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의 전쟁, 민간인 학살의 진실을 찾아서

다산연구소
  • 입력 2013.08.23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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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연구소] 정지창 /『밤의 눈』(조갑상),『이것은 기억과의 전쟁이다』(김동춘)


 무더위에 숨이 막히는 지난 7월 31일 한낮, 대구시 서남쪽 가창댐 수변공원에서는 한국전쟁 전후에 이곳에서 학살된 8천〜1만 명의 민간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위령제가 거행되었다. 이번 위령제에는 처음으로 대구시장이 보낸 조화 앞에서 시장을 대신한 시청 과장이 원혼들에게 잔을 따르고 절을 올렸다. 해마다 학살터인 댐 주변 외진 곳에서 눈치를 보며 제사를 지내온 유족들은 이제 떳떳하게 위령제를 지내게 된 것을 무엇보다도 기뻐했다.

  제례가 끝난 다음에는 한 여성 무용가가 ‘여옥의 노래’에 맞추어 진혼무를 춤추어 유족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었다. “불러도 대답 없는 님의 모습 찾아서 / 외로이 가는 길엔 낙엽이 날립니다. / 들국화 송이송이 그리운 마음 / 바람은 말 없구나 어드메 계시온지 / 거니는 발자욱 자욱마다 넘치는 / 이 마음 그리움을 내 어이 전하리까.” 이 노래는 1957년에 개봉된 「산유화」라는 영화의 주제가로서(작사 유 호, 작곡 김광수, 노래 송민도) 유족회장인 채영희 여사의 어머니께서 국민보도연맹(이하 ‘보도연맹’으로 약칭)에 가입했다가 이곳에서 학살된 남편을 생각하며 불렀다고 한다.

  이날 위령제에 참석한 한 젊은 시인은 “지금까지 내 고장에서 이런 비극적인 대량학살이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살아온 것이 부끄럽다”면서 뒤늦게나마 이 기막힌 사연들을 작품으로 형상화하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아는 한 한국전쟁 시기의 민간인 학살사건을 다룬 작품은 그렇게 많지 않다. 이른바 거창양민학살사건을 다룬 김원일의 『겨울 골짜기』(1987)와 황해도 신천의 좌우 보복학살사건을 다룬 황석영의 『손님』(2007)이 떠오르는 정도다. 보도연맹 민간인 학살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장편소설은 작년에 부산에서 발간된 『밤의 눈』(조갑상, 산지니)이 처음인 것 같다.

보도연맹 사건을 다룬 최초의 장편소설, 『밤의 눈』

  알다시피 보도연맹이란 이승만 정권이 1949년에 전향한 좌익인사들을 선도키 위해 만든 관변단체로서 지역 할당제로 약 30만 명을 가입시켰다. 그러나 1950년 6·25전쟁이 터지자 적군에 협력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후방 지역에서 보도연맹원들을 예비 검속하여 약 20만 명을 재판 없이 학살했다. 이 문제의 전문적 연구자인 김동춘 교수는 “보도연맹사건이야말로 단군 이래 우리 역사에서 국가 공권력이 저지른 가장 잔혹하고 비인도적이며 반국민적인 범죄”라고 규정한다.

『밤의 눈』(조갑상 저 | 산지니 | 2012.12)
『밤의 눈』(조갑상 저 | 산지니 | 2012.12)
  흔히 보도연맹 관련자들은 국가폭력에 의해 세 번 죽임을 당했다고 말한다. 첫 번째 죽임은 전쟁 전후의 학살이요, 두 번째 죽임은 5·16쿠데타 이후에 유족회를 해산하고 유족회 간부들을 구속하여 처벌한 것이고, 세 번째 죽임은 유가족들을 ‘빨갱이’로 몰아 연좌제로 묶어 ‘불가촉천민’ 취급한 것이라고 한다.

  이 소설은 그동안 밝혀진 사실과 기록을 바탕으로 경남 대진(진영)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사건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입체적이라 함은 1950년 여름에 벌어진 학살 사건만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4·19혁명으로 유족회 활동이 시작된 1960년과, 5·16쿠데타로 유족회 간부들이 반국가 사범으로 구속되고 연좌제에 의해 ‘빨갱이’로 감시와 차별의 표적이 된 시절(1961〜1968), 유신체제가 시작되는 시점(1972)과 유신체제의 몰락을 가져온 부마항쟁(1979)까지 30년 동안 희생자와 생존자, 유족과 후손들이 겪는 죽임의 고통을 생생하게 형상화했다는 뜻이다.

  작가가 진영 지역의 민간인 학살 사건을 소설화한 데는 이런저런 개인적인 동기가 작용했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 사건이 당시 외국 언론과 선교단체를 통해 외부에 알려지고 미국의 압력에 의해 가해자들을 재판에 넘겨 처형함으로써 그 학살극의 전모가 어느 정도 밝혀진 ‘공개된’ 사건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리산 주변 같은 빨치산 토벌 지역이나 접전 지역이 아닌 부산 인근에서 토호들로 구성된 비상대책위라는 비공식 기관이 보도연맹원 등 이른바 좌익 용의자뿐만 아니라 자기들 마음에 들지 않는 한용범 같은 중도인사나 그의 여동생인 중학교 교사 한시명, 남상택 목사 같은 기독교 인사들까지 무리하게 빨갱이로 몰아 학살한 것은 이승만 정권으로서도 변명의 여지가 없는 만행이었으므로 계엄사 군법회의는 지서 주임에게 사형을 언도하고 의용경찰대장과 나머지 관련자들에게 징역 10년과 12년 등 중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지서 주임만 처형되고 나머지는 무슨 수를 썼는지 형 집행정지로 두 달 만에 풀려나와 여전히 관변단체의 간부로서 떵떵거리며 살아간다.

  이 소설의 어느 부분이 사실이고 어느 부분이 허구인지를 따지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작가는 편의상 가공의 지명과 인명을 사용하고 있으나, 소설의 내용은 “정희상 기자의 『이대로는 눈을 감을 수 없소』, 김기진 기자의 『끝나지 않은 전쟁. 국민보도연맹』, 그리고 정부기구인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의 조사자료”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마치 공지영의 소설 『도가니』가 사실과 허구를 적절하게 배합하여 진실을 드러낸 것처럼, 조갑상도 10여 년의 공력을 쏟아 근 60여 년이나 묻혀있던 진실을 드러내는 데 성공하였다.

가해자인 지역 토호들은 여전히 떵떵거리고… 피해자와 유족들은 불순분자로 낙인 찍혀

  이 소설이 앞의 보고서나 취재기, 증언 등의 원자료보다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갔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등장인물들의 생생한 육성과 몸짓을 무대 위에서 형상화하여 보여주기 때문이다. 특히 대진읍의 읍장과 부읍장, 지서 주임과 청년방위대장, 의용경찰대장 등 지역 토호들의 거동과 말투는 잘 만들어진 연극을 보듯이 자연스럽고 실감이 난다. 가해자들을 단순무식한 악마나 살인마가 아니다. 그들은 지역의 유지로서 교활한 술수와 언변, 배타적 친분 관계를 이용하여 “다른 줄에 선 놈들”을 제거하면서 뇌물을 갈취하고 이권을 차지하고, 심지어는 여자들을 성적으로 착취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들은 시류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끈질긴 생명력으로 지역의 유지 행세를 하며 살아간다.

  이에 비해 한용범과 옥구열 같은 피해자들은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도 요시찰 인물로 감시와 탄압을 받으며 숨 한 번 제대로 쉬지 못하고 고달픈 삶을 살아간다. 학살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한용범의 경우, 연좌제 때문에 큰아들은 정부투자기관인 한국전력 채용시험에 합격하고도 신원조회에서 떨어진다. 그래서 막내딸은 교대나 사법대가 아니라 가정대에 보낸다. 얌전하게 대학 마치고 시집이나 가기를 바라서다. 그는 정보과 담당 형사의 채근에 따라 모든 투표에 빠지지 않고 참석해 무조건 찬성표나 1번 여당표를 찍을 수밖에 없다. 부친의 한을 풀고자 유족회 활동에 나섰던 옥구열은 그 일로 옥고를 치르고 불순분자로 낙인찍혀 시장 상인들 사이에서도 왕따를 당한다. 그의 어린 아들은 빨갱이 집안 자식이라고 반공강연회나 반공글짓기 대회에 단골로 불려다닌다. 그리고 같은 반 아이들도 그런 사실을 다 안다.

  유신헌법 국민투표일인 1972년부터 7년이 지난 1979년 부마사태의 시위대를 따라가며 옥구열은 비로소 자유를 호흡한다. 그리고 감격에 겨워 갑자기 눈물이 쏟아진다. “한번 시작된 눈물은 주체할 수 없이 쏟아져 내렸다. 어쩔 수 없이 그는 침례병원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손수건을 꺼냈다. 회한이어서는 안 된다. 내일을 향해 흘리는 눈물이어야 했다. 구름 없이 맑은 밤하늘은 부드러우면서도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이 무한했다. 무한한 건 인간에 대한 신뢰, 자신이 사는 이 세상과 내일에 대한 믿음이었다.(…) 옥구열은 오늘 밤 저 하늘에 단 하나의 마음을 새겨 두고 싶었다. 유족회 일이 반국가 행위가 아니라는 사실이 자기 생전에 밝혀지기를 소원하는 마음.” (앞의 책, 379〜380쪽)

  그런데 한국전쟁 전후의 민간인 학살 사건은 오랫동안 서울의 거대 언론사나 문단으로부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외면당했다. 그나마 처음으로 이 문제를 제기한 것은 ‘낙동강의 파수꾼’으로 불렸던 부산의 소설가 요산 김정한 선생(1908〜1996)이었다. 그는 전쟁 당시 부산형무소에 수감돼 처형장으로 끌려갈 적에 제자인 서북청년단 출신의 군 장교를 만나 목숨을 구했는데, 무혐의로 석방된 다음 수감생활을 묘사한 「옥중회갑」이라는 소설을 썼다. 『밤의 눈』의 작가 조갑상 교수는 요산 선생의 부산문단 제자이고, 민간인학살문제를 끈질기게 심층 취재하여 『끝나지 않은 전쟁, 국민보도연맹』을 엮어낸 부산일보 김기진 기자는 이 신문의 비상임 논설위원이었던 요산 선생의 후배이다.

소설가 김정한 선생의 호통: “차라리 개를 배우자”

『끝나지 않은 전쟁 국민보도연맹- 부산.경남지역』(김기진 저 | 역사비평사 | 2002.05)
『끝나지 않은 전쟁 국민보도연맹- 부산.경남지역』(김기진 저 | 역사비평사 | 2002.05)
  김기진 기자는 이 책의 앞머리(‘책을 내면서’)에서 4·19 직후인 1960년 5월 23일 자 부산일보에 실린 김정한 선생의 「차라리 개를 배우자」라는 제목의 칼럼을 소개하고 있다. 요산 선생의 이 격정적인 글은 4·19 직후 거창양민학살사건의 유족 등이 진상조사와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으나 당시의 민주당 정부와 윤보선 대통령이 소극적으로 나오는 데 대한 분노의 표현이었다.

  「함양 산청 가는 길은 골로 가는 길」이라는 어느 친구의 글이 있었다. 그게 벌써 10년이 지났던가! 6·25 동란 당시 무수한 양민들이 빨갱이로 몰려 무참한 생죽음을 당했거니와 그 가운데서도 지리산 변두리 함양, 산청, 거창의 대학살사건은 이제 와 듣기만 해도 등골이 서늘해진다. 팔순이 넘은 노인들을 비롯해서 주로 부녀자, 어린애, 젖먹이들까지 모조리 빨갱이로 몰아서 한꺼번에 400〜500명 내지 700〜800명씩 피난이다 시국 강연이다 해서 몰고 나와 총화(銃火)와 휘발유로써 쏘아 죽이고 태워 죽였던 것이다.

동족이라 믿었기에 ‘설마’ 하고 끌려 나왔으나 어느 이민족도 일찍이 그렇게는 안 했던 무차별 사살을 했을 때 그들은 조국을 무어라 부르며 쓰러졌을까? 학생 ‘데모’의 뒤를 이어 드러나기 시작하는 전국 방방곡곡의 억울한 죽음들은 마치 원혼의 ‘데모’처럼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차마 조국의 하늘을 쳐다볼 수 없는 우리들의 심정! 광풍에 나뭇잎 떨어지듯 눈에 선한 그들의 선한 모습과 귀에 들리는 듯한 그들의 마지막 비명들 속에서 우리는 너무나 숨 막히는 ‘에피소드’들을 캐어내게 된다.

  그중에 하나! 산청군 어느 두메에서는 대제전이 있은 뒤 한 집에 개와 어쩌다 어머니와 죽음을 동행 못 한 젖먹이만이 남아있었는데 학살의 대사업이 있은 사흘 만에야 이웃마을 사람이 가보았더니 개가 어린애의 젖을 먹이고 있더라고. 이야말로 옛이야기 같은 오늘의 신화랄까? 이 신화 아닌 신화를 듣고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할 것인가? 개의 젖을 빨고 있는 인간 강아지의 슬픈 운명 같은 ‘센티멘탈’한 생각은 뒷날의 이야기로 미루자. 입으로 동포와 조국을 사랑하노라 외치는 어느 누가 이 슬픈 인간 강아지를 돌보았느냐 하는 말도 하기 싫다. 젖먹이가 만약 말을 할 줄 알아서 개보다 못한 조국의 정부요, 정치인이요, 동포들이라 했다면 우린 무슨 말로써 그에게 대답했을까? 지긋지긋하게도 그 많은 죄 없는 동포들이 짐승보다 더 참혹한 생죽음을 당해도 10년이 지나도록 입도 한번 달싹 못하던 어른들이 어린 학생들이 피로써 늙은 독재정권을 거꾸러뜨리자 이제 와서 어리둥절하는 꼴들은, 부질없이 핑계를 꾸미지 말고 차라리 개를 배우라. 산청의 개의 사랑을 배우자!

민간인 학살과 국가폭력의 기억을 보존하기 위한 한 양심적 지식인의 고투: 『기억과의 전쟁』

  한국전쟁 전후의 민간인 학살 문제는 이상하게도 역사학계로부터도 외면을 받아왔다. 누구 말대로 민감한 주제라서 연구비 받는 데 지장이 있을 것을 우려한 때문인지, 아니면 아직도 우리의 의식을 옥죄고 있는 학살의 집단 트라우마나 레드 콤플렉스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인간에 대한 애정과 불의에 대한 분노가 부족한 때문인지,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인터넷으로 자료를 찾아보니, 역사학 전공자가 아닌 사회학 전공자(김동춘 교수)나 국문학 전공자(신경득 교수)가 오히려 이 문제를 연구하여 책을 펴낸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기억과의 전쟁이다 한국전쟁과 학살 그 진실을 찾아서』(김동춘 저 | 사계절출판사 | 2013.07)
『이것은 기억과의 전쟁이다 한국전쟁과 학살 그 진실을 찾아서』(김동춘 저 | 사계절출판사 | 2013.07)
  그중에서도 김동춘 교수의 최근작 『이것은 기억과의 전쟁이다. 한국전쟁과 학살, 그 진실을 찾아서』(사계절, 2013. 앞으로 『기억과의 전쟁』으로 약칭.)는 연구자와 시민단체 활동가, 정부 관료로서 민간인 학살문제를 다룬 경험을 정리한 소중한 자료이다. 그는 이미 『전쟁과 사회』(돌베개, 2000 초판, 2006 개정판)를 통해 피란, 점령, 학살, 국가주의와 국가폭력 등의 측면에서 한국전쟁의 사회학적 의미를 심층 분석한 바 있다. 뒤의 책이 전문적인 학술 저서라면, 앞의 책은 일종의 보고서 겸 자전적 에세이에 가깝다. 그러면서도 『기억과의 전쟁』은 한 양심적인 학자의 인간에 대한 따뜻한 사랑과 사회적 불의에 대한 분노, 진실을 추구하는 열정이 행간에 배어 있어 문학작품 못지않게 독자의 감동과 공감을 자아낸다.

  그는 이 책의 서문에서 특히 김해군 진영읍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사건과 그 희생자인 독립운동가 김정태 일가의 사례가 그로 하여금 국가 폭력과 민간인 학살 문제에 뛰어들도록 만든 중요한 계기를 제공했다고 밝힌다. 유추해보면 김정태는 바로 『밤의 눈』에 나오는 옥구열의 아버지요, 그의 아들 김영욱은 옥구열임을 알 수 있다.

  김해 학살 사건, 특히 김정태 가족의 피해는 친일파 기회주의자들에게 독립운동가가 학살당하고, 그 후 학살의 진상을 규명하던 그의 아들마저 5·16쿠데타 세력에 의해 감옥에 수감되어 고문과 폭행을 당하고, 출옥한 후에도 생업을 제대로 도모하지 못하고 ‘빨갱이 집안’이 되어 평생 연좌제의 멍에에 시달린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이러한 수많은 가족의 비극적인 이야기, 그리고 여전히 진행 중인 부정의한 현실이 나로 하여금 연구실 문을 열고 거리로 나가게 만들었다. (앞의 책, 5쪽)

  그래서 그는 한국전쟁기 피학살자 명예회복 운동에 뛰어들었고 유족과 시민사회와 힘을 합쳐 2005년에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기본법’을 통과시킨 다음, 결국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11월부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인 2009년 11월까지 4년 동안 정부 기구인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일하게 되었다. (앞의 책, 6쪽 참조)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은 ‘망각에 대한 기억의 투쟁’

  2008년 12월 4일, 러시아 경찰 9명이 상트페테르부르크 인권단체인 메모리얼 건물에 침입하여 이곳에 보관 중이던 스탈린 시절의 테러와 인권침해를 고발하는 각종 증언과 영상물이 수록된 컴퓨터 하드 디스크를 파괴하려고 시도한다. 러시아 대통령 푸틴을 비롯한 기득권 세력은 러시아의 역사를 왜곡하고 애국심을 훼손시킨다는 이유로 불편한 진실을 기억에서 지우고 싶었던 것이다. 이때 인권단체의 소장인 이리나 플리지는 “이것은 기억과의 전쟁이다.”라고 규정했다. (앞의 책, 433쪽 참조)

  김동춘은 지금껏 자신이 해온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 운동과 진실화해위원회 활동은 일종의 ‘망각에 대한 기억의 투쟁’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 과정에서 불편한 기억을 역사에서 지우려는 세력의 완강한 저항에 부닥쳐 때로는 좌절하고 때로는 후퇴하기도 하지만 결코 진실 규명의 목표를 포기하지는 않는다.

  자국민이나 타국민에 대해 범죄를 저지른 국가는 언제나 국가의 명예니 위신이니 하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자신의 어두운 과거를 지우려 한다. 가해자들은 부인하고, 피해자들의 입을 막거나 돈으로 회유하고, 기록을 조직적으로 파괴하고, 교과서를 왜곡하고, 언론 보도를 통제하고, 학술 연구를 방해한다. 그래서 거짓이 진실이 되고, 진실은 영원히 은폐된다. 도저히 부인할 수 없는 증거가 나와 피해자들이 거세게 항의할 경우, 국가는 마지못해 사실은 인정하지만, 그것은 국가의 질서와 안보를 위해 불가피했다고 합리화한다. (…) 언론은 이 내용에 대한 보도를 최소화하거나 아예 묵살하고, 정치가들은 이제 아픈 과거를 들추어내지 말고 미래로 나아가자고 말한다. 이 조직적 부인, 거짓의 쓰레기 더미, 그리고 질서의 논리 위에서 유사한 형태의 국가 범죄나 인권유린이 계속 반복된다. (앞의 책, 434쪽)

  미흡한 진실 규명과 예술적 형상화

  이 책에서 김동춘은 진실화해위원회의 과거 청산 작업에도 불구하고 미군에 의한 민간인 피해 사건은 진실 규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노근리 사건이 AP 통신이라는 미국의 거대 언론에 의해 보도되면서 국내언론에서도 뒤늦게 관심을 표시하고 합동조사단을 만들어 형식적인 조사를 했으나 미국과 한국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 때문에 그 실체는 밝혀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학살 유족들의 정신적 트라우마와 물질적 피해, 연좌제에 의한 피해 등은 아예 조사 대상에도 포함되지 못했다. 유해 발굴과 보존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경산 코발트 광산의 일부 유골들은 아직도 컨테이너에 방치된 채 쌓여 있다. 2009년 현재 군경대상자에 대한 위령비는 894개인 반면, 민간인 희생자 위령비는 50개에 불과하고 그중에서 군경에 희생된 민간인 위령비는 22개에 불과하다고 한다.

  확인된 진실이 현실적 영향력과 구속력을 가지려면 정부 기관이 인정하고 교과서에 수록하거나 언론 보도를 통해 널리 알려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설이나 영화, 예술작품을 통해 대중화되어야 한다. 그래서 그는 조사 과정에서 수집한 현대사의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작품으로 만들면 영향력을 확산시킬 것으로 보고 작가들에게 보고서의 자료를 이용해 소설을 써달라고 부탁을 했다고 한다. 『밤의 눈』이 그의 권유에 의해 씌어진 소설은 아니겠지만, 이 작품의 성과를 거울삼아 소재 빈곤으로 자폐증에 빠진 많은 작가들과 예술가들이 민간인 학살과 유족들의 고통을 소재로 얼마든지 풍성한 작품 생산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나치의 유태인 학살이나 일본군의 남경대학살, 캄보디아와 보스니아, 르완다의 학살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전 국민의 10%가 희생된 한국전쟁 시기의 학살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예술적 형상화를 시도하는 것은 한국의 작가나 예술가로서 너무도 당연한 의무이자 과제일 것이다.









[다산연구소 - 이달의 책] 2013-08-23 (다산연구소 = 평화뉴스 제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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