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 대표의 사퇴와 진보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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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택진 칼럼] "스스로에게 회초리를 대는 아픈 '성찰의 시간'이 절실하다"


 19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며칠 남겨두고 여러 가지 불미스러운 얘기들이 들려온다. 관악을 지역구 야권연대 후보단일화 여론조사에서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의 실무진이 여론조사 대응관련한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이 그 중의 하나다. 이 사건이 뉴스를 타고 전해지고 여론은 통합진보당과 진보진영 전체에게 새누리당의 행태와 뭐가 다르냐며 매섭게 반응했다. 야권연대의 일 주체인 민주통합당은 관악을 뿐만 아니라 여론조사에서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지역에 후보들을 다시 공천하는가 하면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에게 책임을 지라며 강하게 압박했다.

사람들의 눈은 이정희 대표의 거취에 쏠렸다. 비록 실무진의 실수이지만 정치 도의적 책임을 지고 깔끔하게 사퇴하고 야권연대를 복원해야 한다는 입장, 실무진의 잘못이므로 실무진의 경질에서 해결하고 이정희 대표는 끝까지 완주해야 한다는 입장이 있었다. 결국 이정희 대표는 23일 후보등록 마지막 날 사퇴 기자회견을 했다. 민주통합당은 공천자를 다시 사퇴시켰고 야권연대는 복원되고 있다. 이정희 대표의 후보직 사퇴로 관악을 여론조사에서 있었던 이정희 대표의 실무진의 잘못으로 시작된 야권연대 파기조짐은 일단락되었다.

 뉴스는 다시 잦아들고 ‘사퇴하라’, ‘버티라’고 웅성거리던 사람들도 이정의 대표의 결단에 박수를 치고 있다. 이렇게 이 사건은 정리되고 있는데 나는 소위 진보 개혁적 입장을 가지고 활동하는 사람들에게 남은 몫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정희 대표의 고뇌에 찬 결단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 되겠는가 앞으로도 진보가 구태를 행하는 일은 정치 도의적으로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는가? 하는 질문에 쉽게 ‘그렇다’고 대답하기 어렵다.

<한겨레> 2012년 3월 23일자 1면
<한겨레> 2012년 3월 23일자 1면

 그동안 진보진영에서도 국민들의 지탄을 받는 행위들이 있었다. 우리 사회에서 오랫동안 지배력을 행사해왔던 정치권력, 재벌권력, 언론권력에 비하면 ‘새 발의 피’지만 잘못은 잘못이다. 뇌물, 성폭행, 음주운전, 편법행위 등 언론을 통해 보도된 진보적 단체 소속의 사람들의 잘못이다. 도덕적으로 정치적으로 완전무결한 사람만이 진보적 주장을 하고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니 어쩌면 불가피한 것일 수도 있다. 한계와 오류를 가진 똑같은 사람이지만 우리 사회의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다양한 진보적 의제를 가지고 활동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일반의 시각은 늘 정권의 부도덕함과 파렴치함에 대해 비판한 진보정당, 진보진영에 대해 더 놓은 기준과 잣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청문회에서 각종 불법과 탈법을 매섭게 비판한 사람과 세력이 스스로 그런 문제를 가지고 있다면 어떻겠는가? 스스로의 얼굴에 묻은 때는 두고 남의 얼굴에 묻은 때만 욕하는 사람에게 어떤 신뢰로 보낼 수 없음은 분명하다.

 주장의 옳음과 이론의 탁월함만으로 진보가 민심을 얻을 수 있었다면 몇 번이라도 집권했어야 했다. 말과 주장 이면에 숨겨져 있는 의도가 따로 없고, 행동과 행태 또한 원칙 상식 진보 그 자체일 때...그래야 반 이명박의 반사 이익으로가 아닌 진보의 실력과 꿈에 대한 뜨거운 지지로 또 한 발짝을 전진할 수 있다. 언론에 드러난 이정희 의원 측 실무진의 잘못 뿐만 아니라, 여러 곳에서 잘못된 정치행태들이 들려온다. 진보진영이라고 모두 좋은 사람이 아니며, 이기기 위해 부적절한 방법을 동원한 것은 그것의 효과와 상관없이 이미 우리가 극복해야 할 구태정치이지 않은가? 곳곳에 땀 흘려 정직하게 진보를 일구고 있는 사람들과 진보의 미래를 꿈꾸는 시민들에게 관악을 여론조사 문자메시지 뉴스와 여러 곳에서 들여오는 낡은 정치행태는 또 한 번의 상처일 것이다. 공적인 권력의지에는 그 만큼의 책임이 따라야 하며 과정에서 지켜야 할 원칙 또한 엄격해야 함은 물론이다. 눈앞의 승리를 쫓기 위해 편법을 동원하다가 민심을 잃을 수 있다. 오직 이기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추잡스러운 행동을 너무도 많이 봐왔다. 국민들은 정해진 ‘룰’을 지켜 공명정대한 선거를 통해 당선된 민의의 대표를 뽑을 것이다. ‘진보’와 ‘보수’의 선택 이전에 ‘원칙과 상식’이 우선함은 물론이다. '진보의 승리'는 과정도 결과도 승리여야 한다.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 측을 향해 쏟아지는 SNS 등에서도 많은 만들이 있었다. 그 중에서 하나는 그래도 새누리당, 민주통합당 보다는 백번 낫다는 것이다. 그동안 두 당이 보여준 작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왜 이정희 대표가 사퇴해야 하느냐는 주장이었다. 진보정당이 다른 정당들 보다 ‘덜 나쁘다’는 것으로 국민의 민심을 얻으려 한 것이 아니라면 억울하더라도 이런 주장은 삼가야 한다. 저 물건은 흠집이 많이 났고 나는 흠집이 이제 조금 났으니 나를 선택하라고 주장할 것인가? 소비자들은 흠집이 없는 양질의 상품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대중에게 노출되어 있는 정치인으로 이정희 대표 실무진의 잘못은 드러났고 이정희 대표는 책임졌다. 과정에 심판자로 배심원으로 다양한 주장을 펼친 진보의 ‘입’들이 있었다. 주장도 할 수 있고 의견도 개진할 수 있다. 그러나 주장과 의견의 홍수 속에 성찰은 빈곤해 보인다. 각자가 책임지고 있는 진보의 영역, 삶의 영역에서 책임질 일은 없었는지 아프게 돌아보아야 한다. ‘사퇴하라’, ‘버텨라’는 입바른 평론가의 주문사항이 아니라면 함께 우리 사회를 책임져 나갈 입장에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자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이런 유사한 일이 또 일어날 가능성은 곳곳에서 얼마든지 있다. 말을 아끼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 스스로에게 회초리를 대는 아픈 ‘성찰의 시간’이 진보에게 절실하다. 사퇴한 이정희 대표에게 부끄럽지 않으려면.





[오택진 칼럼] 4
오택진 /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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