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7일 구미국가산업단지 4공단의 한 회사에서 불산이 누출되는 사고를 통해 5명의 근로자가 사망하고, 많은 부상자가 발생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일어났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비극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사고 수습에 관여한 소방관, 경찰관, 공무원 들과 인근 지역 주민들과 공단 근로자들의 건강피해로 이어지고 있다. 필자는 구미시의 한 종합병원의 직업환경의학과에 근무하는 의사이다. 평소 나의 진료실에는 직업병 또는 환경성 질환으로 하루 한 두 명 정도의 환자가 찾는다. 그런데, 이번 사건 이후 진료실에는 하루 수백명의 환자들이 오시고 계신다. 불산이 피부에 묻어 화상을 입는 환자들은 간간히 경험하였지만, 이번 처럼 대규모로 지역사회가 불산에 노출된 상황은 나와 동료 전문의들도 처음 겪는 상황이다.
불산은 화상을 입었을 때 나타내는 독특하고 치명적인 특성으로 의사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염산, 질산과 같은 일반적인 산(acid)들은 피부에 닿으면 당장 통증이 나타나지만, 불산의 경우, 농도가 진하지 않은 경우에는 처음에는 아무 증상이 없다가 수시간 후에 극심한 통증이 나타나고, 체내로 침투하여 칼슘을 떨어뜨리고 치명적인 손상을 입힌다. 이는 불산의 독특한 화학적 특징 때문인데, 불산은 인체 침투성이 강하고 한번 침투하면 체내에서 부식성과 더불어 칼슘과 결합하여 심각한 반응을 일으켜 치명적인 건강장애를 유발한다. 불산의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불산 화상을 입을 경우 작은 용량으로도 치명적인 후유증을 남길 수 있다. 호주에서는 100mL의 불산에 다리에 화상을 입은 근로자가 즉시 세척하고 구급차가 올 때까지 수영장에서 상처를 세척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목숨을 잃은 일도 있었다. 한 두방울의 화상에도 손가락을 절단하기도 하고, 손바닥 만한 크기의 화상에도 생명을 잃을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한 물질이다.
화학물질의 독성은 급성과 만성을 구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악명높은 불산의 급성 독성에 비하면 만성 독성은 유명세가 다소 떨어진다. 불산의 만성 독성은 뼈나 치아에 불소가 침착되는 골 불소증, 치아 불소증이 대표적인데, 이는 불소이온 농도가 높은 물을 음용수로 장기간 복용한 주민들이나, 알루미늄 제련근로자들과 같이 불산에 장기간 노출된 근로자들에게서 나타나는 질환이다. 중금속, 벤젠, 염화탄화수소 등 다른 악명높은 화학물질에 비하면 인체의 만성독성은 상대적으로 심각하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매스컴에서 연일 보도되는 바와 같이 농작물이 타들어가고 가축들이 병들어가는 봉산리, 임천리 주민들의 상황을 보면 불산의 위력이 저 정도나 되는구나 하면서 나도 놀라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 그 가스를 마신 주민들이 자신들의 건강을 걱정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실제로 구미에서는 사고 발생지역 주민들과 인근 공단의 많은 근로자들이 많은 신체 증상으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우리병원에만 벌써 1,000명 이상의 구미시민들이 다녀가셨다. 환자분들은 대부분 눈, 코, 목 등의 호흡기의 자극 증상, 피부증상이나 소화기증상을 주로 호소하신다. 몇 몇 심하신 분들은 천식과 비슷하게 기침이 심하고 숨쉬기가 불편하다고 호소하기도 하신다. 그리고, 대부분의 환자들은 자신의 건강에 대한 걱정과 더불어 내 몸에 들어온 불산이 뼈를 녹인다고 하던데 그것이 사실이나며 걱정된 눈빛으로 물어보신다. 최근 매스컴에서 보도하는 불산의 위험성은 대부분 불산이 가지고 있는 악명높은 급성 독성에 근거한 것들이며, 대다수의 시민들이 걱정하는 저농도의 일회성 노출로 인한 건강장애는 조금 과장된 면이 없지 않다는 것이 나의 느낌이다. 물론 이런 사건이 세계적으로 흔한 사례가 아니므로, 장기적인 합병증의 존재 여부는 정밀한 역학조사를 통해 밝혀져야 하겠다.
그런데, 환자 진료를 보면서 필자가 가지는 한가지 우려가 있다. 그것은 환자들이 호소하는 불편한 증상이 생각보다 오래 지속될 지도 모르겠다는 불안감이다. 한번의 급성 불산 가스 노출에 의해 유발된 시민들의 경미한 자극 증상은 쉽게 치유될 수 있다. 그러나, 비록 저농도 일지라도 반복적으로 그 자극에 노출된다면 증상은 쉽게 호전되지 않을 것이고 아주 오랜 기간 고통을 가져다 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인근 마을에 퍼진 불산의 농도가 얼마인지 정확한 장비로 측정하지도 않은 채, 대피한 주민들을 성급히 돌아오게 한 그 누군가의 판단이 몹시 원망스럽다. 또한, 사고가 난 바로 다음날에도 생산일정을 맞추기 위해 출근해서 마스크를 씌워가며 작업을 계속하게 했다는 일부 회사들의 태도에는 기가 막힐 따름이다.
이번 사건과 비슷한 사례인 1987년 미국 텍사스의 불산 누출 사건을 조사한 문헌에서 살펴보니, 불산 가스에 노출된 일부 시민들은 2년뒤의 조사에서도 높게는 20% 정도가 가슴 답답함 등의 호흡기 증상을 계속 호소하였다고 한다. 정유 공장의 크레인이 무너지면서 불산 탱크로리의 밸브를 파손시켜 일어난 텍사스의 이 사건에서 그들은 사고 7분 만에 방재조치를 시작했고, 20분후에는 반경 800미터내의 주민 3000여명을 즉시 대피시켰다는 것이다.
우리는 아직 후진국에 살고 있음이 분명하다. 언제나 생산과 발전과 성장에 밀려 안전과 건강은 뒷전이다. 사고 당일 옆 공장에서 가스가 터져 매캐한 냄새가 공장까지 밀려와도 내일 납품 일정 때문에 잔업까지 했다며 진료받으러 오신 근로자들이 불만과 기침을 같이 내뱉는다. 또 늘 그렇듯이 지방 자치 단체는 주먹 구구식이고, 중앙정부는 지방에 관심이 없다. 서울에서 이 사건이 터졌으면 사고처리가 이와 같았을까? 일어나지 말아야 할 불행한 사건이 발생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하나의 불행한 사건이 더 큰 비극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는 것이다. 검지관, PH 페이퍼 같은 간이 검사 장비가 아닌 제대로 된 불산 농도 측정이 진작에 이루어졌어야 하고, 지금부터라도 그 결과가 투명하게 모두에게 공개되어야 할 것이다. 이미 정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상황이다. 정부기관이 측정한 결과가 마을에 불산에 검출되지 않으니 돌아오시라고 해도 주민들이 쉽게 돌아오시지 않을 듯하다. 지금 부터라도 모든 상황과 정보가 시민들에게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할 것이다. 향후의 이루어질 주민 건강조사, 환경 영향 조사, 피해 보상 등이 피해주민 당사자들 뿐만 아니라 시민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여 모든 구미시민이 납득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불신은 불안과 공포를 증폭시키고 그것은 또 육체적 고통을 악화시킨다. 피해 주민들에게 신뢰감을 주고 안정감을 주는 것은 주민들의 불안을 약하시키고, 그럼으로써 그들의 육체적 고통도 경감하게 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기고]
김진석 / 순천향대학교 구미병원 직업환경의학과 부교수. 대경인의협 회원
|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