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없는 세상을 위하여

다산연구소
  • 입력 2012.08.24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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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연구소] 염무웅 / 핵의 위험은 시대와 국경을 넘어선다

 
  한반도를 지배해온 강대국 프레임
 
  오래전부터 많은 한국인에게 원자폭탄은 고마운 물건이라는 인상이 박혀 있었다. 미국이 떨어뜨린 원폭 두 발로 그토록 버티던 일제가 항복했고 그 덕분에 우리가 식민지에서 해방되었다는 신화가 이 나라를 지배해왔기 때문이다.

  6•25전쟁을 겪은 후에는 미국에 대한 의존이 더 심해져서, 오늘날도 이른바 북핵위기가 고조될 때마다 사회 일각에서는 미군 전술핵의 재도입을 추진하자느니, 독자적으로 핵개발을 모색할 때가 됐다느니 하는 터무니없는 공론이 일곤 한다. 1970년대 중반 박정희 정부에서 은밀하게 시도했던 핵무기 개발계획도 김진명의 베스트셀러 소설『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1993) 탓인지 실체적 사실과 무관하게 일반 대중의 애국주의 정서를 자극하는 기표가 되고 있다.

  이 신화의 주술에서 벗어나는 것은 당연히 쉬운 일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두말할 것 없이 8•15 이후 오늘까지 미국이 한국인의 삶에 있어 거의 절대적 규정력을 발휘해왔기 때문이다. 해방과 분단, 6•25전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우리가 우리 역사의 주인다운 구실을 제대로 못했다는 것은 부끄럽지만 자인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고, 휴전 직후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1953년 10월 1일 체결, 1954년 11월 18일 발효)도 알다시피 단지 군사 분야에서의 외적 규정이었을 뿐만 아니라 정치•경제•문화 등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한국인의 행동과 사고를 제약하는 심리적 규범이 되어왔다. 따라서 핵문제를 바라보는 미국 지배층의 관점은 그때그때 필요한 약간의 수정을 거쳐 그대로 한국인에게 전수되고 한국인의 내면에 정착되었다.

  이달의 책으로 소개하려는 정욱식 지음『핵의 세계사』(아카이브 2012)는 그러한 주류의 고정관념 아닌 다른 눈으로 핵의 역사를 보고자 한다.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 원자탄 제작을 담당했던 맨해튼 프로젝트부터 최근의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북한 김정은 체제의 등장에까지 이르는 핵문제의 전개과정을 우리의 주체적인 시각에서, 그리고 평화지향적인 입장에서 연대기적으로 추적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저자는 과거의 정치•군사•국제관계를 지배했던 강대국의 프레임들이 어떻게 여전히 한반도의 현재를 움직이는 힘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그리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나가자면 그 프레임의 극복이 어떤 방향에서 이루어져야 하는지 모색하고 있다.

  핵무기와 핵발전은 얼마나 다른가

  이 책의 전체 내용과 주제는 프롤로그 <왜 ‘핵’인가>에 잘 요약되어 있다. “저는 핵전쟁이나 지구온난화와 같은 재앙으로 인류가 1000년 이내에 멸망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p.13) 첫 페이지를 열면 이 인용문으로 프롤로그가 시작되는데, 이것은 영국의 유명한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가 2012년 1월 8일 70세 생일을 맞아 위기의 세계를 향해 던진 경고라고 한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서는 1000년은커녕 100년 앞도 장담할 수 없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어쨌든 인류문명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는 위기감의 근원에는 다른 무엇보다 핵문제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문제의식의 출발점이다.

  그런데 이 책이 문제삼고 있는 것은 ‘무기’로서의 핵뿐만 아니라 ‘에너지’로서의 핵이다. 저자는 핵의 ‘군사적 사용’과 ‘평화적 이용’, 즉 핵무기와 핵발전 사이에는 기술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 경계선이 모호하다고 지적하며, 따라서 그는 “핵무기와 에너지에 대한 통합적인 시각과 철학이 요구된다”(p.15)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선진적이고도 근본적인 관점이다. 이것이 설득력을 갖는 것은 저자 자신도 핵에 대해 안이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고백을 통해서이다. 평화운동가로서 핵무기 없는 세계를 위해 노력하면서도 그는 ‘핵의 평화적 이용은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p.21)고 여겼다는 것이다. 그러던 그가 후쿠시마 참사를 계기로 ‘깨끗하고 안전한 핵’이란 관념은 미신에 불과함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책의 대부분 내용은 한반도와 동아시아를 둘러싼 강대국들 간의 반세기가 넘는 군사적•외교적 게임에서 핵무기가 얼마나 오용되고 남용되어왔는가를 연대기적으로 추적하는 데 바쳐지고 있고, 그 과정에 에너지로서의 측면이 어떻게 직•간접적으로 개입되어 있는지는 세심하게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 전체 30장으로 이루어진 이 저서 가운데 20장•21장•27장에서만, 그러니까 미국 스리마일 원전(1979.3.28), 소련 체르노빌 원전(1986.4.26), 일본 후쿠시마 원전(2011.3.11)에서와 같이 중대한 사고발생의 경우와 관련해서만 에너지 문제가 다루어지고 있다는 것이 그 점을 말해준다.

  핵의 군사적 이용과 ‘평화적’ 이용 사이에 어떤 내적 연관이 있는지, 그리고 양자를 통합적 시각에서 바라본다는 것이 현대사의 심층을 투시하는 데 어떤 의의를 가질 수 있는지 하는 것은 내 생각에는 이 책이 문제로서 제기하기는 했으나 충분히 해명하지 못한 과제이다. 그 점을 1953년의 시점으로 돌아가서 살펴보자.

  당시 미국 아이젠하워는 한국전의 종식을 공약으로 내걸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는데, 한국의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그가 어떻게 전쟁을 끝내고자 했는가이다. 후일 국무장관 델레스는 “우리는 이미 전장에 원자폭탄을 운반할 수 있는 조치를 취했다”고 증언했고, 아이젠하워의 보좌관 셔먼 애덤스는 1953년 봄에 “오키나와에 핵폭탄을 배치했다”고 말했다(p.172) 한다. 아이젠하워가 집권과 동시에 계획한 공약이행의 방법은 적지에 원폭을 투하하는 것, 적어도 원폭투하의 위협을 가하는 것, 다시 말하면 맥아더가 공공연하게 주장했던 방법이었다. 다행히 그 무렵 미국과 중국을 전쟁터에 더 붙잡아두고 싶어하던 소련의 스탈린이 죽음(1953.3.5)으로써 미국에 휴전이 성립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이젠하워의 지시를 받은 합참과 국무부는 정전협정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인 12월 7일 전쟁 재발시 북한•만주•중국에 “재래식 폭격과 함께 핵공격을 가해야 한다”는 공동보고서를 작성했다.(p.200)

  그런데 믿을 수 없는 사실은 바로 이튿날(1953.12.8) 아이젠하워가 유엔총회에서 ‘평화를 위한 원자력’을 발표하면서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는 점이다: “핵시대는 지구촌의 모든 사람들이 우려해야 할 속도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중략) 인간의 경이적인 발명품이 죽음이 아니라 생명에 기여할 수 있도록 모든 열정과 정성을 다해 노력할 것입니다.”(p.266) 나 같은 사람의 머리로는 이 훌륭한 평화주의적 언명과 냉혹한 핵공격 준비명령이 어떻게 한 사람에게서 거의 동시에 나올 수 있는지, 그 날카로운 대위법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오늘 이명박의 입을 통해서까지 되풀이되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란 발상이 그 화려한 수사 이면에 정반대의 것을 내장하고 있을지 모른다고 의심하는 것은 그러므로 결코 신경과민이 아니다.

  한국은 제2위의 원폭 피해국가

  원자폭탄은 출발부터 모순을 안고 있는 무기였다. 제2차 세계대전 직전 히틀러의 독일에 앞서 원폭개발에 착수하도록 권유하는 편지를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보낸 아인슈타인의 선의를 의심할 수는 없다. 맨해튼 프로젝트의 책임자 오펜하이머와 그 밖의 많은 과학자들이 원폭개발에 진력한 것도 히틀러의 광란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과학자의 책임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미국이 실제로 핵무기를 사용하는 것을 보고 자신의 실수를 자책했고(p.30) 오펜하이머는 핵실험의 무서운 결과 앞에서 자신이 ‘세계의 파괴자’가 됐다고 괴로워했다.(p.37)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의 가책은 그들 두 사람만의 것이 아니었다. 당시 일부 과학자들은 핵개발에 관한 “미국의 비밀주의와 핵독점이 또 다른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고, 이를 예방하기 위해 핵개발 사실을 소련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공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p.46) 또, 그들은 1945년 4월 유엔창설을 위한 회의가 열릴 예정이라는 소식에 “루스벨트가 유엔창설을 추진한 목적이 핵시대를 맞이해 핵을 주권국가가 아닌 유엔의 통제 하에 두려는 데 있다”(p.81)고 추측했다. 참으로 순진한 생각이었다. 원자폭탄은 실험에 성공하는 순간 과학자들의 손을 떠나 원폭개발을 배후에서 조종한 정치가•군인•자본가들의 계산에 맡겨지게 되었다.

  너무도 잘 알려진 일이지만, 1945년 8월 6일에는 히로시마에, 사흘 뒤에는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되었다. 그리고 며칠 후 일제가 항복했는데, 우리는 그것이 원폭 때문이라고 오랫동안 교육받았다. 개인적으로 내가 이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것은『히로시마의 그늘』(윌프레드 버체트 지음, 표완수 옮김, 창작과비평사 1985)이라는 문고판 저서에 의해서였다. 저자인 버체트(W. Burchet, 1911~1983)는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언론인으로, 2차대전 직후 히로시마 피폭현장에 최초로 들어가 취재한 기자들 중의 한 사람이고 한때는 6•25전쟁에도 종군한 적이 있다고 한다.

  오래전에 읽어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이 별로 없지만, 미국이 2차대전 말기 원폭의 실전(實戰)효과를 실험하기 위해 일본의 은밀한 항복교섭을 뿌리치고 폭격을 강행했다는 버체트의 논지는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그런데 이번에『핵의 세계사』를 보니, 그 밖에도 더 결정적인 요인으로서 소련의 참전이라든가 종전(終戰)의 명분을 얻기 위한 미•일의 이해의 일치 등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관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핵의 세계사』에서 내 의표를 찌른 문장의 하나는 “한국이 일본에 이어 세계 2위의 피폭국가임에도 국제사회는 물론 한국인조차 이러한 사실을 잘 모른다”(p.62)는 것이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로 7만 명이 넘는 조선인 사상자가 발생했는데도 말이다. 이들 가운데 약 4만 명은 즉사했고 2만여 명은 귀국했다.”(p.61) 우리들 대부분은 이 사실을 어느 정도 알고는 있지만, 평소에 거의 잊고 지낸다고 자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한국이 제2위의 피폭국가’라는 단도직입적 문장은 잠든 의식을 일거에 깨우친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평소의 이러한 무지와 망각이 한국인 원폭피해자들을 이중의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던 것 아닌가. 그들은 일본인 피폭자와 달리 한국과 일본 어느 나라 정부로부터도 아무런 보상이나 치료를 받지 못했던 것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오래전에 간행된 저서 한 권을 상기하게 된다. 그것은 박수복(朴秀馥) 선생의『소리도 없다 이름도 없다』(創元社 1975)라는 책이다. 박수복은 1950년대 말 부산일보 기자로 일하다가 1962년 문화방송 개국과 함께 PD로 근무했고 후에는 방송극작가로 활약한 분이다. 그는 문화방송에서 논픽션드라마 <절망은 없다> 제작을 맡으면서 이 프로에 8년간이나 전국 각지의 원폭피해자들을 취재해 다루었는데, 그 취재노트를 정리한 것이 이 책이다.

  제목 앞에는 ‘한국 원폭피해자 30년의 기록’이란 문구가 부제처럼 붙어 있으나, 이 책은 엄격한 역사적 기록이 아니고 피해자 개인들의 피폭경위와 귀국 후 고난을 받아적은 일종의 논픽션이다. “우리 박 여사는 피폭자와 같이 웃고 울고, 문장 한 줄 한 줄마다 피가 맺히고 정(情)이 서리고 한숨이 섞여 있다. 그러면서도 이 일에 가장 삶의 보람을 느낀다고 하던 작가 박수복. 이 한 권의 책은 우리의 삶의 역사요 세기의 증언이다.” —이것은 한국원폭피해자원호협회 전(前)회장 신영수(辛泳洙)씨가 책에 붙인 서문의 한 구절이거니와, 이 구절에는 피폭자들의 한맺힌 신음뿐만 아니라 저자 박수복이 그들에게 쏟은 처절한 애정도 함께 배어 있어 감동을 준다.

  여기서 다시『핵의 세계사』로 돌아오면, 나는 박수복의 책에서 정욱식이 소개한『체르노빌의 목소리』(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김은혜 옮김, 새잎 2011)를 연상한다. 히로시마의 피해자와 체르노빌의 피해자들, 본질적으로 한 끈으로 이어져 있는 그들의 수난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증언을 생생하게 기록한 두 언론인이 모두 여성이라는 것도 우연이 아니지만, “사고가 발생한 지 벌써 20년이나 흘렀지만 내가 증언하는 것이 과거인지 또는 미래인지 자신에게 묻고 있다”는 알렉시예비치의 발언(p.280, 재인용)은 그야말로 핵에 대한 통렬한 고발이다.

  북핵의 뿌리는 한국전쟁에 있다

  『핵의 세계사』의 가장 중요한 문제의식은 핵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한국전쟁을 새롭게 조명해보고 한국전쟁을 통해 형성된 대결구도가 이후 지금까지 한반도 현실을 어떻게 왜곡된 방향에서 지배해왔는지 살피는 것이다. 저자도 지적하다시피 6•25전쟁에 관해서는 그동안 수많은 연구와 증언이 나와 있지만, 그러나 아직 해명되지 않은 의문들 또한 허다하다. 저자는 비밀 해제된 미국 문서를 추적하고 외국 연구자들의 업적을 분석하여 이 전쟁에 관한 몇 가지 새로운 결론을 확인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가령, 전쟁발발을 결정지은 가장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는 핵위력에 대한 트루먼과 스탈린의 ‘엇갈린’ 맹신이었다든지, 지금도 여전히 현안으로 되어 있는 “미국의 대북 핵위협과 북핵의 뿌리는 바로 한국전쟁에 있”는데 그 “한반도 핵문제의 기원은 바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있다”(p.18)는 것들이 그것이다. 저자가 소개한 AP통신의 기사내용도 이러한 문제의식과 같은 맥락 위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

   AP는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을 맞아 미국의 비밀해제 문서를 분석해 다음과 같은 말을 전했다. “1950년대부터 오바마 행정부에 이르기까지 미국은 반복적으로 북한에 대해 핵무기 사용을 고려해왔고 계획해왔고 위협해왔다.” 그러면서 “미국의 핵위협은 북한에 핵무기를 개발하고 보유할 구실을 주고 있다. 북한은 이러한 기본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한,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결론지었다.(p.400~401)
 
  이 시각을 좀더 확장하면 미국의 일방적인 핵공격•핵위협 정책은 2차대전 시에는 일본에, 1960~70년대에는 베트남에, 그리고 21세기에는 이라크와 이란에 적용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특히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미국뿐만 아니라 소련•중국 등 다른 강대국도 자국의 이익과 안전을 위해 언제든 한반도를 희생의 제물로 삼을 용의가 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맥아더•트루먼•아이젠하워가 모두 핵무기 사용을 배제하지 않았고 클린턴도 한때 북한 영변에 대한 폭격 직전까지 갔었음은 다 알려진 사실이지만, 마오쩌둥도 “언젠가 미국과의 일전이 불가피하다면 한반도를 전쟁터로 삼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 것”(p.110)이라고 생각했으며, 스탈린 역시 “독소불가침조약을 통해 나치독일이 영국과 싸우도록 했던 것처럼 정전협정 지연을 통해 미국과 중국이 계속 싸우게 만드는 것이 유리하다”(p.156)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는 사실은 이 나라의 대통령 이승만이 원폭투하 가능성을 시사한 트루먼의 기자회견(1950.11.30)을 전폭 환영하고, 트루먼이 실제 사용을 머뭇거리자 “왜 원자폭탄을 쓰지 않는가!”라며 워싱턴을 질타했다는 것이다.(p.154)

  핵의 위험은 시대와 국경을 넘어선다

  정욱식이『핵의 세계사』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또 하나의 핵심은 원전이든 원폭이든 그 위험성은 국경을 무의미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후쿠시마의 예에서 보듯이 원전 밀집지역이 되어가고 있는 동북아에서는 한 곳의 사고는 곧장 지역과 국가의 경계를 넘게 되어 있다. 저자가 ‘동북아에너지협력기구’의 창설을 제안하는 것(p.363)은 그 때문이다. 특히 한국의 원전은 외국과 달리 주로 대도시(부산, 울산 등) 인근에 세워져 있는데다 대피시설도 대피훈련도 빈약하여 만약의 경우 엄청난 피해를 낼 수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무모하게도 끊임없이 원전 확대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게다가 원전가동에서 나오는 폐기물은 어찌할 것인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인데, EBS(교육방송) <국제다큐영화제>(EIDF 2012)에서 덴마크의 미카엘 매센(Michael Madsen) 감독이 만든「영원한 봉인」(Into Eternity)을 상영한다. (2012. 8.19) 이 작품은 세계 도처에서 매일 발생하는 고준위 핵폐기물의 안전한 저장문제에 대해 다룬다. 핀란드 정부는 얼어붙은 삼림지대의 지하 500미터까지 암반을 뚫고들어가 앞으로 10만년 동안 어느 누구도 접근할 수 없게 설계된 공간(온칼로)에 핵폐기물을 가두려는 공사를 한다.

  매센 감독은 핀란드 방사능안전청 고위관리를 포함한 북유럽의 관련전문가들에게 핵폐기물의 성질과 그 안전한 저장에 관해 다양한 질문을 던지고, 전문가들은 폐기물에 대해서뿐 아니라 인류의 과거와 미래에 대해 깊은 성찰이 담긴 대답을 한다.

  그들은 말한다: 오늘의 문명이 50년, 100년 후에는 지금의 모양대로 존속하겠지만 300년, 500년 후에는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다. 따라서 그보다 훨씬 더 오랜 세월이 지나 지금 만들고 있는 핵폐기물 지하저장소가 우연히 발견되었을 때, 그 미래의 인간들에게 이 저장소의 치명적 위험성을 알려줄 방법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그 미래의 인간들은 외모와 감각, 지능과 언어 등 모든 면에서 오늘의 인간과 전혀 달라져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류문명의 묵시록을 듣는 듯한 무섭고도 음산한 메시지이다. 그런데 지금 세계에는 벌써 최소 25만 톤의 핵폐기물이 쌓여 있다지 않은가!
 

[다산연구소 - 이달의 책] 2012-08-24 (다산연구소 = 평화뉴스 제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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