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기초수급' 11,808명 자격 잃거나 급여 삭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구공동행동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 대구시 "소명기회 통해 구제"

 

시각장애 1급인 최모(80.여)씨는 지난 6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40여년 전 헤어진 딸과 사위의 소득이 부양의무자 기준을 초과해 그동안 매달 받아오던 기초생활수급비 42만원을 더 이상 못 받는다는 것이다. 남편의 가정폭력 때문에 40여년 전 집을 나온 최씨는 20년 전 겨우 합의이혼한 뒤 줄곧 혼자 살아왔다. 시각장애 때문에 일을 할 수 없는 최씨는 현재 장애수당 15만원만으로 생활하고 있다. 그러나 이 돈만으로는 월세와 공과금조차 낼 수 없어 생계가 막막해졌다.

달서구에 사는 성모(36.여)씨도 6월 초 기초생활수급자격이 탈락됐다는 구청의 통보를 받았다. 부산에서 혼자 사는 성씨의 어머니가 2천3백만원 상당의 주택의 소유하고 있고, 소득이 있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나 성씨의 어머니는 공장에서 임시직으로 일하며 매달 55만원을 버는 게 전부다. 성씨는 폐결핵성늑막염과 천식을 앓아 일을 할 수 없어 매달 기초생활수급비 28만원을 받으며 LH공사의 매입임대주택에서 혼자 생활해 왔다. 그런데 수급자격이 박탈되면 계약을 연장할 수 없어 내년에 집을 나가야 할 처지에 놓였다.

보건복지부의 '행복e음' 사회복지통합전산망을 통한 부양의무자 소득.재산조사로 수급자격을 잃게 된 대구지역 기초생활수급자들과 시민사회단체가 대구시청에 집단 이의신청을 제기했다.

대구지역 9개 단체로 구성된 <기초생활수급권리찾기 대구공동행동(이하 대구공동행동)> 회원 20여명은 대구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전산망을 통해 수집된 부양의무자의 소득, 재산 자료만으로 무조건 수급자격을 박탈하거나 급여를 삭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구제절차를 통한 생존권 보장과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촉구했다 (2011.08.25)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대구지역 9개 단체로 구성된 <기초생활수급권리찾기 대구공동행동(이하 대구공동행동)> 회원 20여명은 대구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전산망을 통해 수집된 부양의무자의 소득, 재산 자료만으로 무조건 수급자격을 박탈하거나 급여를 삭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구제절차를 통한 생존권 보장과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촉구했다 (2011.08.25)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대구지역 9개 단체로 구성된 <기초생활수급권리찾기 대구공동행동(이하 대구공동행동)> 회원 20여명은 8월 25일 오전 대구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전산망을 통해 수집된 부양의무자의 소득, 재산 자료만으로 무조건 수급자격을 박탈하거나 급여를 삭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수급자격 탈락자와 삭감자에 대한 다양한 구제절차를 통해 생존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사각지대를 낳는 주범이자 기초생활수급자의 마지막 생존의 몸부림마저 빼앗고 있는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할 것"을 촉구했다.

전국 3만3천명, 대구 1,737명 수급자격 탈락 / 전국 14만명, 대구 11,808명 급여 삭감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0월 '행복e음' 사회복지통합전산망을 통해 기초생활수급자에 대한 소득, 재산 조사를 실시한데 이어, 지난 2010년 11월부터 올해 5월까지 부양의무자에 대해서도 소득과 재산을 조사했다.

이 같은 조사결과에 따라 보건복지부는 지난 8월 17일 전체 기초생활수급자 38만명 가운데 3만3천명의 급여 지급을 중단하고, 14만여명의 급여를 삭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대구의 경우 2010년 12월 기준 기초생활수급자는 108,874명으로, 이 가운데 1,737명이 수급자격을 잃었고, 10,071명의 급여가 삭감됐다. 전체의 10%가량인 11,808명이 자격을 잃거나 삭감된 것이다.

<대구공동행동>은 이 같은 기초생활수급자의 자격 박탈과 급여 삭감의 이유로 '부양의무자' 제도를 지적했다. 현행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는 수급자의 1촌 직계혈족과 그 배우자, 자녀를 '부양의무자'로 규정하고 있으며, 부양의무자의 월 소득이 최저생계비의 130%를 초과하거나 재산이 1억5,286만원(대도시 기준)을 넘으면 수급자격을 박탈하도록 돼 있다. 게다가 수년 째 관계가 단절된 경우에도 부양의무자가 이 기준을 초과하면 수급자가 될 수 없다. 이에 따라 독소조항인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해야 된다는 게 이들 단체의 주장이다.

"수급자격 박탈, 급여 삭감 증가...'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인권운동연대 서창호 상임활동가는 "40년 전 이혼한 뒤 헤어진 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1급 장애인의 수급자격을 탈락시키고 있다"며 "어디에 사는지도 모르고 연락도 되지 않는 자식들에게 이제와서 부양을 책임지라고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시행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오히려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수급자격이 박탈되거나 급여가 삭감되는 현상이 최근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며 "근본적인 문제인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왼쪽부터) 인권운동연대 서창호 상임활동가, '주거권 실현을 위한 대구연합' 최병우 사무국장, 기자회견문을 낭독한 정용태 대표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왼쪽부터) 인권운동연대 서창호 상임활동가, '주거권 실현을 위한 대구연합' 최병우 사무국장, 기자회견문을 낭독한 정용태 대표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주거권실현시민연합 최병우 사무국장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사안인 만큼 정확히 조사해서 부당하게 급여를 지급받는 사람들의 자격은 탈락시키는 게 맞다고 본다"며 "그러나 단순히 전산망을 통한 부양의무자 소득.재산조사 만으로 탈락시킨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또 "보건복지부에서 <부양의무자 확인조사에 따른 업무처리 요령>을 각 지자체에 내려 보내 '최대한의 권리구제를 위한 노력'과 '충분한 소명기회와 절차 안내'를 지시했다"며 "그러나 대부분의 기초생활수급자들이 제대로 된 소명기회를 얻지 못해 수급자격을 박탈당하거나 급여가 삭감됐다"고 주장했다.

대구시 "사각지대 놓인 대상자, 소명기회 부여해 구제하고 있다"

이에 대해 대구시 보건복지여성국 복지정책관실 정한교 생활보장담당은 "부양의무자의 관계 단절과 부양 기피로 인해 사각지대에 놓인 대상자들에게 소명기회를 부여해 확인한 뒤 구제해주고 있다"며 "오히려 수급자격이 탈락된 사람들보다 소명을 통해 구제된 사람들이 더 많다"고 밝혔다.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에 대해 정한교 생활보장담당은 "현재 부양의무자의 월 소득 기준인 최저생계비의 130%는 현실적으로 부족하다는 의견이 많아 대구시에서도 보건복지부에 기준 상향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며 "보건복지부에서도 최근 부양의무자 소득 기준을 최저생계비 185%로 상향 조정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이 끝난 뒤 대구지역 기초생활수급 탈락자와 삭감자 17명은 복지정책담당관실에 집단 이의를 제기하며 소명서를 제출했다.

이에 대해 정한교 생활보장담당은 "기초생활수급권 책정 권한은 관할 구청에서 담당하도록 돼 있다"며 "원래는 소명서를 다시 돌려주고 구청에 제출하도록 해야 하지만 이번만큼은 시에서 직접 해당구청에 소명서를 전달해 처리하도록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대구공동행동>은 '기초생활수급자격 탈락, 삭감'에 대한 이의제기와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위해 오는 8월 30일과 31일 서울 보건복지부 청사 앞에서 상경투쟁을 벌일 예정이다.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지금 주목 받고 있어요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