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 됨됨이, 정책 없는 '지지도'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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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 "군소후보 순위까지..여론조사 적중' / 사설 '대구 공멸의 고질' 지적


처음부터 유권자는 안중에 없었다. 총선 전이나 후나 여론조사가 잘 됐고 그 보도가 옳았다는 주장만 한결 같다. 4.11총선은 끝났다. 선거에 온통 지면을 할애했으면 선거보도의 결산보도도 있어야 할 텐데 눈을 부릅뜨고 살펴도 대구의 언론 어디에서도 그런 것은 찾을 수 없다. 선거 뒤 하루 이틀은 선거기사를 넘치게 다뤘다. 하지만 선거에 대한 기억을 풍경화 그리듯 한 스케치였다. 감상기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인상기?

이래서야 대구 상황에 정통하다는 대구언론으로선 여간 큰 흠결이 아닐 수 없다. 시장상품으로 치면 반품 감이다. 유권자들은 자신이 이번 선거에서 투표 근거로 언론이 던져준 정보에 대한 신뢰성, 정보가치에 대해 어디 가서 따져볼 수도 없다. 그래도 선거판은 돌아간다! 다음 대선도! 왜? 유권자는 ‘데리고 놀기’ 딱 좋은 존재들이니까! 숫자만 늘어놓으면 ‘까빡’ 죽기 때문인가? ‘경마 식 보도’로 당근만 코앞에 매달아놓으면 저 죽는 줄 모르고 달리는 말이니까? 빠져나오지 못하는 선거심리의 호리병(통발) 속으로!

문제점 외면…자화자찬

이번 총선 관련 보도에서 대구언론의 무책임한, 보도윤리 면에서 부정적인 부분은 여론조사결과 보도였다. 여론조사결과를 금과옥조처럼 화려한 그래픽을 곁들여 다룬 영남일보․TBC가 과녁이 될 수밖에 없다.

<영남일보> 2012년 4월 13일자 4면(선거)
<영남일보> 2012년 4월 13일자 4면(선거)

「군소후보 순위까지 그대로…영남일보 여론조사 적중」(영남일보, 4월 13일 4면 ‘4․11 국민의 선택’) 기사는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지지도 기조가 선거 결과에서도 복사판처럼 반영됐고, 군소후보군의 순위까지 그대로 맞혔다.’면서 ‘여론조사가 선거결과와 거의 흡사해 높은 적중도를 과시했다.’고 자랑했다. 반론할 적당한 근거를 쉽게 찾을 수 없는 유권자들은 이 말을 사실로 믿게 마련이다. 그래서 여론조사결과보도는 유권자를 붙들어두는 좋은 당근이 된다. 다음 선거에서는 더 높은 신뢰를 보낼 것이다. 중독되는 것이다.

한번 따져보기로 하자.
3월 30일자 영남일보 1면 대구 달서갑 여론조사결과 보도. '홍지만 49.1 도이환 20.0 김준곤 15.3’
4.11 선거에서 진짜 결과. ‘홍지만 56.75 김준곤 20.13 도이환 21.74’

<영남일보> 2012년 3월 30일자 1면
<영남일보> 2012년 3월 30일자 1면

후보 '찍기'에 결정적

순위는 맞았다. 그런데 수치는 틀렸다. 이건 뭘 의미하는 걸까? 선거 당일의 ‘여론’이라는 이름의 민심이 ‘여론’조사 실시 당일보다 크게 변한 것이다. 누가 선거에서 이기고 지고의 문제가 아니다. 여론조사 결과가 크게 변할 수 있다면 조사당일과 선거일까지의 기간이 길면 길수록 그 가변성의 폭은 더 크게 마련이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이미 후보를 대하는 첫 이미지에서 찍을 후보에 결정적으로 유의하거나 그런 쪽으로 기운다. 선거 날이 가까울수록 그런 경향은 더 짙어져서 선거 당일이면 될 사람에게 투표한다는 심리까지 작용해 첫 이미지가 강했던 후보에게 투표하게 된다. ‘바람투표’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그런 경향은 몰표로 나타날 것이다.

영남일보․TBC는 줄기차게 후보 순위를 매기는 ‘여론조사’ 결과를 내보냈다. 무엇을 근거로 한 후보 줄 세우기인지도 의문이지만 선거란 게 후보의 정직성 등 인물 됨됨이, 정책의 내용과 실천 가능성, 이슈를 따져보는 절차일 텐데 그런 대목은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아예 다루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에게 '우리가 매겨주는 후보순위를 따라서 투표하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쟁점이야 언론이 다루지 않아 유권자들이 모를 테니까.

그런데도 ‘여론조사 정확도’ 운운하는 것은 언론의 신뢰도만 떨어뜨릴 뿐이다. 이번 4.11총선에서 특히 여론조사결과를 강조한 영남일보․TBC는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대체로 다음과 같은 오류를 유권자들에게 범했다.

'허위 여론'을 '진성 여론'으로...정책․자질 지지도 조사는 안 해

첫째, 민심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게 마련인데 여론조사결과를 마치 후보들에 대한 고정된 판정인양 받아들이게 했다. 이것은 통계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허위의 여론’을 진정한 ‘여론’으로 굳혀주는 역기능에 해당한다.

둘째, 그 결과 여론조사결과보도는 유권자들로 하여금 선거의 본질 문제를 외면하게 했다. 후보 됨됨이, 정책 내용에 대한 지지도 조사결과를 발표하지 않은 것은 이에 대한 조사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론조사 결과가 ‘군소후보군 순위까지 그대로 맞힐’ 정도로 여론조사를 ‘정확’하게 설계할 수 있었다는 것은 후보 됨됨이나 정책 등에 대한 조사를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고 싶지 않아서’ 아예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심을 한 쪽으로만 몰고 가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될 수 있는 대목이다. 만일 그렇다면 이번 여론조사결과 보도는 선거결과 또는 선거의 성격을 처음부터  ‘기획’한 것이나 다름없다.

셋째, 선거의 기본 목적인 대의정치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여론조사가 수단으로서 필요할 텐데 이런 식의 여론조사결과 보도는 민심이 여론조사결과에 휘둘리기 딱 좋도록 했다. 여론조사가 대의정치의 운명까지 결정한 인상을 준다. 수단이 목적이 됐다는 말이다.

후보의 됨됨이, 정책 내용에 대한 지지도 조사를 하지 않은 채 후보의 지지도 조사인지 소속 정당의 지지도 조사인지조차 애매한 이번과 같은 여론조사결과 보도는 유권자들을 선거운동이라는 물살을 따르게 해서 호리병(투표) 속으로 집어넣어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는 ‘유권자몰이’란 비판을 받아야 한다. 마치 물살이 빠른 여울에서 고기를 몰아 통발 속으로 집어넣는 것과 같다는 인상을 주게 했다. 대의정치의 정착을 위해서나 대구․경북의 현안을 유권자들의 바른 선택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나 어느 쪽으로도 바람직하지 못했다.

후보범위가 좁은 대선에서는 이런 식의 여론조사결과 보도는 그 역기능이 절대적일 수 있다는 점에서 여론조사결과 보도 환경에 대한 시민차원의 감시가 절실하다.

보도행간엔 '박근혜 옹위'

<매일신문> 2012년 4월 13일자 3면(선거)
<매일신문> 2012년 4월 13일자 3면(선거)
<매일신문> 2012년 4월 5일자 1면
<매일신문> 2012년 4월 5일자 1면

선거보도 결산과 관련해서는 대구지역 어떤 언론사도 본격적으로 다루지 않았다. 매일신문이나 영남일보 모두 선거결과와 향후 상황에 대한 전망, 가십거리 보도가 전부였다. 언론사 자신의 벗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는 반증이다. 매일신문의 「유효득표로는 야권연대 우세…새누리 대선 낙관 못해」기사(4월 13일 3면 ‘4.11총선’)는 얼핏 총선분석보도처럼 보이지만 그 행간에 ‘박근혜 옹위’의 메시지를 깐 보도였다.「“대구 1당 독점, 박근혜 대선에 도움 안 된다”」(4월 5일 1면 머리기사)는 문희갑 전 대구시장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기사로서 선거 전 기사지만 역시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부정할 수 없는 '대구정서' 지적

<영남일보> 2012년 4월 13일자 사설(23면)
<영남일보> 2012년 4월 13일자 사설(23면)
영남일보의 사설 「총선 이후, 대구의 과제」(4월 13일 23면 ‘오피니언’)는 일당독점 지배구조가 철옹성처럼 재현된 상황에서 대구의 정치상황을 심도 있게 분석했다.

이 사설은 소소한 시시비비적 코멘트와 과제를 제시한 것 외에 특히 ①‘박풍’에 속수무책이었다고는 하지만 지역주의를 그대로 끌어안은 유권자들의 선택이 (영호남) 지역을 공멸에 이르게 하는 고질이 될 수 있다는 지적, 구체적으로 총선에 패배한 후보 개개인의 능력으로는 어쩔 수 없는 ‘대구정서’가 분명히 있다는 지적, ②일당독점구조 타파를 호소한 1천 지식인 선언, 오피니언 리더들의 고언도 먹혀들지 않는 계층․세대 간 소통 부재의 닫힌 대구, ③낙하산 공천인사들 손에 좌지우지되는 ‘식민지 대구’의 위상을 분석적으로 지적했다. 우리 대구의 앞날은 발등에 도끼날이 떨어지는 혁명적 상황이 닥치지 않는 한 ‘기대’는 실망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을 정도로 화석화되었음을 읽게 했다.

물론 이런 지적도 사실 새로운 것은 아니다. 조선일보의 월간조선조차 대구를 ‘순환․경쟁․상호비판 없는 동종교배의 도시’라고 지적(2006년 3월호)했을 정도니까 대구가 퇴화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도시란 것을 모르는 사람은 TK 뿐이란 말이 된다.

유권자몰이 여론조사 보도 거부해야

4.11총선에서 유권자들이 일당독점구조를 다시 선택한 배경을 모두 언론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그러나 유권자의 의식을 좌우하는 정보의 수도꼭지를 틀어 쥔 언론이 대구에서는 하나 같이 보수언론뿐이란 사실은 시사하는 바 크다.

유권자몰이 여론조사결과 보도는 거부하고,  필요한 의제가 공론장에 오르도록, 그래서 대의정치가 살고 대구가 살도록 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평화뉴스 - 미디어 창 181]
여은경 / 대구경북민주언론시민협의회 사무처장. 전 대구일보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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