침만 되면 마술처럼 깨끗해져있다고.."

중구청 생활쓰레기수거차량 운전기사 노송열(58)씨는 이같이 말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환경미화원들과 쓰레기수거차량이 지나가자 마치 언제 그랬냐는 듯 수북이 쌓여있던 쓰레기들은 사라지고, 깨끗해진 거리만 남았다. 누군가 밤새 마술을 부린 듯 했다.

19일 새벽, 어둠속에서 찬바람과 맞서며 묵묵히 거리를 청소하는 환경미화원들을 만났다. 이날 한파는 수그러들었지만 날씨는 여전히 추웠다. 네 겹이나 껴입었지만 옷 사이로 추위가 스며들었다. 환경미화원들도 두툼한 점퍼와 빵모자, 토시와 장갑으로 중무장한 모습이었다.

   
▲ 1월 19일 새벽 2시 서구 중리동 차고지에서 노송열(오른쪽) 기사와 환경미화원 정동환씨가 담당구역으로 출발하기 위해 쓰레기수거차량에 오르고 있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서구 중리동에 있는 중구청 쓰레기차량 차고지에 도착한 새벽 1시40분. 노송열 기사와 환경미화원 정동환(53)씨가 먼저 도착해 있었다. 사무실에서 따뜻한 커피 한 잔으로 속을 데운 이들은 곧바로 수거차량에 탑승해 담당구역으로 향했다.

쓰레기에 먼지..."마스크 없으면 숨 쉬기도 힘들어"

대구역 맞은편에 도착한 오전 2시20분쯤, 먼저 도착한 환경미화원 홍해용(57)씨가 곳곳에 흩어져있던 쓰레기를 군데군데 모아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홍씨가 모아놓은 쓰레기더미 옆에는 먹다 남은 귤껍질과 빈 막걸리 병, 깨진 유리조각이 나뒹굴고 있었다. 정동환(53)씨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됐다.

   
▲ 쓰레기가 쌓여있는 동성로의 모습(좌)과 환경미화원들이 지나간 뒤 깨끗해진 거리의 모습(우)

정씨가 쓰레기봉투와 연탄을 쓰레기수거차량에 실어 나르자 홍해용(57)씨가 노란색 플라스틱상자에 흩어진 쓰레기조각들을 재빠르게 쓸어 담는다. 지저분했던 인도 주변이 금세 말끔해졌다. 쓰레기를 다 치운 두 사람은 얼른 수거차량 뒤편에 올라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겨울인 탓인지 타고남은 연탄재가 생각보다 많았다. 도심 한가운데 번화가에서 이 많은 연탄을 피운다는 게 의외였다. 노송열 기사는 "기름 값이 많이 올라 연탄을 피우는 집이 많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높은 기름 값에 허리띠를 졸라맨 서민들의 삶을 수북이 쌓인 연탄재들이 대변해 주고 있었다.

   
▲ 대구역 맞은편 인도에 쌓인 쓰레기더미(좌)와 금새 쓰레기더미를 치우는 환경미화원 정동환씨, 홍해용씨의 모습(우)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그러나 환경미화원의 입장에서 연탄재는 달갑지 않은 손님이다. 수거차량 뒤편 압착기에 연탄이 잘게 부서져 공중에 흩날리는 탓에 마스크를 쓰지 않고서는 숨 쉬기가 힘들었다. 홍해용씨와 정동환씨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연탄재를 온몸으로 맞으며 쓰레기 더미를 쉴 새 없이 옮겨 담았다.

생활쓰레기수거는 보통 운전기사 한 명과 환경미화원 두 명이 한 팀을 이루어 작업한다. 노송열 기사의 팀은 교동시장과 번개시장, 대구시청 인근 주택가, 동성로와 중앙로를 담당한다. 두 시간 남짓 담당구역을 한 바퀴 돌고난 뒤 편의점에 들러 따뜻한 커피 한잔과 함께 잠시 몸을 녹였다. 홍해용씨는 "더워서 실내에 못 있겠다"며 바깥에 나가 커피를 마셨다. 홍씨의 목에 땀 한 두 방울이 흐르고 있었다. 추운 겨울 새벽에 땀이 날 만큼 부지런히 움직인 까닭이다.

새벽 1시 30분 출근..."힘들어 도망친 사람도 많았죠"

20년 넘게 환경미화원으로 일한 이들은 "근무여건이 많이 좋아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힘들다"고 말했다. 중구청에는 무기계약직 환경미화원 111명과 수거차량을 운전하는 기능직공무원 8명이 근무한다. 환경미화원들은 무기계약직이지만 정년이 보장되는데다 호봉도 인정돼 다른 계약직근로자들에 비해 보수가 좋고 안정적인 편이다. 그러나 매일 밤낮이 바뀐 데다 각종 위험요소들이 도사리고 있어 여전히 일이 쉽지 않다. 홍해용씨는 "우리같이 덜 배우고 나이든 사람들이나 이런 일 할 수 있지 젊은 사람들은 못 한다"며 손사래를 쳤다.

   
▲ 수거차량 뒤편 압착기에 쓰레기를 싣고 있는 환경미화원들. 연탄재가 많이 날려 마스크를 꼭 쓰고 일해야 한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보통 새벽 1시30분쯤 출근해 7시까지 청소하는 환경미화원들은 다른 업무까지 모두 끝낸 뒤 9시30분쯤 퇴근한다. 대부분 오전 10시쯤 집에 도착해 가족과 함께할 시간도 없는데다, 친구들과 시간이 맞지 않아 마음 편히 술잔을 기울일 수도 없다. 정동환씨는 "집에 있어도 가족들 대부분 각자 일하러 나가 함께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계절마다 겪는 어려움도 달랐다. 노송열 기사는 "겨울에는 귀가 시릴 정도로 춥고, 여름에는 악취 때문에 힘들다"며 "한 여름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갈 때면 지나는 사람들이 코를 막고 쳐다보는 일이 종종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가끔 집에 찾아온 손님들이 쓰레기냄새가 난다고해 웬만하면 사람들을 집에 데려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 노송열(58) 기사
노송열 기사는 "그래도 예전에 비해 근무조건이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정동환씨도 "예전 같은 환경에서 일하라고 하면 아무도 하지 않을 것"이라며 "당시 함께 일했던 동료들 중에는 도망친 사람도 많았다"고 말했다.

노 기사는 "처음 일을 시작했던 88년에는 종량제 시행 전이었고 쓰레기 분리수거의 개념도 없었다"며 "쓰레기를 던지다 보면 음식물이 쏟아져 온몸에 뒤집어 쓸 때도 많았다"고 말했다.



게다가 "지금처럼 '압착차'가 아닌 일반 트럭이었다"며 "사람 키보다 높은 적재함에 쓰레기를 던지느라 무척 힘들었다"고 말했다. 노송열 기사도 처음 일을 시작했을 당시 환경미화원으로 근무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환경미화원..."깨끗해진 거리 보면 뿌듯"

   
▲ 쓰레기를 다 싣고난 뒤 얼른 수거차량에 오르는 환경미화원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쉽지 않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저마다 환경미화원이 된 사연이 있었다. 노송열 기사는 젊은 시절 소위 잘나가던 섬유회사에 근무했다. 그러나 결혼하고 자식을 낳을 무렵 공정 대부분이 자동화되면서 졸지에 실업자가 됐다. "처자식을 보며 무슨 일이라도 해야겠단 생각에 이 일을 시작했지요. 처음 몇 달은 '내가 이런 일까지 해야 되나'하며 금방이라도 때려치우고 싶었는데, '오늘 하루만 참자'하며 버티다보니 지금까지 오게 됐죠."

정동환씨도 "원래 공사장 일용직으로 일했다"며 "보다 안정적인 직장을 찾다보니 이 일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홍해용씨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보통 산전수전 다 겪어봤다"며 말을 아꼈다.

그러나 힘든 여건 속에서도 이들의 자부심과 가족사랑은 대단했다. 노송열 기사는 "하루 일과를 마치고 차고지로 돌아갈 때 깨끗해진 거리를 보면 뿌듯하다"며 "특히, 가을에 그 많던 낙엽을 다 치웠을 때 가장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정동환씨는 "열심히 일해 자식농사 잘 지었을 때 대부분 환경미화원들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홍해용씨도 "나 하나 고생해서 가족들이 행복하면 그걸로 족하다"고 말했다.

잠시 숨을 돌린 뒤 쓰레기를 실은 수거차량은 달성군에 위치한 쓰레기매립장으로 향했다. 매립장에는 이미 대구 전역에서 모여든 차량들이 쓰레기를 쏟아 붓고 있었다. 안내원이 지정한 장소에 쓰레기를 내려놓은 뒤 노송열 기사의 차량은 다시 담당구역으로 서둘러 떠났다. 같은 장소를 한 번 더 돌며 소각용 쓰레기를 수거해야 하기 때문이다.

   
▲ 새벽 4시반쯤 도착한 방천리 쓰레기매립장. 먼저 온 여러대의 수거차량이 쓰레기를 쏟아붇고 있는 모습(좌)과 노송열 기사의 차량이 쓰레기를 내려놓는 모습(우)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이들은 보통 같은 장소를 두 번 돌며 쓰레기를 거둔다. 처음 매립용 쓰레기를 수거한 뒤 다시 돌아와 소각 용쓰레기를 수거한다. 정동환씨는 "소각장에서 연탄을 받지 않아 처음에 연탄위주로 수거한 뒤 그 다음 종량제봉투에 담긴 쓰레기들을 수거한다"고 설명했다. 노송열 기사와 정동환씨가 매립장에 다녀오는 동안 홍해용씨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곳곳에 흩어진 쓰레기를 한 곳에 모아놓고 있었다.

5시쯤 수거차량이 동성로에 돌아온 뒤 다시 작업이 시작됐다. 이번엔 다른 환경미화원들이 쓸어 모은 쓰레기까지 싣는다. 모두 소각장으로 갈 쓰레기들이다. 1시간 반 동안 쓰레기를 모두 수거한 이들은 성서공단에 위치한 소각장에 쓰레기를 내려놓은 뒤 아침 7시30분쯤 차고지에 도착했다. 차고지로 돌아오는 동안 말끔해진 대구시내 거리의 모습이 확연히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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