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긴급조치 9호', 36년 만에 대구에서 단죄하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구고법, 백현국(65) 등 3명 '무죄' 선고..."유신독재, 박정희에 대한 새로운 해석 단초"


박정희 유신독재의 결정판으로 불리는 '긴급조치 9호' 피해자들이 36년 만에 한(恨)을 풀었다.

대구고등법원은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모진 고문을 받고 옥고를 치른 백현국(65)씨를 비롯한 3명에 대해 2월 16일 '무죄'를 선고했다. 백현국씨는 지난 1976년 6월, '긴급조치 9호'와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영장도 없이 체포돼 심한 고문을 받은 뒤 2년을 복역했다. 또, 서태열(59)씨와 장의식(59)씨 역시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고문을 받고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이들은 16일 판결로 36년 만에 그 한을 풀게 됐다.

백현국(65)
백현국(65)
백현국씨는 "정말 새로운 희망을 보는 판결"이라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유신독재를 저지른 박정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나올 수 있는 단초가 되지 않겠느냐"며 "그 박정희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억압받고 고통받았는지 깊이 되새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 "박정희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가 이뤄지고, 대구에서 인기 많은 박정희의 딸 박근혜에 대한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대법원이 지난 2010년 12월 "대통령 긴급조치 1호(1974년)는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으나, 대구경북지역에서 '긴급조치' 관련 피해자의 무죄 선고가 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백씨는 지난 1975년 '4.19선언문'과 '김상진 유서'를 후배들에게 보여주며 유신헌법 폐지를 선전하고 "선통일 후이데올로기"와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했다는 이유 등으로 1976년 6월 구속영장도 없이 체포돼 중앙정보부 대구지부(속칭 앞산)에서 모진 고문을 받았다.

특히, 볼펜을 손가락에 끼우거나 각목을 다리에 끼워 압박하고 잠을 재우지 않는 고문을 겪었을 뿐 아니라 부모님께 '유서'도 쓰게 했다. 결국 자포자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린 백씨는 수사기관이 요구하는 각본대로 자술서를 썼고 징역 2년을 선고받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서태열씨와 장의식씨 역시 각각 보안사령부(속칭 태백공사)와 중앙정보부 대구지부로 끌려가 고문을 받았다. 장씨는 '백현국이 간첩에게 포섭되었는데 너는 선량한 학생이다'라는 식으로 겁박과 회유를 받기도 했다. 이들 모두 불법 연행과 감금 등으로 법적 보호나 인권을 보장받지 못한 채 가혹행위를 당한 뒤 법정으로 넘겨졌다.

사진 출처 / <한겨레> 2012년 1월 3일자 22면(기획)
사진 출처 / <한겨레> 2012년 1월 3일자 22면(기획)

'긴급조치 9호'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1974년부터 1979년 10월 26일 숨질 때까지 발동한 9차례 긴급조치(국가안전과 공공질서의 수호를 위한 대통령 긴급조치)의 '종합결정판'으로 불리고 있다. 1975년 5월 13일 발동한 '긴급조치 9'호는 유신헌법에 대한 일체의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으로, 김명식.양성우 필화사건과 리영희.백낙청 필화사건, 현대문학 '미친새' 필화사건, 크리스찬아카데미 사건을 비롯해 지식인과 언론인 사건이 대부분 긴급조치 9호로 일어났다.

정재형 변호사
정재형 변호사
특히, 유신독재가 끝날 때까지 4년 6개월동안 긴급조치 9호 관련 판결(1,289건)로 무려 1,389명이 구속된 것으로 '한국정치범동지회' 조사 결과는 전하고 있다. 때문에, 긴급조치 1호가 발동된 1974년부터 박 대통령이 사망한 1979년 10월 26일까지를 '긴조시대(긴급조치시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사건을 맡은 정재형(46) 변호사는 "긴급조치는 현행 헌법은 물론 유신헌법이 규정하는 긴급권의 발동 요건과 한계를 일탈한 위헌성 때문에 법적 효력을 가질 수 없다"며 "이번 판결로 긴급조치의 위헌성이 확인됐을 뿐 아니라 억울한 피해자들에게 재심의 길도 열렸다"고 평가했다.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지금 주목 받고 있어요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