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한 번 둘러보세요. 설 대목인데 1주일째 손님이 하나도 없어요."
목련시장에서 20년째 생선가게를 운영한 김석규(50)씨는 이 같이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김씨는 "보통 연휴 닷새 전부터 생선을 찾는 손님들이 많은데, 올해는 손님이 거의 없다"며 "지난해 대형마트가 생긴 뒤 손님이 뚝 끊긴데다, 이제는 명절 대목까지 없어졌다"고 말했다. 또 "대형마트보다 가격이 저렴한데도 손님들이 찾지 않는다"며 "요즘 장사가 너무 안 돼 아내에게 가게를 맡기고, 가끔 공사장에 일하러 나간다"고 말했다.
설 연휴를 닷새 앞둔 동네 재래시장의 모습은 썰렁했다. '대형마트 입점'과 '물가인상', '경기침체' 삼중고가 이곳 재래시장을 덮쳐 명절대목마저 사라지고 있다. 대구시 동구 율하동 목련종합시장을 찾은 28일 오후 5시, 설 대목을 맞아 시장을 찾은 손님들은커녕 저녁 반찬거리를 사러 온 손님들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동구에는 지난해 7월 문을 연 '롯데쇼핑'과 'E마트', '홈플러스'를 비롯해 대형마트 3곳이 영업하고 있다. 이곳 목련시장과 인근 '반야월종합쇼핑센터'는 대형마트들 한 가운데 위치해 해가 지날수록 손님이 줄고 있는 실정이다.
물가에 대형마트에..."올해는 손님 거의 없을 듯"
목련시장 밖에서 채소를 판매하는 한 상인은 "매년 경기가 안 좋아지고 있는데다 요즘 물가마저 올라 대목인데도 손님들이 지갑을 닫았다"며 "그나마 있던 손님도 대형마트로 다 몰린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대형마트가) 이미 생긴 걸 어쩌겠느냐"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한 50대 정육점 주인은 "요즘 구제역 때문에 돼지고기 값이 크게 오른 데다, 작년에 대형마트가 생겨 손님이 많이 줄었다"며 "보통 명절 이틀 전에 손님들이 돼지고기를 많이 찾는데, 올해는 손님이 거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생닭을 판매하는 하모(여.36)씨는 "작년에 비해 물가도 많이 오른 데다 지난해 롯데쇼핑이 생기는 바람에 손님이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또 "인근 율하지구에 아파트단지가 많이 들어섰지만, 중.소형 아파트가 많아 젊은 부부들이 대부분"이라며 "추운 날씨에 젊은 새댁들이 아이를 데리고 따뜻한 대형마트를 찾지, 재래시장에는 잘 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 좁은 지역에 대형마트 3곳..."상권이 완전히 죽었다"
앞서 오후 4시 쯤 찾은 율하동 '반야월종합쇼핑'. 이불과 한복, 의류, 속옷, 신발 등을 파는 이곳은 '종합쇼핑'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한산했다. 단골손님 한 두 명만 간간히 상가 안을 둘러볼 뿐, 이곳을 찾은 손님들의 모습은 거의 찾아 볼 수 없었다. 상인들도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거나 뜨개질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20년째 이불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김순자(여.58)씨는 "이 좁은 지역에 대형마트가 3개나 생기는 바람에 명절대목은 사라진지 오래"라며 한숨을 쉬었다. 김씨는 "대기업만 잘 살면 다 잘사는 줄 아느냐"며 "서민들 다 죽게 생겼다"고 토로 했다. 신발가게를 운영하는 김상철(57)씨도 "E마트와 롯데쇼핑 중간에 있어 상권이 완전히 죽었다"며 "그나마 단골손님들이 조금 남아있어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루 종일 귤 1상자도 못 팔아...서민을 위한 정치?
쇼핑센터 앞 노상에서 과일을 파는 박모(여.62)씨는 "하루 종일 귤 1상자도 못 팔았다"며 "작년 이맘때만 해도 이렇게 손님이 없진 않았는데, 인근에 대형마트가 생기면서 설 대목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박씨는 "작년에는 귤 100상자씩 갖다놓았는데, 올해는 재고가 남을까봐 30상자 밖에 갖다놓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대형마트 때문에 상인들 다 죽게 생겼는데 무엇이 '서민을 위한 정치'인지 모르겠다"며 지역 정치인들에 대한 불만을 터뜨렸다.
저녁 6시 30분 쯤 인근 대형마트에도 아직 퇴근시간이 끝나지 않아 손님들이 많지 않았지만, 명절선물세트코너와 생선코너를 찾은 손님들은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율하동에 사는 김선진(여.36)씨는 "재래시장이 조금 더 싸다고는 하지만, 한 번에 장을 다 볼 수 있고 계산하기도 편해 마트를 찾는다"고 말했다. 정모(47.안심1동)씨도 "아무래도 마트가 편하기 때문에 재래시장으로 발걸음이 잘 옮겨지지 않는다"며 "꼭 필요한 것이 있을 때만 재래시장을 찾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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