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한파...거리에서 만난 삶의 현장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13.01.04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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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원 위해 폐지 줍는 노인, 도로에서 양말파는 할머니, 잉어빵 굽는 아저씨


4시간 폐지를 주워 2천원을 번 노인, 도로에서 10년째 양말을 파는 할머니, 잉어빵 굽는 아저씨. 겨울 한파 속에서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길거리로 나선 이들이다.

3일 대구 최저기온 영하 10.4도를 기록했다. 높은 빌딩들이 들어선 대구 수성구 범어동 골목길 사이에는 지난해 연말 동안 내린 눈이 녹지 않아 겹겹이 쌓여있었다. 눈 위에는 아직 장사를 시작하지 않은 포장마차들이 나란히 줄지어 있었다. 

오후 1시쯤. 범어4동 아파트촌으로 골목길로 들어갔다. 종이박스를 가득 실은 수레 5대가 덜덜덜 소리를 내며 인근 고물상으로 모여들었다. 흰 머리가 희끗희끗한 60-70대 노인들이 오전 내내 모은 종이를 팔기 위해 고물상을 찾았다.

오전 내내 주운 폐지를 고물상에 팔러온 이 할머니(2013.1.3)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오전 내내 주운 폐지를 고물상에 팔러온 이 할머니(2013.1.3)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이모(69.범어2동) 할머니는 이날 오전 8시부터 수성구 범어동 일대 가게를 돌아다니며 버려진 종이 박스를 주웠다. 할아버지는 암 수술 후 집에서 쉬고, 아들은 벌이가 없다. 두 딸은 결혼 후 친정을 잘 찾지 않는다. 때문에, 소일거리로 시작한 폐지 줍는 일은 이제 할머니 생업이 됐다.

4년 동안 할머니는 계절을 가리지 않고 저녁 11시에서 자정까지 폐지를 모으기 위해 범어동 빌딩 숲을 헤매고 다녔다. 덕분에, 치과를 포함한 인근 빌딩 폐지는 할머니 몫이 됐다. 그러나, 할머니는 이날 오전 4시간 동안 주운 폐지로 겨우 2천원을 벌었다. 킬로그램당 60-70원 하는 폐지로는 하루 1만원도 벌기 힘들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한 달 내내 일해도 20만원 남짓이다.           

게다가, 겨울이면 아무리 껴입어도 추위가 가시지 않았다. 주유소에서 받은 장갑을 끼고 목도리를 두르고 모자를 써도 차가운 바람은 할머니를 고통스럽게 했다. 이날 할머니는 찬바람 때문에 눈물까지 흘리며 수레를 끌고 다녔다. 또, 자동차 경적이 울려도 귀가 잘 들리지 않아 교통사고도 날 뻔 했다.

학원가 차도에서 폐지가 담긴 수레를 끌고 있는 이 할머니(2013.1.3)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학원가 차도에서 폐지가 담긴 수레를 끌고 있는 이 할머니(2013.1.3)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특히, 좁은 도로에서는 운전자들이 할머니를 향해 욕설을 하기도 했다. "길도 좁은데 한쪽으로 붙어라, 방해하지 마라", "할매, 바빠 죽겠는데 왜 도로로 다니는교". 할머니는 연신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사과를 했다. 몇 년 전에는 너무 생계가 어려워 수성구청을 찾아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있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자식이 있어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할머니는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공무원도 다 뜻이 있어서 그렇겠지. 구청에 도움을 요청한다고 해도 나 같은 사람 다 구해주면 나라는 뭘 먹고 살겠노"하며 웃었다. 또, "어렵게 살지만 나를 돕기 위해 박스를 모아주는 사람도 있고, 가족도 곁에 있다"며 "돈이 없다고, 못산다고 '힘들다'는 말만 하고 살순 없지 않겠냐"고 씁쓸히 미소지었다.

도로가에서 양말을 팔던 할머니도 있었다. 강자희(76.범어4동) 할머니는 범어동 남부시장 인근에서 10년째 양말 장사를 해왔다. 할머니는 공장에서 도매가격으로 양말을 떼와 1-2천원짜리 양말을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이날도 할머니는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돗자리를 펴고 양말을 팔았다.

점심시간이 돼도 추운 날씨 때문인지 길거리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적었다. 할머니는 종이박스를 바람막이로 세우고 양말을 깔아놓은 돗자리가 고정되도록 의자와 고추장 통을 올려놨다. 색깔도 다양한 수백켤레 양말을 할머니는 부드러운 손길로 정리했다. "공장 물건이라 값도 싸고 질도 좋다"며 "단골도 여럿 있다"고 말했다.

10년째 남부시장 인근 도로에서 양말을 팔고 있는 강 할머니(2013.1.3)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10년째 남부시장 인근 도로에서 양말을 팔고 있는 강 할머니(2013.1.3)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그러나, "요즘에는 대형마트다 뭐다 다 헐값에 양말을 파니 장사가 예전만 못하다"며 "요즘에는 하루에 10켤레 파는 것도 힘들다"고 털어놨다. "얼마 전 크리스마스에 하루 동안 100켤레 판 것이 제일 많이 번 날"이라며 "매일이 크리스마스였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언제까지 장사할 거냐'는 질문에는 "살아 있는 동안 계속 이렇게 돈을 벌어야 자식들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을 것"이라며 "구청에서 쫓아내지만 않으면 계속 하지 않겠냐. 내가 일을 그만두는 건 가들한테 달렸지 뭐..."라고 씁쓸해 했다.     

한 차례 매서운 바람이 골목에서 불어오자 할머니는 모자 위에 두른 스카프를 두 손으로 꼭 움켜쥐었다. 오전 10시부터 장사를 해서인지 두 손이 빨갛게 부르텄다. 미안한 맘에 양말을 10켤레 샀다. 할머니는 덤으로 1켤레 더 넣어주셨다.

앞서, 오전 11시. 범어4동 한 병원 빌딩 옆 그늘에 이른 시간 문을 연 포장마차가 눈에 띄었다. 신모(49.북구)씨의 잉어빵 포장마차였다. 신씨는 지난 밤 사이 얼어붙은 수도를 녹이느라 분주했다. 옆 건물에서 뜨거운 물을 빌려와 들이 붓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물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범어4동 한 병원 빌딩 옆 신모씨의 잉어빵 포장마차(2013.1.3)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범어4동 한 병원 빌딩 옆 신모씨의 잉어빵 포장마차(2013.1.3)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신씨는 "당분간 집에서 물을 가져오거나 빌려 써야 할 것 같다"며 "불편해도 참아야 겠다"고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곧 신씨는 두터운 겨울 잠바 위로 앞치마를 메고 잉어빵을 굽느라 닳고 닳은 구멍 난 장갑을 꼈다. 사용했던 도구도 정리하고 요리 재료도 다듬었다. 잉어빵 3개 1000원, 곤약오뎅 3개 1000원, 일본식 오뎅 2개 1000원, 부산오뎅 2개 1000원이라고 적힌 메뉴판이 소박해 보였다.

신씨는 원래 서울 롯데호텔, 힐튼호텔 등에서 일하던 잘나가던 요리사였다. 음식 만지는 일을 좋아해 직업으로까지 삼았다. 그리고, 개인 가게까지 차렸다. 그러나, 지난 97년 외환금융위기(IMF)로 형편이 어려워져 가게를 접었고, 이후 다시 차린 가게마저도 잘되지 않았다. 경제적 어려움은 결혼생활도 힘들게 했다. 결국 신씨는 부인과 이혼까지 이르렀다.

때문에, 지난 2007년 고향 대구로 내려와 겨울에는 잉어빵, 여름에는 샌드위치를 파는 포장마차를 열게 됐다. "그 동안 힘들었다. 그러나, 음식을 다시 만질 수밖에 없었다. 그것 말고 재밌는 걸 찾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수성구가 잘사는 동네라 그런지 몰라도 잉어빵이 많이 팔린다"며 "먹고 사는데 지장은 없다"고 말했다. 대신 "겨울 추위 때문에 조금 힘들다"며 "물만 안 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가끔 방송국에서도 찾아와 '인간극장' 비슷한 걸 찍자고 하는데 부담스러워 거절했다"며 "뭐가 그렇게 잘난 사람이라고...나 같이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냐. 보통 사람들 다 이렇게 산다"고 했다. 이어, "열심히 일해서 다시 일어설 것"이라며 "언제가 다시 내 가게를 차리고 싶다"고 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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