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참정권?...휠체어 통로도, 도우미도 없었다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12.04.17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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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 '침해' 101건 국가인권위 진정...'참정권' 최다 / "대구선관위, '시정' 말 뿐"


"투표장 주변이 온통 공사장이었습니다. 휠체어가 지나갈 수 없어 입구에서 짐짝처럼 들려 올라갔습니다. 투표소에 들어가니 어떤 안내도, 도움도 없었습니다. 나의 권리는 어디에 있습니까?"

대구 효목1동에 사는 임선하(24.뇌병변 1급)씨의 말이다. 임씨는 지난 4.11 총선, 투표를 하기 위해 효목초등학교 도서관을 찾았다. 그러나 도서관 주변은 공사 때문에, 투표장 입구는 휠체어 통로가 없어 이동이 불편했다. 결국 임씨는 선관위 직원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선관위 직원은 장애인과 관련된 교육을 받지 않아 휠체어 작동방법을 알지 못해 임씨의 이동을 불편하게 했다. 게다가 활동보조인이 투표를 대신해 비밀투표를 보장받지 못했다.

임선하씨가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하는 모습(2012.4.17 국가인권위 대구사무소 앞)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임선하씨가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하는 모습(2012.4.17 국가인권위 대구사무소 앞)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경산에서 대학교를 다니는 이모(시각장애인)씨도 "부재자투표를 신청하고 선거 공보물을 받았지만 점자로 된 공보물이 아니라 정당과 후보에 대한 어떤 정보도 알 수 없었다"며 "선거에서 배제당하는 기분에 화가 났다"고 했다. 

또, 신암1동 제1투표소에서 투표를 한 손모(청각장애인)씨도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화통역사가 없어서 투표와 이동이 어려웠다"며 "선관위가 배치한 수화통역사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했다. 이어 침산2동 제1투표소에서 투표를 한 이모(시각장애인)씨도 "시각장애인을 위한 유도시설과 투표안내 도우미가 없었다"며 "다음 선거도 벌써 걱정이다"고 말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60여명(2012.4.17 국가인권위 대구사무소 앞)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기자회견에 참석한 60여명(2012.4.17 국가인권위 대구사무소 앞)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지역 장애인들이 자신들이 겪고 있는 차별에 대해 증언하고, 시정을 요구하며 17일 101건의 진정서를 국가인권위 대구사무소에 접수했다. 진정서 가운데 59건은 공공영역, 41건은 민간영역, 1건은 개인.가족과 관련된 것이다. 특히, 4.11 총선 당시 장애인 유권자들이 겪은 참정권 침해 진정이 50건으로 가장 많았다.

장애인지역공동체와 대구장애인연맹을 포함한 33개 대구지역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420장애인차별철폐대구투쟁연대'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4주년을 맞아 17일 국가인권위 대구사무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420장애인차별철폐대구투쟁연대 박명애 상임공동대표
420장애인차별철폐대구투쟁연대 박명애 상임공동대표
이들 단체는 "총선이 있기 전, 대구시선관위는 장애인 참정권 보장 대책을 내놨지만  내용은 실망스러웠다"며 "장애인차별금지법 제27조에는 '국가와 지자체가 장애인의 참정권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정당한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고 나와 있지만 이명박 정부, 대구시, 선관위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고 기자회견문을 통해 주장했다.

특히, 이들은 ▷"이명박 정부는 장애인차별시정기구인 국가인권위원회를 죽이지 말라" ▷"국가인권위원회는 장애인차별을 시정하기 위한 대책을 즉각 강구하라" ▷"대구시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지켜 장애인의 권리보장에 필요한 대책을 마련하라 ▷"선관위는 장애인의 참정권 보장에 필요한 정당한 편의제공 의무를 온전히 시행하라"고 요구했다.

장애인지역공동체 서승엽 사무처장은 "선관위가 장애인의 눈으로 보지 않고 비장애인의 눈으로 편의시설을 제공했기 때문에 불편을 겪는 장애인들이 많다"며 "선거철마다 논의했지만 '시정조치한다'는 말 뿐이었다"고 했다. 또, "진정서가 생각보다 많았고, 더 많은 장애인들이 불편함을 겪었을 것"이라며 "진심으로 해결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왼쪽부터)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김시형 장애인차별상담원, 대구여성장애인연대 김양희 사무팀장, 빈곤과차별에저항하는인권운동연대 서창호 사무국장, 맥장애인자립생활센터 서준호 소장(2012.4.17)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왼쪽부터)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김시형 장애인차별상담원, 대구여성장애인연대 김양희 사무팀장, 빈곤과차별에저항하는인권운동연대 서창호 사무국장, 맥장애인자립생활센터 서준호 소장(2012.4.17)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빈곤과차별에저항하는인권운동연대 서창호 사무국장도 "국가인권위원회는 다시 '인권'을 말해야 한다"며 "장애인들의 참정권에 대한 정당한 요구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3월 20일 대구시선관위는 12개 선거구 584곳 투표소에 장애인의 투표를 지원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발표 내용은 ▷원칙적 1층 투표소 설치 ▷장애인 통로 등 편의시설 설치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향유도 차임벨 설치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화통역사 투표소배치 ▷모든 투표소에 장애인용 기표대 설치 ▷모든 투표소에 시각장애인용 투표보조용구 비치 ▷모든 투표소에 투표안내 도우미 배치(투표소마다 4인, 2300명 배치)였다.

그러나 대구시선관위 관리과 권기천씨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차임벨과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화통역사 10개 투표소, 지체장애인을 위한 투표보조인은 44개 팀, 88명을 배치했다"며 "장애인 참정권 보장을 위한 각종 지원을 했지만, 모든 투표장에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을 설치하지 못해 유감스럽다"고 했다. 이어, "장애인 유권자들의 소중한 한 표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해마다 시설을 증강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장애인차별진정서 "우리도 시민이다. 장애인도 민주주의의 주인이다"(2012.4.17 국가인권위 대구사무소 앞)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장애인차별진정서 "우리도 시민이다. 장애인도 민주주의의 주인이다"(2012.4.17 국가인권위 대구사무소 앞)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2008년 4월 제정된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장애인 고용, 교육, 재화와 용역 제공, 사법.행정절차 서비스와 참정권, 성, 가족.가정.복지시설 이용에 있어서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편, '420장애인차별철폐대구투쟁연대'는 오는 19일 대구시청 앞에서 '장애인차별철폐대구집중결의대회'를 연 뒤,  20일 서울에서 열리는 '장애인차별철폐집회'에 참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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