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주례를 여러 번 봤지요. 서울에 있을 땐 외부에서 열린 결혼식에도 2번이나 주례를 섰습니다. 하지만 대구에서는 (앞으로도)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비구님 스님이지만 그에게 주례를 요청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대구에서는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비구니 스님이어서 주례를 마다해야 하는 대구의 분위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대구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속내를 담고 있는 듯합니다.
“출가한 비구나 비구니가 지켜야할 구족계(具足戒)만 보더라도 비구가 250계인데 반해 비구니는 500계에 이릅니다. 처음부터 양성평등과는 거리가 멀지요.”
지금의 시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불합리에 대해 이야기 하려는 것입니다. 팔경계(八敬戒)에는 ‘백 살 먹은 비구니라도 갓 출가한 비구를 보면 절을 해야 한다.’ 는 계율이 있습니다. 팔경계는 부처님의 계모이자 이모인 마하프라자파티가 여인 500명과 함께 요청한 출가를 거절하다 아난다의 간청으로 받아들이면서 지키라고 했던 계율입니다.
그러고 보면 대부분의 종교가 태생적 한계와 맞닿아 있어서인지 남성 위주인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여자 성직자(수행자)가 귀하다는 것입니다. 다른 나라의 불교, 다른 나라의 여성 수행자들이 대개 남성사제의 보조적인 위치에 가까운 봉사자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그래도 한국불교는 나은 편이라고 합니다. 남성과 여성성직자의 교단이 나란히 존재하는 종교는 불교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요즘의 수계식에는 사미가 140~150명인데 비해 사미니는 30~40명에 그친다고 합니다. 제가 출가 할 때 만하더라도 지금과는 반대로 비구니가 훨씬 많았지요."
사미나 사미니는 구족계를 받아 스님이 되기 전의 예비스님을 이릅니다. 3년 전 조계종단의 경우 1만 여명의 스님 중 비구니 스님이 5000여명으로 절반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전반적으로 수행자가 줄고 있는 현실에서 활발한 여성의 사회참여가 비구니의 수를 더 감소시키고 있다는 것이지요.
“첫 삭발을 했을 때 너무 예쁘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또 승복이 잘 어울린다는 이야기도 들었지요.”
그는 한국에서 비구니로 사는 것은 복 받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출가생활에 만족하고 있음을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그는 통도사 말사인 내원사에서 출가해 청도 운문사 강원에서 5년 넘게 공부했습니다. 지금이야 승가대학인 강원이 4년으로 통일됐지만 당시는 5~6년 정도 공부하는 것이 예사였습니다.
수행자에게 강원은 황금 같은 시기로 이른바 승려생활의 기초공사를 하는 곳입니다. 거기서 그는 도반들과 함께 보낸 시간이 너무나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도의 반려자’(도반)로 일컬어지는 그의 동기는 보통의 경우보다 훨씬 적은 13명이었습니다. 지금도 1년에 한번 씩은 동기회를 합니다. 그 중 어린나이의 출가를 뜻하는 동진출가한 2명은 환속해 아들‧딸 낳아 기르며 잘 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올 가을에도 단풍이 곱게 물들면 도반들과 함께 가끔 가는 밀양 다죽리 원동 고택을 찾아 즐거움을 나누고 싶어 합니다. 단풍을 손으로 모아 날리며 아이들과 나누는 비구니 교사의 행복을 차 한 잔으로 벗 삼아 말입니다. 그리고는 권주가 같은 권출가(勸出家)를 부릅니다. 물론 주례사에는 넣지 않고 빼는 말입니다. “출가하면 행복합니다.”
[박창원의 인(人) 42]
아홉 번째 연재 '비구니 선생님' 아용 ③
글.사진 / 평화뉴스 박창원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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