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들 고향 갈 때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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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수 없는 이주노동자...떡국에 고국 음식, '우리끼리' 외로움 달래

 

"아직 고향에 있는 부모님에게 손자 얼굴도 못 보여드렸어요. 비자가 없어 고향에 갈 수도 없고, 부모님을 모셔 올 수도 없어 안타깝습니다."

스리랑카에서 온 아산크(30)씨는 "부모님께 세 살 된 아들을 한 번도 보여드리지 못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지난 2005년 한국에 온 아산크씨는 3개월 만에 회사를 옮기면서 취업비자를 연계 받지 못해 졸지에 불법체류자 신세가 됐다. 3년 전 교회에서 중국여성과 만나 결혼한 뒤 아들을 낳았지만, 취업비자가 없어 고향에 한 번도 다녀오지 못했다. 아산크씨는 "명절은 서로 다르지만 한국 사람들이 고향에 가는 모습을 볼 때면 가끔 고향과 가족이 그리워진다"고 말했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로니(34)씨도 "이주노동자들 가운데 90%가량은 취업비자가 없는 불법체류자"라며 "고향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다"고 말했다.

설 연휴를 사흘 앞둔 30일 오후, 대구평화교회에 모인 베트남 이주노동자들. 설날 저녁 베트남 전통음식을 동료 이주노동자들에게 대접하기 위해 의논하고 있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설 연휴를 사흘 앞둔 30일 오후, 대구평화교회에 모인 베트남 이주노동자들. 설날 저녁 베트남 전통음식을 동료 이주노동자들에게 대접하기 위해 의논하고 있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설 연휴를 사흘 앞둔 30일, 달서구 진천동 대구평화교회에서 만난 이주노동자들은 저마다 고향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한 채 명절을 맞이하고 있었다.

고향에 두고 온 아들, 곧 결혼할 아내

10년 전 한국에 온 미카인(여.45.베트남)씨는 지난해 4월 회사에서 어깨를 다쳐 산재판정을 받고 10월부터 두 달 동안 베트남에 다녀왔다. 미카인씨는 "그동안 한 번도 베트남에 가보지 못했는데, 오랜만에 고향에 가니 가족들이 무척 반가워했다"며 "특히 어렸을 때 두고 온 아들이 어느새 대학생이 돼 신기했다"고 말했다.

베트남에서 온 옌(45)씨도 2년 전 프레스기계에 손가락을 다쳐 산재판정을 받아 두 달 동안 고향에 다녀왔다. 옌씨는 고향에 있는 동안 22살의 젊은 여교사를 만나 결혼을 약속한 뒤 한국에 돌아왔다. 다가오는 3월 5일 베트남에서 결혼식을 올릴 예정인 옌씨는 "다음 달 25일에 베트남에 간다"며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고 말했다. 옌씨는 "결혼한 뒤 다시 일 때문에 혼자 한국에 돌아와야 한다"며 "1년 정도 한국에서 일한 뒤 다시 베트남으로 돌아가 아내와 함께 살고 싶다"고 말했다.

마땅히 갈 곳 없는 설 명절

그러나 이들에게는 명절에 마땅히 갈 곳이 없다.
옌씨는 "이주노동자들은 명절에 딱히 갈 곳이 없다"며 "대부분 놀이동산을 찾거나, 이주민지원단체에서 준비한 행사에 참석하는 게 전부"라고 말했다. 아산크씨도 "보통 동료들 집에 함께 모여 술을 마시거나, 가끔 영화를 보러 간다"고 말했다.

대구이주민선교센터 박순종 목사는 "이주노동자들이 명절 연휴 때 주로 배경이 예뻐 사진 찍기 좋은 놀이동산에 많이 간다"고 설명했다. 또 "가끔 영화관을 찾지만 한국어와 한글을 잘 모르는 이주노동자들에게는 영화 관람도 힘든 실정"이라며 "그나마 중국영화가 개봉했을 때 중국인들이 영화관에 많이 간다"고 말했다.

지난해 열린 '이주민.이주노동자를 위한 설날 위로잔치(2010.02.13)'에서 대구이주민선교센터 고경수 목사가 이주민들에게 세뱃돈을 주고 있다 / 사진제공. 대구이주민선교센터
지난해 열린 '이주민.이주노동자를 위한 설날 위로잔치(2010.02.13)'에서 대구이주민선교센터 고경수 목사가 이주민들에게 세뱃돈을 주고 있다 / 사진제공. 대구이주민선교센터

떡국에 고국 음식 나누며

이처럼 갈 곳 없는 이주노동자들도 나름대로 설 명절을 준비하고 있었다.
30일 오후 대구평화교회를 찾은 이주노동자들은 설 명절 음식을 준비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중국과 베트남, 네팔과 스리랑카, 방글라데시를 비롯한 각국 이주노동자들은 삼삼오오 둘러앉아 자국 전통음식 준비를 위해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미카인씨는 "설날 저녁 베트남 전통음식을 다른 이주노동자들에게 대접하기로 했다"며 "식재료 준비와 담당을 나누기 위해 의논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국 전통음식을 동료들에게 대접한다는 생각에 즐거운 듯, 이들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2010년 이주민.이주노동자를 위한 설날 위로잔치(2010.02.13)'가 끝난 뒤 기념사진 촬영을 하고있는 이주민들 / 사진제공. 대구이주민선교센터
'2010년 이주민.이주노동자를 위한 설날 위로잔치(2010.02.13)'가 끝난 뒤 기념사진 촬영을 하고있는 이주민들 / 사진제공. 대구이주민선교센터

대구이주민선교센터와 대구평화교회는 2월2일부터 설 명절 사흘 동안 중국, 베트남, 네팔, 스리랑카 이주노동자들이 직접 준비한 각 나라별 전통음식과 떡국을 함께 나누는 행사를 갖는다. 또 윷놀이와 제기차기를 비롯한 한국민속놀이, 외국인 노래자랑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연휴 마지막 날인 4일 오후에는 수성못 아이스링크장을 찾아 함께 스케이트를 탈 예정이다.

아산크씨는 "예전에 한 번 아이스링크장에 가본 적이 있다"며 "한 번도 스케이트를 타보지 못한 사람들이 많아 다들 좋아 할 것 같다"고 웃음을 지었다.

박순종 목사
박순종 목사
박순종 목사는 "갈 곳이 없는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설 연휴 동안 자국전통음식과 떡국을 나누어 먹으며, 함께 고향을 떠난 외로움을 달래보자는 취지에서 설 명절 행사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특히, "베트남과 필리핀, 스리랑카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국가에서는 얼음을 구경하기 힘들다"며 "다들 스케이트 타는 것을 좋아할 것 같아 올해 처음 아이스링크장을 찾기로 했다"고 말했다.

머나먼 고국을 떠나온 이주노동자들에게 설 명절은 이렇게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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