획일화된 여론과 지역언론의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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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기념관'...언론통폐합 피해자, 영남일보.CBS 보도는?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 대구지역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한 말입니다. 국회의원, 시장, 도지사를 비롯한 자치단체장, 광역의원까지. 거의 100%가 새누리당 옷을 입고 있습니다. '획일화된 여론 지형에 반론'을 제기하거나, '동일한 집단끼리 짜고 치는 고스톱'에  대한 저항은 애시당초 '부질없어' 보입니다. '새누리당의 집단 여론'에 동조하지 않으면 '왕따'당할 것 같은 우려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고, 시민들의 '저항'의지도 점차 약해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한겨레> 2012년 6월 19일자 14면
<한겨레> 2012년 6월 19일자 14면

6월 한달 내내 전두환씨와 관련된 뉴스가 끊이질 않습니다. △ 육사 사열 논란 △ 국가보훈처 소유의 88골프장에서 VIP대접을 논란에 이어 이번엔 △ 그의 모교인 대구공고에서 '전두환 기념관' 논란 까지.

전두환씨가 누구입니까? 1997년 4월 17일 대법원에서 12가지 죄목으로 무기징역과 함께 추징금 2,205억원을 선고받은 중범죄자입니다. 그 12가지 죄목을 찾아봤더니 △ 반란수괴죄 △ 반란모의참여죄 △ 반란중요임무 종사죄 △ 불법진퇴·지휘관계엄지역수소이탈죄 △ 상관살해죄 △ 상관살해미수죄 △  초병살해죄 △ 내란수괴죄 △내란모의 참여죄 △ 내란중요임무종사죄 △ 내란목적살인죄 △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죄(뇌물) 등입니다.

'29만원'이라는 유행어만 남기며 추징금 납부도 '나 몰라라' 한 채 반성의 기미는 전혀 없이 거리를 마구 활보하고 다니는 전 씨에 대해 지역사회가 이리도 조용한 이유는  '동일한 집단끼리 짜고 치는 고스톱', 그들만의 '침묵의 카르텔'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시민사회의 반발이나 저항이 있다곤 하지만, 그 파장은 매우 약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구경북 사회가 '획일화된 여론', '저항감 약화'라는 큰 병을 앓는데 가장 큰 책임은 언론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언론은 세상을 보는 창이라고 했고, 깨어있는 언론이 있어야 시민들의 의식도 함께 성숙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지역언론은 이런 본연의 모습에 충실했을까요?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TK정권의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했던, 민주주의 역사로 본다면 최악의 독재 정권이었던, 결국 법의 심판을 제대로 받았던 전씨가 2000년대 범죄자로 살면서 보인  '비상식적' 행동에 지역언론이 집요하게 주목한 적이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다른 언론에서 '논란'으로 다룰 때마다 한번씩 관심을 가졌다가 곧 지면에서 사라지고 마는 '1회성' 뉴스는 전두환씨의 행위가 '어떤 맥락을 가지고 있는지', '지역시민의 의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지역사회 정서와 감수성을 어떻게 획일화 시키는지'에 주목하지 않습니다.

'육사 사열', '88골프 VIP' - 논란의 핵심은 '하나회'


6월 내내 일부 진보언론이 대대적으로 다루었던 전씨의 행보는 '학연, 지연으로 똘똘 뭉친 한국사회'의 또 다른 모습 중에 하나이며, 민주주의 역사를 되돌리는 '5공 세력' 특히 '하나회' 세력의 부활을 의미합니다.

'하나회'가 어떤 조직입니까? 1963년에 전두환, 노태우, 정호용, 김복동 등 대한민국의 육군사관학교 11기생들의 주도로 비밀리에 결성한 조직이며 육군사관학교의 각 기수를 내려오면서 주로 경상도 출신 소장파 장교들을 대상으로 3-4명씩 회원을 계속 모집했었죠. 1979년에는 육사 11기, 12기생을 중심으로 신군부로 발전하여 12.12 군사반란, 5.17 쿠데타를 주도하고 5.18 광주민주화운동진압 과정에도 참가했으며, 1995년 12.12 및 5.18 사건 재판에서 신군부 핵심 인사들이 유죄 판결을 받기도 했습니다. (자료 : 위키백과 요약)

<오마이뉴스> 2012년 6월 13일
<오마이뉴스> 2012년 6월 13일

하나씩 풀어볼까요?

'육사 사열 논란' 의 핵심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육사발전기금 200억 달성 기념으로 초청된 160명 중 한명이었던 전씨가 이 행사에 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육사발전기금 이사장 대부분이 '하나회' 출신이라는 점입니다.

오마이뉴스 보도를 보겠습니다. 군사평론가 김종대 <디펜스21> 편집장이 13일 <오마이뉴스> 팟캐스트 방송 <이슈 털어주는 남자(이털남)>에 출연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육사발전 기금회 이사의 면면을 보니 거의 다 '하나회' 출신이 맡고 있다"며 "군사 쿠데타를 이끌었던 '하나회'는 문민정부의 군내 사조직 금지 조치 아래 해체 수순을 거쳤지만, 정무용씨(육사 11기), 김진영씨(육사 17기) 등 하나회 출신 멤버들이 육사발전기금 이사장을 역임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또한 김 편집장은 "육사 행사에 전두환씨가 400명의 일원으로 간 것이 아니"라며 "과거에 진급과 보직을 독식했던 특정 군맥, '하나회'가 아직도 육사 동문회를 장악하고 있으면서 모금행사를 벌였고, 거기에 전두환이라는 상징적 인물을 초빙한 것"이라는 주장도 싣고 있습니다.

'국가보훈처 소유의 88골프장 VIP대접'건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부분의 언론은 '경호 논란'을 언급했지만, 이 또한 '육사, 하나회' 조직의 끈끈한 애정을 한번 더 확인해준 것입니다. <한겨레>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골프장 사장인 김용기씨는 육사 30기 출신의 하나회 멤버이고, 박승춘 현 국가보훈처장도 육사 27기 출신이라고 합니다. 덧붙여, 하나회 관계자들 대부분이 경상도 출신이라는 점이죠. 

대구공고 '전두환 기념관' - 논란의 핵심은 'TK충성 경쟁'


대구공고 '전두환 기념관'도 같은 맥락입니다. 육사, 하나회 등 학연·지연으로 똘똘 뭉쳐 과거  권력 달콤함의 부활을 바라는 그들 간의 '줄서기' 경쟁에 대구공고 총동문회도 동참하고 나선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총동문회 사무실에는 그 학교 설립자 등의 사진이 있거나, 학교 교훈이나 이념 등을 글로 써서 액자로 걸게 되어 있지만, 대구공고 총동문회 사무실에는 전두환씨 사진이, 총동문회 회장실에도 그가 직접 쓴 글과 사진 액자 등이 벽을 장식하고 있었습니다.

전씨에 대한 불(?)같은 애정은 결국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립고등학교 내에 '전두환 역사관'을 기획하게 되었고,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가능했던 이유는 우동기 교육감과 대구시 교육청의 방조와 승인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 TNT뉴스 > 2012년 6월 21일 / 사진 제공. 대구공고 총동문회
< TNT뉴스 > 2012년 6월 21일 / 사진 제공. 대구공고 총동문회

지난 5월 30일 이날 '대구공고 역사관 및 전두환 자료실' 개관식에 전두환·이순자씨와 나란히 참석했던 우동기 교육감, 김관용 경북도지사 등이 카메라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미소는 전씨 추종세력에게는 '무한한 신뢰'를, 민주주의 염원 세력에겐 '불쾌한 기억'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5공 '언론 통폐합' 피해자 - 영남일보, 대구CBS 보도 아쉽다.


'5공 군부 독재의 정점, 무기지역의 중범죄자'란 꼬리표를 달고 있는 인물에게 보인 일부 TK관계자들의 '충성 경쟁', 이를  '해프닝' 정도라며 '별 일 아닌데, 왜 이러지?'라는 식으로 뉴스맥락을 단순화 시킨데는 지역 언론의 몫이 큽니다. 특히 <영남일보>와 대구CBS의 보도는 무척이나 아쉽습니다.

과거 군부독재시절 최고 전성기를 누렸던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 언론들은 전두환씨를 둘러싼 논란을 거의 무시해왔었습니다. 그들은 '친노 세력의 부활'은 걱정하지만 '5공 세력의 부활'에는 관심을 끄고 있습니다. 반면 <한겨레신문>, <경향신문> 등에서 집중적으로 '전두환 현상'을 분석하고 있지만, 지역민들의 여론을 형성하기에는 부족합니다.

<한겨레> 2012년 6월 20일자 2면(종합)
<한겨레> 2012년 6월 20일자 2면(종합)

언론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리는 '독재세력' 부활을 단순한 '사건', '1꼭지의 뉴스', '논란'으로 취급하면 안됩니다. 그 현상이 가지는 의미, 한국사회 민주주의를 한단계 성장시키기 위해 죽어간 수많은 민주투사들, 독재하에서 겪었던 민중의 아픔 등에 더욱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특히 5공시절 언론통폐합이라는 정책하에 <영남일보>는 폐간을, CBS는 '뉴스보도' 기능을 잃었습니다. 독재정책의 피해자로써, 쓰린 기억을 안고 있는 그들이라면 이 문제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과연 현실은 그렇습니까? 제대로 저항하지 않는 두 언론사의 보도행태를 보면서 '시민들의 저항의식'이 무디어 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 아닐까요?






[평화뉴스 미디어창 190]
허미옥 / 참언론대구시민연대 사무국장 pressange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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