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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 왜 학교가 나서지 않는가?
[김민남 칼럼] "참교육을 근심하거든 부담을 져라. 지금 그 담을 짊어질 때다"
2012년 01월 08일 (일) 16:24:44 평화뉴스 pnnews@pn.or.kr

왜 검찰 경찰 교육부가 나서는가? 학교(교사)가 나서라. 중심에 서라. 필요하면 저들에게 지원을 요청하라. 무슨 일이나 중심이 있고 주변이 있다. 중심과 주변을 분별하지 못하는 개념혼선이 일을 더 그르친다. 학교(교사)가 교육과 아이들의 문제에 무한 책임을 진다고 선언한다. 이것이 폭력을 ‘교육적’으로 풀어내는 어렵지만 온당한 길이다.
 
교사가 폭력에 대처하다가 되려 그 폭력에 노출된 난감한 사례를 여기 저기서 듣고 보게 된다면 꼭 그것만큼 폭력은 줄어들 것이며 그 것 이상으로 교권이 살아날 것이다. 절실한 문제를 당차게 대면하는 사람만이 누구와도 소통하는 권능을 얻는다. 학교폭력은 교사 자신들이 밀착하여 풀어야 하는 그런 문제라고 선언하고 지금 당장 나서기를 간청한다.

언론이 진보의 흐름을 차단하려고 의도적으로 과장하고 있다고 말하는 이도 있고, 입시중심 교육에서 빚어진 구조적 파생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나는 학교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저질러지는 폭력은 희생자의 삶을 파손할 뿐만 아니라 배움 관계로서의 학교 체제 자체를 부정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그렇다면 ‘공’교육의 당사자인 교사가 가장 큰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먼저 용서를 빌라. 내심 억울하겠지만 그래도 용서를 비는 것이 순서이다. 인권은 폭력으로부터 해방이라고, 무엇보다 먼저 물리적 폭력으로부터 해방이라고, 물리적 폭력은 석차를 가지고 교육과 아이들을 관리하는 정신적 폭력 보다 더 긴박한 현실이라고 나는 단언한다. 물리적 폭력을 방치한 채 정신적 폭력 운운하는 것은 요새 유행하는 말투로 진짜 무개념 교사 무개념 진보이다.

타인을 가격한 사람이 폭력 범죄자라고 간명하게 규정한다. 폭력에 대해 어떤 변명도 허용하지 않는다. 주먹질 할 수밖에 없는 경우에 행한 주먹질도 폭력이 된다. 이래서 저래서..라는 일체의 변명도 허용하지 않는다.

학교 구석구석에서 일어나는 폭력을 이 잡듯이 잡아내는 학교(교사)의 행동강령을 만든다. 학생들 모두가 참여하여 학칙을 제정한다. 학생들 스스로 폭력을 유발하는 짓이 어떤 것인지를 그리고 어떻게 대처할지를 토론한다. 폭력을 광장에 내놓는다.
 
교육활동을 방해하는 잡무에 손을 떼라. 문자그대로 ‘잡무’를 강요하거든 폭력의 이름으로 잡무의 실상을 공개하라. 잡무는 교육청과 장학사가 하면 된다. 교육적 타당성을 명확히 하고 아이들을 지도한다. 수업이든 급식이든 교실운영이든 아이들(학부모들)이 가진 ‘문화적’ 이유를 통제한다.

국가에 대해, 교육과정 활동을 학교(교사)에게 넘겨줄 것을 폭력의 이름으로 요구하고 그리고 선발의 자율이라는 명분하에 교육과정활동을 알게 모르게 파손하는 대학의 무책임을 지적한다. 그런 것이 학교폭력을, 나아가 사회폭력을 조장하는 것임을 천명한다.

언론에 대해, 사건 위주 보도를 자제해줄 것을 요청한다.

교직단체, 폭력에 대처하는 세력을 조직화하기를

교총도 전교조도 교사전체의 이름으로 나서기를, 교사개인들도 홀로 교직의 아픔으로 그간의 무책을 고백하고 나서기를 간청한다. 교직단체는 먼저 교사들이 함께 나설 수 있는 환경, 무엇보다 먼저 교사를 조직화하라. 교총, 전교조, 위기를 호기로 만들어내는 ‘전략’을 구사하며 비로소 교직단체가 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교사 김병하, 한사람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 증거하기를

   
▲ 김병하 교사
학교 폭력에 대처해온 놀랄만한 이력을 가진 교사들이 있다. 김병하 선생(대구 강동중)은 그 교사들 중의 한사람이다. 그의 폭력 대처법이 교육적 소통의 정수라고 생각했으며, 직접 만나 그의 소통의 일상에 배인 ‘교사다움’을 체감한 적이 있다. 그래서 늘 그를 ‘교사 김병하’라고 아름다운 이름을 부른다.

사랑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사랑은 선물과 같이 간다. 나는 선물과 함께 하는 사랑을 체험하고 있다. 아이를 사랑하거든 그 아이가 좋아 하는 것을 해주라. 학교에서 아이들은 모든 사람관계가 배움관계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을 것이다. ‘요즘 아이들’도 그 소망을 가지고 있다고 믿자. 진실은 신념에 의존한다.

‘요즘 아이들’의 행태를 이해하고 소통하기 어렵다는 것을 안다. 이렇게 말하자; 어느 시대 나 어른들에게 아이들은 ‘요즘 아이들’이었다. 그래도 학교는 있었고 그 요즘 아이들을 만나 소통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교사들이 있었다. 그들은 틀림없이 소통을 업이라고 받아들이는 ‘개념교사’였을 것이다. 아이들은 그 개념교사들과 소통했을 것이다.

이 믿음을 가지고 교육을 배움의 관계로 만들어내는 그림을 밤새도록 그려보는 ‘이상론자’를 기다린다. 

다시 강조한다.
폭력에 대처하는 교사의 행동강령을 공개한다. 어떻게 폭력에 책임질지를, 누구나 그 책임을 추궁할 수 있을 만큼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이 엄중한 책임을 구체화하여, 무너진 교권을 다시 세우는, 실종된 교육의 원리를 되살리는 기회로 반전시키를 바란다.

교권을 말하며, 그 입으로 ‘교사 노동강도’가 어떠니 하는 말을 하지 않기 바란다. 참교육을 근심하거든 부담을 져라. 지금 그 부담을 짊어질 때이다.
 
   





[김민남 칼럼 22]
김민남 / 교육학자. 경북대 교육학과 명예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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