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언론, '대구 10월 사건' 외면 언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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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지법 "국가배상" 판결 / 대구MBC 보도...대다수 TK 언론 '냉담'


2013년 새해 들어 역사 관련 의미있는 소식들이 많이 들립니다. 대선 이후 한국현대사 서적 판매가 급증했고, 방송에서는 5일부터 어린이 대상 역사애니메이션을 새롭게 편성하고, 성공회대 김동춘 교수는 최근 <대한민국 잔혹사>를 출간했습니다.

공교육영역에서 현대사 교육을 외면하고 있지만, 정작 민심은 현대사 책 읽기 열풍이 불고 있는데요.

이런 흐름과 맥을 같이 하는 걸까요? 대구의 숨은 역사 ‘10월 사건’이 2010년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규명 위원회’에서 ‘대구 10월사건 관련 민간인 희생 진실규명결성서’를 채택했고, 올해 1월 23일 부산지법에서 10월 사건 유족자에게 국가가 손해배상하라는 판결도 나온 상황입니다.

<한겨레> 2013년 1월 22일자
<한겨레> 2013년 1월 22일자

대다수의 언론은 한국역사 또는 현대사, 대구 10월 사건에 대한 법원 판결에 대해 주요하게 다루면서 이 새로운 현상에 다양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데요. 유독 대구지역 언론만 냉담합니다. 특히 대구 ‘10월 사건’과 관련된 뉴스는 대구MBC를 제외하고는 대다수 언론이 외면했습니다.

20~30대 여성, 한국현대사에 빠지다.

<경향신문>이 지난 1월 12일 「2030여성들이 현대사에 왜 빠져들까」에 따르면 대선이후 한국현대사 판매가 급증하고 있고, 그 흐름을 20~30대 여성이 주도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현대사 서적 판매증가율이 대선전과 비교했을 때 10~30배로 급증하고 있고, 주요 책은 <지금 이순간의 역사>, <살아있는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현대사>, <대한민국사>,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 등입니다.

<경향신문> 2013년 1월 12일자
<경향신문> 2013년 1월 12일자

‘현대사 도서 읽기 추세’가 도드라지는데 대해 한 출판사 대표는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역사는 ‘과거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아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여러 문제의 기원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아는데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점에서 대선 이후 현대사 서적의 인기에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이고 있습니다.

김동춘, 항일운동가가 빨갱이로 몰려 제거된 과정 추적

같은 맥락에서 김동춘 교수의 <대한민국 잔혹사>도 함께 읽어볼만합니다.

이 책을 소개한 한겨레신문 길윤형 기자는 “이 책은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이뤄진 국가폭력의 연원을 불우했던 우리의 지난 현대사에서 찾는다.”라며 “지은이는 철거민 5명이 숨진 용산참사 동영상을 보며, 1948년 벌어진 제주도 4·3 사건과 여순 반란, 그리고 한국 전쟁기의 빨치산 활동을 떠올린다. 한국의 군과 경찰은 권력에 복종하지 않는 시민들을 적으로 간주해 왔기에, 용산참사를 겪고 나서도 사죄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적으로 간주했던 이들은 60~70년 전엔 대부분 “군인과 경찰의 폭력을 피해 산으로 피신한 주민이거나 여성”일 뿐이었고, 오늘날엔 폭력적인 개발사업 탓에 도무지 살길이 막막해져 망루에 올랐던 평범한 가장들이었다.“고 제시하고 있습니다. 즉 책임은 본인의 것이 아니라 집단의 것이기에, 끔찍한 국가범죄를 저지른 이들은 “상관의 명령이므로 복종했을 뿐”(1951년 거창 학살 책임자 이종대), “나는 철저히 ‘상명하복’ 원칙을 지켰고 조직을 위해 십자가를 졌다”(고문 기술자 이근안)는 말로 책임을 회피해왔다.

<한겨레> 2013년 2월 2일자
<한겨레> 2013년 2월 2일자

개인적으로 꼭 읽고 싶은 부분은 김동춘 교수가 2005년 5월부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의 상임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조사정리했던 자료들인데요. “해방 전엔 항일운동을 했고, 이후엔 지역 유지가 된 이들이 빨갱이로 몰려 제거되는 과정을 서술한 부분”에서 대구경북지역의 숨은 역사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병자호란 이후 300년 넘게 민중의 사랑을 받던 경주 최부자가 누구에 의해 어떤 방법으로 몰락해갔는지 그 역사를 추적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구 10월 사건 희생자, 국가가 손해배상 해야!

이쯤 되면 최근 부산지법에서 국가배상이 필요하다고 판결단 대구 10월 사건에 대해서도 언론의 관심이 집중될 수 밖에 없을 텐데요.

1946년 10월1일 대구 일원에서 일어난 경찰과 민간의 충돌사건으로 유족회 추산 천여명 안팎의 시민이 죽음을 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건입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결정문/ 10월 항쟁 64주년(2010년) 추모식 자료집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결정문/ 10월 항쟁 64주년(2010년) 추모식 자료집

‘10월사건’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불리고 있는데요. 진보성향의 학자는 ‘10월 항쟁’, 언론에서는 ‘10월 사건’ 보수쪽에서는 ‘폭동’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이 사건은 지난 참여정부 때 ‘10월사건’으로 명명됐으며, 2010년 말 활동이 종료된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규명 위원회’는 ‘대구 10월사건 관련 민간인 희생 진실규명결성서’를 채택했었습니다.

이와 관련 10월 항쟁 유족회 이성번 사무국장은 최근 언론과 인터뷰에서 ‘10월 사건’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 이 사건의 발달은 식량 문제였습니다. 미군정이 식량을 강제 수집하면서 농민들의 원성을 샀고, 이 과정에서 미군정이 친일경찰과 친일관료를 앞세우게 되면서 농민들이 애국적 차원에서 식량수집에 저항을 하게 됩니다."
"대구 같은 도심에서는 식량이 제때 공급되지 않아 아사자가 많이 발생하고, 민심이 아주 흉흉했습니다. 특히 대구시민들이 식량문제와 친일경찰문제로 그 때는 민심이 완전히 돌아섰는데요. 이때 10월 1일 파업하던 노동자 두 명이 경찰발포에 의해서 사망하게 됩니다. 이에 대구시민들이 격분하면서 그 시점에서부터 대항쟁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10월 2일 당일 노동자 수 천 명이 대구역과 지금의 시민회관인 대구 공예장으로 몰려나왔고, 부녀자, 어린이까지 쌀을 달라며 대구부청과 도청으로 옮겨 다니면서 시위를 하였습니다. 이 때 경찰의 발포로 노동자 수 십 명이 사망함으로서, 시민과 학생, 노동자 또 부녀자 심지어 어린이까지 수만의 대구시민들이 거리로 나와서 시위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었습니다."


<대구 10월 항쟁 64주년 희생자 추모제>(2010.10.1 대구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 사진. 평화뉴스
<대구 10월 항쟁 64주년 희생자 추모제>(2010.10.1 대구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 사진. 평화뉴스

사건이 발생한지 60여년이 지났고, 당시 ‘빨갱이들의 폭동’으로 폄훼되었던 이 사건 피해자들에게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부산지법 민사8부(재판장 심형섭)는 10월 사건 때 학살당한 정모씨·이모씨의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보상 청구 소송에서 “국가는 정씨와 이씨 유족한테 각각 5억9500만원과 3억9000만원을 지급하라”고 지난 16일 판결했습니다.

이를 보도한 한겨레신문에 따르면 재판부는 “10월 사건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2010년 3월 조사 결과와 법정에 나온 참고인과 관련자의 증언으로 미뤄볼 때 경찰의 불법행위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또 “경찰이 정당한 이유와 적법한 절차 없이 국민을 살해한 것은 국민의 기본권인 신체의 자유와 생명권, 적법 절차에 따라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했다. 공무원들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희생자들과 유족들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명시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정씨의 아들인 정도곤(64)씨는 “한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친척들로부터 ‘빨갱이 자식’이라며 손가락질을 받고 매를 맞아 고향을 떠났다. 정부는 국가가 저지른 잘못을 지금이라도 인정하고 10월 사건 희생자와 유족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전하고 있는데요.

현재 비슷한 소송이 대구에서도 진행된다고 하니, 향후 추이를 지켜봐야할 텐데요.

대구언론, 언제까지 10월 사건 외면할 것인가?


대구MBC 2005년 보도특집
대구MBC 2005년 보도특집
중요한 것은 지역언론입니다. 대구경북권 숨어있었던 역사, 지난 60여년 동안 ‘빨갱이 자식’이라며 손가락질 받았던 이들의 역사를 국가기구와 법원에서 그 진실을 밝히고 있는데, 정작 이 지역언론은 냉담하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2010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에서 ‘대구 10월사건 관련 민간인 희생 진실규명결성서’가 채택되었을때도, 올 1월 16일 10월 사건 희생자에 대해 국가가 손해배상하라는 법원 판결이 내려졌을때도 이 상황을 추적, 보도하고 있는 곳은 대구MBC뿐이었습니다.

대구MBC는 2005년 보도특집 <광복 60주년 대구현대사 재조명>에서 <4.19와 대구><1946년 10월, 항쟁의 도시>를 통해 이 문제를 집중보도했고, 부산지법의 국가배상 판결이 있던 다음날 24일 저녁 뉴스데스크에서도 주요하게 다루었습니다.

대구 언론의 외면

제주4.3, 광주 5.18민중항쟁의 역사의 진실이 밝혀지고, 그 희생자와 유족들의 명예가 회복되는데에는 지역언론의 역할도 큰 부분을 차지했었습니다.

숨겨진 지역역사와 관련된 소식을 지역언론이 아니라, 전국언론 또는 다른 지역언론을 통해 들어야하는 이 상황이, 대구시민으로서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평범한 시민인 저도 이런데, 60여년동안 숨죽이고 살았던 10월 사건 유족분들은 섭섭함이 더 클 것입니다.

한국현대사를 새롭게 공부하겠다는 흐름이 형성되고 있는 시점, 대구지역 숨은 현대사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이 시점에, 대구MBC를 제외한 대구경북권 언론은 참으로 엇갈린 행보를 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평화뉴스 미디어창 219]
허미옥 / 참언론대구시민연대 사무국장 pressange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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