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머니 아버지는 통합진보당을 찍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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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택진 칼럼] "219만여명의 마음...뼈를 깎는 심정으로 혁신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어머니와 아버지는 평생을 노동하며 사셨다. 홀이 딸린 단칸방에 나와 여동생 포함한 네 식구가 월세로 살았다. 부모님은 의자수리를 하셨다. 회사, 공장, 가게, 배, 택시, 룸살롱 등의 고장 난 의자, 소파를 수리하셨다. 일을 더 빨리 하기 위해 한 움큼 못을 입에 넣고 자석망치를 입에 갖다 대며 못을 붙여 망치질을 하셨던 아버지시다. 망치질을 잘못해 손톱이 깨지고 손가락을 다쳐가며 아들딸을 대학까지 보내신 분들이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 지금  회사의 경비로 2교대 하루 열 두 시간 일하시며 90여만 원 정도의 월급을 받으신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경기도의 한 아파트촌 두 평 남짓한 가게에서 야채장사를 하고 계신다. 5시에 일어나셔서 새벽시장에서 신선한 야채를 사고 이른 아침부터 장사를 하시는 두 분은 밤 10시가 넘어서야 일을 마치신다. 비와 눈, 추위와 더위를 가리지 않으시고 일하시고 앉을 공간 하나 없는 곳에서 하루 종일 서서 일하신다. 예순을 훌쩍 넘긴 연세에 비하면 두 분이 하는 노동은 가히 살인적이다. 당신들은 손님들을 늘 웃음으로 대하시고 건강하게 돈을 벌 수 있는 것에 대해서 감사하게 생각하신다.

 나와 아내의 어머님, 아버님은 이번 국회의원 총선거 비례대표 선거에 통합진보당에 투표하셨다. 과거 학생운동을 했고 그 연장선상에서 진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자식들의 권유도 받아 들이셨고, MB정부의 실정과 새로운 정치세력에 대한 기대이기도 하셨다.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 오기 전 살던 아파트의 같은 동 같은 층 아주머니들과 아내는 친하게 지냈다. 사글세로 살고 비행기 소음에 공장지대에 있는 아파트였지만 아내는 그 곳의 아주머니들과 허물없는 이웃으로 지냈다. 커피를 마시고, 술도 한잔씩 하고, 아이들 교육, 남편과 친정 시댁 이야기에 수다 꽃을 피우며 지냈다. 어려운 형편에도 아내를 꿋꿋이 버티게 해 준 힘이다. 이사 와서도 가끔씩 친정 다녀온다며 한나절씩 그 아주머니들과 얘기를 나누고 놀다 왔다. 조선일보를 받아 보는 아주머니도, 대안이 없다며 한나라당만 찍어 오던 아주머니도 이번 선거에 통합진보당에 투표하셨다. 논리가 아니라 함께 하는 삶으로 보여준 아내의 설득이었다.

 4.11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에게 투표한 219만 8082명.
그 중에 나와 아내의 부모님, 정을 준 동네 아주머니들이 있다. 노동으로 정직하게 한 생을 살고 계신 존경하는 부모님과 오늘도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고 있는 우리의 이웃들이다. 유시민, 이정희, 심상정, 노회찬 같은 유명정치인의 이름이 아니어도 민주주의, 평화, 노동, 인권과 같은 진보적 의제가 아니어도 이름 없는 당원들 이름 없는 진보적 시민들 새로운 세상을 바라는 사람들이 219만 8082명의 마음을 만든 것이고 13명의 국회의원을 만들어 준 것이다. 이 분들이 지금의 통합진보당 사태를 어떻게 보고 계실까? 나는 두렵다.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선거와 관련한 사건을 하나씩 알수록 하나의 과정을 거칠수록 분노와 허탈함이 교차한다. 숱한 의혹 속에 ‘팩트’는 아직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고, 그 많은 다양한 주장 속에 합의는 도출되지 못했으며, 회의를 물리력으로 막는 비상식이 벌어졌고, 전국 운영위는 비밀카페를 만들어 표결처리했다. 전국운영위는 스무 시간이 넘는 동안 그들은 당원의 명예와 국민의 눈높이를 언급했고, 진상규명의 책임자 처벌의 선후차를 따졌으며, 사과와 사퇴에 대해 논했지만 그 시간만큼 또 국민들은 등을 돌렸다. 그들은 공식적인 석상에서 말이라도 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침묵하고 있다. 그리고 그 침묵하는 다수가 등을 돌리는 무서운 소리가 들린다.

통합진보당 전국운영위원회(5.4-5) / 사진.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통합진보당 전국운영위원회(5.4-5) / 사진.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선거관리를 부실하게 한 통합진보당에게도, 현장투표의 잘못된 관행을 개선하지 못한 곳곳에 있던 그들의 무성의함과 불성실함에도, 개인이든 조직이든 부정한 방법을 동원한 이들에게도, 자기세력의 잘못은 덮어두고 상대세력의 잘못은 부각시키는 이들에게도, 자신의 손으로 뽑은 대표들의 회의를 막아선 당원들에게도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도대체 무엇을 하고 싶은가?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가? 더 어디까지 떨어지고 싶은가? 당을 구하는 비판이 아니라 특정세력을 죽이기 위한 비난이 눈에 보이고, 저 마다 ‘00파’라 이름 붙여진 꼬리표를 달아 서로를 공격하는 이전투구의 모습만 넘쳐난다. 비례대표 선거과정의 문제뿐만 아니라 이를 해결하는 과정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옳고 그름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1994년 어느 겨울...
총학생회 선거를 경선으로 치르던 당시 나는 단과대학 학생회장이었다. 단대학생회장은 특정 선본에 관여할 수 없으므로 선거운동을 할 수 없었지만 친하게 지내던 과학생회장들과 임원들에게 내가 지원하는 후보에 대해 말하고 선거 당일에도 점퍼 주머니 안쪽으로 손가락을 보이며 지원했다. 나와 나의 집단이 옳다는 믿음이 우리가 총학생회를 잡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졌고, 이런 생각이 공정한 위치에 있어야 할 나를 특정세력의 비밀선거운동원처럼 행동하게 했다. 얼마나 많이 얼마나 깊숙하게 개입했나는 문제로 경중을 따질 것이 아니고 그렇게 생각했고 그렇게 행동한 것 자체가 이미 문제였던 것이다. 돌아보면 학생운동의 과정에 이런 식의 생각과 행동은 운동의 상층부에 있던 사람들에게 상황을 달리하면서 수시로 나타나게 되었던 것 같다.

“어느 것 하나 내 모습이 아닌 것이 없고 누구도 아닌 내게 먼저 손가락을 짚어보게 된다. 그래서 지금은 아무 말도 못한다. 모든 현실에 지나온 과거에 내가 있다.”는 누군가의 글귀에 나 또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성찰하지 못한 진보의 모습이 지금의 사태를 만들었다.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선거로 드러났지만 꼼꼼히 들여다보면 진보의 어두운 이면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진보세력이 커지고 확장될수록 사람들은 ‘속살’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수구보수언론들도 더욱 노골적으로 치밀하게 공격할 것이다. 분열적이고 패권적인 정파의 모습, 자기와 자신의 세력만 옳다는 오만함, 구체적인 일상의 잘못된 관행을 개선하지 못한 불성실함, 시민들과 괴리되어 있는 그들만의 문화...이런 문제로 인한 사고는 진보가 헌신과 희생, 피와 땀으로 일궈온 과정을 한 방에 무너뜨릴 것이다. 억울할 것이다. 단식과 농성, 수배와 구속으로 이어진 풍찬노숙하며 보낸 그 헌신의 세월, 뜨거운 감동으로 눈물 흘렸던 인간애의 그 아름다웠던 과정이 무시되고 ‘분열’과 ‘패권’만을 일삼는 세력으로 새누리당과 비교되는 이 처참한 현실이 억울할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어떤 말로도 누군가를 설득할 수 없는 상황이 돼 버렸다.

 통합진보당은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한 점 남김없이 ‘팩트’를 있는 그대로 구체적으로 조사 발표하는 진상규명이 필요하고, 이에 기반한 책임의 범위와 수준을 정해 국민들의 눈높이에서 가장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할 것이고, 뼈를 깎는 심정으로 혁신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가져야 할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이 그들 스스로 정한 당헌과 당규에 따라서 민주적으로 이뤄줘야 함은 물론이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세월보다 더 길고 오랜 시간 동안 더 낮고 가까운 곳에서 ‘침묵하는 다수’의 얘기에 귀 기울이고 함께하며 회초리를 맞아야 할 것이다.

 이번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선거사건의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들을 범진보세력이 함께 자기자신과 자신의 단체에 비추어보는 ‘성찰’이, 심판으로 평론하며 해결방법을 주장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생산적인 일이 될 것이라 믿는다.

 오늘 고향에 계신 부모님들께 전화를 드려야겠다. ‘죄송하다고...믿고 지켜 봐 주시라고...’





[오택진 칼럼] 5
오택진 /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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