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지방선거 때 내가 김해시의원 선거에 나갈까 싶은데, 어떻게 생각해요?"
2008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병완 전 비서실장에게 던진 말이다.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 기초의원에 출마한다? 그러나, 이병완 전 실장은 "그냥 하신 말씀은 아니란 걸 알았다"고 한다. 진심이 담긴 말이라고 생각한 이 전 실장은 2가지 이유를 들어 반대했다. "떨어지면 어떡할거냐", 그리고 "(당선되더라도) 전직 대통령은 대통령예우법에 따라 경호를 받게 돼 있는데, 기초의원이 경호원 달고 다니면 어떡하냐". 이 전 실장의 말을 듣고 있던 노 전 대통령은 "이 실장은 고향이 어디요?"라고 물은 뒤 "함 해보쇼" 했다고 한다. 이 전 실장은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다음 해 2010년 6월 2일, '장관급'인 비서실장 출신으로 '기초의원'인 광주광역시 서구의원에 당선됐다.
이병완 전 비서실장이 '광주광역시 서구의원' 뱃지를 달고 5월 11일 대구를 찾았다. 지역 시민단체인 대구KYC가 주관하는 '시민보좌관' 양성교육의 강연이었다. '지역을 바꾸는 즐거운 상상'을 주제로 한 이 강연에는 대학생을 비롯한 시민보좌관 교육생 10여명과 시민단체 회원, 그리고 김현철(무소속.남구의회 의장), 유병철(무소속.북구의원), 김성태.이유경(민주당.달서구의원), 윤보욱(국민참여당.북구의원) 의원을 비롯한 대구의 기초의원 5명을 포함해 30명가량 참석한 가운데 대구 남구보건소 대강당에서 2시간가량 진행됐다.
"김해에서 올라오는 건 모두 보고하라"
이 전 실장은 강연에서 노 전 대통령이 김해시의원에 출마할 뻔한 당시 일화를 소개했다. "함 해보쇼"라는 노 전 대통령의 말이 '기초의원'에 출마하게 된 계기 중의 하나였다고 이 전 실장은 말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의 고향 사람들은 노 전 대통령 임기 중에 고향이 '천지개벽'할 정도로 발전할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노 전 대통령은 임기 중에 "김해에서 올라오는 건 나 한테 모두 보고하라"고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지시했다고 한다. "고향을 떠난 지 40년 지났는데, 이제와서 고향에 집값 땅값 올리면 다 나가라는 얘기 아니냐"는 게 노 전 대통령의 이유였다. 그래서 "(고향 개발을) 철저히 막았다"고 이 전 실장은 기억했다.
3년 전 이 일화에는 2011년 현재 '이병완 서구의원'의 고민도 담겨 있다. 이 전 실장은 "대통령 비서실장 하던 사람이 구의원 됐으니 이제 서구도 정말 크게 좋아지겠구나, 살 맛 나겠구나 하는 기대가 많다"며 "그러나 전혀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지역 발전은 커녕, 동네 돌아다니기도 정신없다는 말이었다. 그는 "사실 그 전에는 겉모습만 보고 기초의원을 비판하는데 물들어 있었다"며 "막상 1년정도 해보니, 기초의원이 이렇게 자기 마을, 자기 동네를 열심히 뛰어다니는구나 새삼 느꼈다"고 말했다.
"구의원을 수족처럼...구의원 폐지, 절대 못한다"
이 전 실장은 기초의원으로서 "정치 지역구도"와 "정당의 독점구조"를 비판했다.
그는 2010년 6.2지방선거 '서구 갑' 기초의원 선거구에서 '국민참여당' 후보로 출마해 1위로 당선됐다. 2위는 '민주노동당' 후보였고, 민주당 후보들은 모두 떨어졌다고 한다. 그는 이를 두고 '유권자 혁명'이라고 의미를 뒀다. "광주 서구에서 민주당이 1명도 안된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며 "유권자들이, 시민들이 혁명을 해 준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정당이나 국회의원 빽 없이도 된다는 걸 보여준 선거였다"며 "정치의 지역구도, 정당의 독점구조가 지방자치의 근본적 문제"라고 강조했다. 실례로, 지난 해 국회에서 논의된 '구의원 폐지'나 '구.시의원 통합' 문제를 꼽으며 '정치의 지역구도'를 비판했다. "대도시에 구의원 없애자? 말도 안되는 소리다. 그 논리가 틀렸다는 게 아니라 국회의원들이 못한다는 말이다. 구의원들을 수족처럼 해놨는데 자기들이 없앨 수 있으냐. 절대 못하고 결국 못했다. 깨뜨려야 한다. 정치 지역구도부터 깨는 게 시민들이 바꿀 수 있는 첩경이다. 그래야 다양한 사람들이 지방의회에 들어올 수 있다"
"정당공천보다 '공천문화'의 문제" / "중앙언론, 지방자체에 제일 부정적"
그러나, 논란이 되고 있는 '기초의원 정당공천제'에 대해서는 찬.반 입장을 밝히지 않은 채 '공천문화 변화'를 강조했다. 그는 "정당공천제 문제가 아니라 공천문화, 정당문화의 문제"라며 "당원들이 토론을 통해 들어올 수 있는, 시민들이 원하는 후보를 만드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전 실장은 또, 이른 바 '중앙언론'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그는 "중앙언론들이 지방자치와 기초의원에 대해 제일 부정적"이라며 "지방자치를 들여다보지도 않고 취재하지도 않고, 법에 문제는 없는지 대안은 없는지 따져보지도 않고 의정비.해외연수 같은 얘기로 분노만 일으킨다"고 불만을 쏟아냈다. 특히, "지방에 대한 변방의식이 아직 남아있다"며 "지방자치가 제대로 되면 민주주의는 걱정할 것도 없다"고 말했다.
"선출직을 귀찮게 만들어라"
이 전 실장은 이밖에, 지방의원의 '전문성'과 '시민보좌관'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우리나라 지방의회가 유럽이나 일본처럼 '작은 마을'이 아니라 인구 수 십만명의 '거대한 지역'이기 때문이며, 그 만큼 지방의원 역할의 한계가 있다는 말이었다. "서구의 인구가 32만명이고, 2천6백억원의 예산을 700여명의 공무원이 만든다. 보좌관도 없이 의원 혼자서 이 예산을 속속들이 다 들여다 볼 수가 없다. '오손도손'한 지방의회가 아니라 정말 '전문성'이 필요하다. 온갖 조례안에 대한 전문적 식견과 감사 능력 같은 전문성이 갈수록 커진다. 그래서 '시민보좌관'이 필요하다"
그는 끝으로 '유권자 참여'를 당부하며 강연을 맺었다.
"선출직을 귀찮게 만들어라. 귀찮게 하지 않으면 (의원들이) 지 멋대로 간다. 간섭하고 시비 걸어라. 그게 민주주의다. 정보공개청구를 활용하고 구청.의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의원들의 전화.이메일 확인하고 연락해라. 변화는 여러분이, 특히 광주와 대구에서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
한편, 대구KYC는 5월 한달 동안 '기초의원 시민보좌관' 양성교육을 열고 있다. 이병완 전 비서실장에 앞서, ▶영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김태일 교수(5.4) ▶에듀플랜 고상준 대표(5.7)의 강연이 열렸으며, ▶정보공개센터 하승수 소장(5.13) ▶대구광역시 김원구 시의원(5.18) ▶경기도 과천시 서형원 시의원(5.21) ▶'안산시 좋은마을만들기지원센터' 이현선 사무국장(5.21) ▶대구광역시 남구의회 김현철 의장(5.25)의 강연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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