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이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17일 오후, 대구 서문시장 상인과 손님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손님이 없다", "대목이 없다"는 상인들이 많았고, 손님들은 "오른 물가", "얇은 주머니"를 탓했다.
한국물가협회는 2012년 설 차례용품 판매가격이 지난해 전국평균 19만 5260원에서 7880원 떨어진 18만 7380원이라고 발표했다. 지난해에 비해 4%나 감소한 수치다. 그러나 전통시장 상인들은 "도매에서 물건을 가져오는 가격이 올랐는데 그게 말이 되냐"며 "현장에서 장사도 안해 본 사람들이나 그런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서문시장 왼편 골목에는 양말 도매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이들은 가판대에 포장한 양말 상자를 준비해 놓았다. 그러나 찾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20년째 서문시장에서 양말을 팔았다는 박강희(54)씨는 "올해가 아니라 해마다 손님은 줄어들어"라며 "대형마트는 '1+1행사'를 많이 해서 우리랑 비교가 안되지"라고 씁쓸하게 말했다. 이어 "우리는 주문 들어오면 공짜로 포장도 다 해서 주잖아. 백화점에 가봐. 그것도 돈이야"라며 넋두리했다.
서문시장 동산상가 2층 여성복코너. 이경숙(59)씨는 "설빔은 옛말"이라며 낡은 장부를 꺼내 얼마나 손님이 떨어졌는지 확인해 줬다. 이씨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지난해보다 대충 30%는 줄었다"며 "대목이 없어 큰일이다"고 말했다. 덧붙여 "아동복 코너는 손님이 많은 편"이라며 "엄마들은 (자기 옷)안사. 주머니 가벼우니까. 그래도 애들은 (설빔)입힌다"고 얘기했다.
노점에서 40년째 과일을 팔아온 최재윤(70)씨 역시 "전통시장 손님은 계속 줄고 있다. 올 설의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덧붙여 최씨는 "대목이니까 과일 값 조금 올랐지. 그것 가지고 나한테 비싸다고 하면 어떻게 해"라며 "설 연휴까지 4일 남았는데 어쨌든 손님이 많이 왔으면 좋겠다"고 웃으며 얘기했다.
서문시장 구석진 곳. 트럭 한대에 사과가 한 가득 실려 있었다. 김철용(55)씨는 아픈 몸을 이끌고 설 대목을 위해 장사를 나왔다. "6년째 이렇게 팔고 있다"던 김씨는 "올해처럼 안팔릴 때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어 "작년에는 사과 1개에 250원이었는데 올해는 350원-400원까지 한다"며 "도매상에서 거의 50%나 값을 올려 나도 싸게 팔고 싶어도 할 수 없다"고 얘기했다. 김씨는 "내일도 설 대목을 장담할 수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마감 시간 전 노점에서 야채를 팔고 있던 김이쁜(67)할머니는 돌아서는 손님의 등만 빤히 보고 있었다. 김 할머니는 "값만 물어보고 가는 손님들 많지. 돌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아"라며 시금치를 다듬었다. 이어 "시금치 한 단에 5000원 주고 떼와. 그리고 5500원에 팔아. 200원-300원 남아"라며 "오늘은 6단 팔았네"라고 말했다.
생고기를 판매하는 조옥희(57)씨는 "'왜 고기값이 안떨어지냐'고 묻는 사람이 고기를 사가는 손님들 보다 많다"며 최근 소 값 폭락에 대한 얘기를 했다. 조씨는 "그렇지 않아도 마트에 손님들 많이 뺏겨서 속상한데, 정부는 뭘 하는지 모르겠다"며 "내년 설에는 손님이 더 줄어들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한창 바쁜 와중에도 전통시장 상인들은 내 주머니에 박카스, 사탕, 강정, 목캔디, 귤을 비롯한 여러 간식거리를 챙겨주며 살갑게 대해줬다.
설을 맞아 친구들 선물을 구입하러 온 최승영(생산업)씨는 "경기도 어렵고, 일도 없다. 그래도 이런 때 돈을 쓰면 아주 기분이 좋다"며 "주머니가 가벼워도 양말 하나 못 사겠냐"고 얘기했다.
저녁 7시쯤. 비가 내린 서문시장 길목은 축축했다. 설 대목을 기다리던 상인들은 하나 둘 내일을 기대하며 가게 문을 닫고 짐을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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