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대박은 포용정책의 온고지신에서부터

창비
  • 입력 2014.01.23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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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이승환 / "보수의 통일담론, '상호인정과 공존' 통일원칙까지 벤치마킹해야"


지난 1월 6일 신년기자회견에서 "통일은 대박"이라고 표현했던 박근혜 대통령은 10일 블룸버그통신과 가진 인터뷰에서 "남북한이 통일되면 한반도 경제가 또 한번 도약할 수 있는 성장활력을 불어넣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하는 등 다시 한번 통일의 중요성과 경제적 가치를 강조했다.

이 '통일대박론'에 대해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통일 부담론·회의론·기피론 등 젊은 세대의 통일에 대한 관심이 멀어지는 가운데" "통일이 가져올 편익을 열거하면서"(고유환, 한국일보 2014.1.16) "통일의 필요성과 유용성과 정당성을 환기"(김근식, 프레시안 2014.1.15)시킨 점은 긍정적이지만, 그 방법론에 대해 구체적 언급이 없거나 혹은 통일의 과정과 준비에 대한 이해가 충분치 않은 점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다.

통일대박을 위해서는 대통령이 직접 보수진영 설득해야

특히 보수진영에서조차 "통일이 '결과가 아닌 과정'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통일의 파트너인 북한과의 착실한 대화부터 다시 시작하여야 한다"(배한동, 경북매일 2014.1.13.)라거나 "북한 주민의 마음을 움직이려 노력했는가? 투자했는가? (…)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급변사태가 몇번을 일어나더라도 대박이나 블루오션을 안겨줄 통일이 되기 어렵다"(김승철, 데일리NK 2014.1.15)라고 평가하고 있는 것은 주목할 부분이다.

무엇보다 궁금한 것은 통일대박론이 진정성 있는 제안으로 그에 합당한 후속조처가 이어질 것인지, 아니면 정치적 수사로 끝나고 말 것인가 하는 점이다. 지난해 12월 21일 남재준 국정원장이 "2015년에 우리 조국을 자유민주주의체제로 통일시키기 위해 다 같이 죽자"라고 발언했다거나, 박근혜 대통령이 '상호 비방과 적대적 행위를 멈추자'라는 북한 국방위의 1월 16일자 '중대 제안'에 대해 "북한이 선전공세를 할 때일수록 대남 도발에 더 철저히 대비하라"라고 직접 지시한 것 등에 비추어볼 때, 난데없는 통일대박론은 박근혜정부의 그간의 행보와 전혀 맥락이 이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점 때문에 박근혜정부가 장성택 숙청사건을 계기로 북한 급변사태를 염두에 두고 의도적으로 '통일'의 담론화에 나선 것이라든가, '한반도신뢰프로세스'를 대북정책으로 내세우는 정부가 신년 벽두에 난데없이 북한과의 불신만 가중시킬 통일대박론을 들고 나온 것은 마치 "음주 운전을 하는 것처럼 방향성을 잃고 왔다 갔다 하는 것 같다"(세계일보 2014.1.16)라는 등의 진단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일각에서는 박근혜정부 내 일부 인사들이 북한의 급변사태를 운운하는 것은 이른바 '보수층 달래기'를 위한 것이며, 실제로는 오는 6월 실시될 지방선거가 끝나면 통일대박론에 걸맞게 본격적으로 남북관계에 시동을 걸 것이라고 희망적으로 예측하기도 한다. 박근혜정부가 말하는 통일대박, 경제대박의 핵심은 특히 철도·가스관 연결을 비롯한 유라시아프로젝트와 북한개발프로젝트인데, 이는 사실 김대중정부의 북방경제론이나 노무현정부의 평화경제론에서 이미 제시된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경제대박을 위해서는 주변국들의 협조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북한의 협력을 얻어내는 것이 핵심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진보진영의 햇볕정책이 결국은 북의 협력을 얻어내기 위한 것이었다면, 이런 점을 보수진영이 받아들이도록 하는 일은 박대통령의 몫이다"(이계송, 재외동포신문 2014.1.16)라는 지적처럼, 결국 보수의 수장인 박근혜 대통령이 대북포용정책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대, 퍼주기론과 종북공격에만 익숙해져 있는 보수진영의 한계를 극복하고 북한의 협력을 얻는 데 적극 앞장서는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통일대박론'은 분단의 '적대적 공생'을 포기하고 인내심 있게 대북 화해협력을 추진해나가는 적극적인 노력 없이 결코 성공할 수 없다. 결국 박근혜정부가 통일대박론을 진정성 있게 추진하려면 북한만 바뀌면 된다고 고집할 것이 아니라, 정부 스스로 먼저 김대중·노무현정부 10년의 대북포용정책에 대한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자세부터 가다듬어야 하는 것이다.

점진적 M&A, 보수 통일담론의 대두

한편 박근혜정부의 통일대박론은 정책적 평가보다는 오히려 담론 차원에서 좀더 무겁게 접근할 필요도 있다고 판단된다. 이는 조선일보의 '통일은 미래다'라는 통일담론화 기획을 포함하여 통일대박론이 이명박정부 때부터 시작된 통일담론 보수헤게모니화의 연장이라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통일대박론에 투영되어 있는 통일론의 문제의식은 "한때는 좌파가 통일 논의의 주도권을 잡았다가 북한이 추락하기 시작하자 현상유지식 평화노선으로 슬그머니 꽁무니를 뺐다. 일부 우파는 우악스럽게 흡수통일론을 주장해왔지만 적지 않은 우파는 입으로는 통일을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우리끼리 잘 사는 게 낫다'라는 쪽이었다"(주용중, 조선일보 2014.1.11)라는 현실인식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통일 이후에도 일정 기간 북한을 행정·경제특구로 운영해 통합의 여파를 완화하는 방법"을 통해 "초우량 대기업 대한민국과 방대한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운영 자금이 고갈돼 파산한 중소기업 북한 간 M&A"(천영우, 문화일보 2014.1.16)와 같은 방식의 통일론으로 귀착된다. 이는 "한국은 독일처럼 급작스러운 통일이 아닌 점진적 통합 방식을 상정"하여 "북한 급변사태가 오더라도 '2지역 체제'를 유지하면서 경제적 통합을 하는 방식"(조선일보 2014.1.6)이다. 즉 경제통합에 의한 흡수통일을 원칙으로 하되 흡수통일의 충격을 제도적 완충을 통해 점진적으로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조선일보> 2014년 1월 6일자 1면
<조선일보> 2014년 1월 6일자 1면

결국 보수진영이 통일담론의 헤게모니를 위해 준비한 무기는 흡수통일을 원칙으로 점진성이라는 진보진영의 '과정적 통일론'을 결합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남측의 연합제와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사이에 공통성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통일의 원칙으로 '공존'을 강조하고 방도로서 '점진성'을 내세운 진보진영의 통일론과 부분적 교집합을 형성하고 있다.

그런데 보수진영이 제기하는 'M&A통일론'은 사실 두가지 잘못된 전제에서 출발하고 있다. 하나는 이른바 진보진영이 '통일을 주장하다가 슬그머니 현상유지식 평화노선으로 돌아섰다'라는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는 점이다. 진보의 통일론은 단계적 통일론이지 현상유지론이 아니라는 것은 사실 너무나 자명하다. 김대중의 3단계통일론이 그렇고, 재야를 대표하는 문익환의 3단계통일방안도 기본적으로는 단계적 통일론이다. 한국 정부의 공식통일론인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김대중과 문익환 등의 단계적 통일방안에 크게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노태우정부에서 완성된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 김대중·노무현정부를 거치면서 정권의 변화와 무관하게 사실상 한국 정부의 공식 통일방안으로 정착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진보진영이 '과정으로서의 통일론' 혹은 단계적 통일론을 고수하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보수진영이야말로 북한정권붕괴에 의한 급변통일론 혹은 '잘살고 있는데 굳이 통일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분단 현상유지론을 견지해왔다. 따라서 보수의 새로운 점진적 'M&A 방식의 통일론'은 엄밀하게 말하면 진보의 단계적 통일론을 벤치마킹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호인정'의 제도화 없이 경제통합은 불가능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경제통합을 통한 흡수통일(M&A)이 북한의 협력하에서 점진적으로 실현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즉 보수가 내놓은 회심의 '점진적 M&A통일론'은 흡수라는 칼을 내밀며 통합하자는 모순된 담론이라는 것이다.

남북이 각각 지금 가장 원하는 것이 있다면, 남한은 북한의 자원과 개발, 북방진출의 통로일 것이고, 북한은 무엇보다도 확실한 체제인정과 안전일 것이다. 이는 북한에 대한 체제인정과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 '흡수'라는 원칙을 내세워서는 북한의 신뢰와 협력을 얻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력으로 북한의 협력을 얻어내는 것이 불가능한 조건에서, 아무리 2지역을 유지하는 경제적 통합이라 하더라도 '확고한 상호 체제인정과 공존'이라는 통일의 기본원칙이 흔들리면 '점진성'이라는 통일의 과정은 성립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평화협정 체결과 북미수교, 그리고 대규모 경제원조가 더해지더라도 남한의 존재 자체가 (북한에―이하 괄호 안은 필자) 위협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한반도의 재통합과정을 비교적 안정적으로 관리할 국가연합이라는 장치가 마련되어갈 때 비로소 북측 정권으로서는 비핵화 결단을 내리고 (경제통합을 포함하는) 자체개혁의 모험을 감행할―비록 완전히 안심되지는 않더라도―그나마의 여건이 충족되는 것"이라는 지적(백낙청 「'포용정책 2.0'을 향하여」, 『2013년체제 만들기』, 창비 2012, 121면)은 전적으로 타당하다. 그래서 포용정책의 발전과 진화 역시 '점진성'이라는 기능주의적 접근의 강화보다는 오히려 상호인정과 공존의 제도화를 강화하는 '남북연합 프로세스'의 발전에 중점이 놓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남북연합 프로세스'는 평화 증진과 경제협력으로 개선된 남북관계를 각각의 수준에 맞게 단계적으로 제도화해나가는 통합과정이다. 이는 북한으로서는 체제인정의 보장 속에서 경제통합을 위한 자체개혁 수준을 강화해나가는 프로세스이고, 남한으로서는 일방주의적인 흡수의 관성을 제어하고 공진적(共進的) 변화를 추진해나가는 규율의 제도화 과정이다. 이러한 상호인정의 제도화인 남북연합 프로세스의 발전 없이 경제통합은 불가능하다. 보수의 통일담론이 진보로부터 '점진성'이라는 통일의 방도만을 벤치마킹할 것이 아니라 '상호인정과 공존'이라는 통일의 기본원칙까지 벤치마킹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승환 / 시민평화포럼 공동대표


 [창비주간논평] 2014-1-22 (창비 = 평화뉴스 제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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