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쌀은 어디로 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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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홍철 칼럼] 대선 후보들, "농업과 식량은 시장논리에 따라서는 안 된다"고 선언해야


쌀 생산량 떨어졌으니 쌀 수입 서두르자고?

대선 시기든 아니든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언제나 맨 앞에 내거는 화두는 ‘경제’이고 ‘민생’이다. 결국 ‘먹고사는 문제’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중요하다고 그렇게 강조하면서, 정작 풀뿌리 백성들이 무엇을 ‘먹고’ 어떻게 ‘사는가’에 대한 고민은 너무도 부족한 것 같다. 자주 하는 말이지만, 우리는 휴대폰이나 자동차 따위를 먹고사는 것이 아니라, ‘밥’을 먹고 ‘연료’를 때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마치 산업과 무역지수, 지엔피 따위의 통계, 경제성장률 따위가 곧바로 ‘밥’이나 ‘연료’의 문제인 것처럼 정치인들과 기업인들, 학자와 전문가들, 그리고 언론은 날이면 날마다 호들갑을 떨지만, 그것은 실상 기득권 세력의 이해관계를 ‘국민경제’라는 이데올로기로써 포장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러한 ‘시장논리’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대다수 풀뿌리 백성들의 정신까지도 지배하기 때문에 그러한 말잔치는 대개 ‘약발’이 통한다.  

그런데 정작 우리의 목숨이 달린 이 ‘밥’의 문제가 지금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다. 지난 달, 올해 쌀 생산량이 32년 만에 최저치인 407만여 톤에 머물 것이라는 통계청의 전망이 발표되자마자, 기획재정부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수입쌀 조기 판매를 포함한 ‘쌀 수급안정 대책’을 발표했다.

정부가 발표한 대책은 한국 농업의 현실과 세계 식량 사정 등 여러 객관적 사실들에 비추어 볼 때, 너무도 안이한 미봉책에 불과하다. 이처럼 중차대한 상황 앞에서, 정부와 여야 정당, 그리고 대선 후보들이 우리 농업의 현실과 식량주권 문제, 그리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국민들의 밥상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근본적 대책을 세우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서울신문> 2012년 10월 16일자 19면(경제)
<서울신문> 2012년 10월 16일자 19면(경제)
지난 달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올해 쌀 생산량은 407만4천 톤으로 지난해보다 15만 톤 이상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벼 재배면적도 지난해보다 0.5퍼센트 가량 줄어 84만9천 헥타르가 될 것이라고 한다. 기획재정부는 이러한 예상을 토대로 쌀값 안정과 쌀 수급 안정에 나서기로 하고, 수급 안정용으로 61만9천 톤을 시장에 공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필요할 경우 지난해 생산된 쌀 8만8천 톤을 방출해 시장 안정을 도모하기로 했다.

뿐만 아니라 밥쌀용 수입쌀 20만7천 톤의 도입을 서둘러 올해 말부터 판매할 수 있도록 하고, 현재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3만6천 톤을 조기 판매하기로 했다. 이 와중에, 한동안 비소 검출 문제로 논란이 되었던 미국산 쌀의 안전성 문제는 슬그머니 사라져 버렸다.

토건개발로 사라져가는 농지

그런데 쌀 생산량 감소는 올해만의 특수한 상황이라고 할 수 없다. 물론 태풍 볼라벤과 덴빈의 영향으로 단위면적당 생산량이 지난해보다 3.0퍼센트 줄어든 탓도 있겠지만, 쌀 재배면적은 그동안 지속적으로 감소해 왔다. 2007년부터 2011년까지 5년간 전용된 논 면적만 하더라도 5만3,968헥타르에 달하며, 유휴지도 해마다 증가해 왔다. 식량자급률이 26퍼센트에 불과한 처지에, 지난 3년간 주식인 쌀마저도 자급률이 80퍼센트대로 떨어졌다.

9월 29일 농림수산식품부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경지면적은 지난 20년 사이 41만 헥타르 감소했다. 전체 농지의 20퍼센트가 각종 개발사업으로 사라진 것이다.

1990년 210만8천 헥타르에서 2000년 188만8천 헥타르로 줄더니, 2009년 173만7천 헥타르, 2010년 171만5천 헥타르, 지난해 169만8천 헥타르로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2011년 한해 동안에도 1만3천329 헥타르의 농지가 농업 이외 용도로 전환되었다. 지난 20년간 개발로 사라진 농지 면적은 평으로 환산하면 12억평. 평촌 신도시 800개 가까운 면적의 농지가 개발로 사라진 셈이다.

토건개발 사업 중심의 정책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이상, 쌀을 비롯한 식량을 생산하는 농경지는 앞으로도 계속 줄어들 것이다. 2008년 발표된 국토해양부의 국토이용효율화방안에 따르면 2020년까지 전국토의 3퍼센트를 신규 개발하여 도시면적을 전국토의 9.4퍼센트로 높인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이를 4차 국토종합계획에 반영하였다. 더욱 문제인 것은 신규 개발하는 국토면적 3퍼센트 중 2.8퍼센트가 농지라는 점이다. 결국 현재 그나마 남아 있는 농지의 15퍼센트 이상을 또 개발하는 계획이 착착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만 보더라도 쌀 생산량의 감소는 결코 올해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이 나라 농업정책이 의도적으로 농업을 줄이고 없애려고 하는 것도 쌀 생산량 급감의 중요한 원인이다. 예를 들면, 논에 벼를 심지 않으면 현금으로 보상해주는 휴경보상제나, 벼 대신 콩이나 옥수수를 심으면 보상을 해주는 ‘논소득기반다양화사업’ 같은 경우, 정부의 의도된 쌀 생산 감소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 

세계 식량위기, 이미 현실이다

곡물을 비롯한 세계 식량가격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기후변화, 사막화, 농지전용 등으로 전세계 식량 생산량이 감소할 뿐만 아니라, 거대자본에 의한 곡물 투기화까지 가세해 지구촌 식량시장이 날로 불안정해지고 있다. 거기다 대부분 석유에 의존해 온 현대농법은 석유생산 정점을 지난 오늘날, 총체적인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석유를 먹고살았다고 할 정도로 현대농법은 석유 없이는 유지될 수 없는데, 국제에너지기구의 보고서에서도 인정하고 있듯이, 석유생산 정점은 이미 2006년에 지나와 버렸다. 지금부터 석유생산량은 가파른 내리막길로 치닫게 될 것인데, 그로 인한 가장 심각한 타격은 농업과 식량생산에서부터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종합적 고려 없이, 국민의 생명과 사회안정에 직결된 주식의 생산이 급감하고 있는데도, 수입쌀 조기 도입과 판매를 대책이라고 내놓는 것은 너무도 안이하고 무책임한 자세다. 더구나 쌀시장 완전 개방과 한미FTA 등 자유무역 논리에 바탕을 둔 통상정책을 이대로 방치해 둔다면, 우리의 밥상은 소수의 다국적 곡물기업의 손에 좌지우지되는 참으로 위험천만한 상황에 내던져지고 말 것이다.  

농지를 지키고 농민의 소득을 보장함으로써 우리 농업을 보호하고 살리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기다. 그런데 대선 주요 후보들의 농업-식량 정책공약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대체로 너무도 피상적이고 허술하다. 특히 석유생산 정점, 기후변화, 국제적 식량위기, 세계화 체제의 파탄 등 지구적 차원에서 도래하고 있는 농업과 식량위기 문제에 대한 근본적 인식이 부족하다. 그동안 우리 농업과 농촌을 거덜내고 농민을 낭떠러지로 몰아온 농정의 근본적 문제점들에 대한 반성과 비판이 철저하지 못한 것도 문제다.

이제 대선 후보들은 “농업과 식량정책은 결코 시장논리에 따라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그것을 국민들 앞에 선언해야만 한다. 특히 토건세력과 결별하지 않는다면, 결국 이 땅의 농지는 모조리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아래로 사라져 버릴 것이라는 점을 똑똑히 내다보고, 토건세력을 청산하기 위한 결연한 정책의지를 가다듬어야만 한다. ‘경제민주화’도 ‘복지’도 ‘안보’도, 우리 농업과 국민들의 밥상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앞서지 않는다면, 결코 국민들로부터 신뢰받지 못하는 공허한 구호에 불과할 것이다.






[변홍철 칼럼 17]
변홍철 / <하이하버연구소> 소장,  전 《녹색평론》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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